한중 양국이 수교를 맺은 지 20년이 흘렀다. 중국은 과거 죽의 장막에서 어느새 가깝고 친근한 이웃나라로 변모했다.
물류분야에서도 중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최고의 파트너로 부상했다.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아 중국법인 영업 총경리로 6년간 근무했던 현대로지스틱스 정광호 팀장의 중국 물류 경험담을 기재한다.
지난 2006년 상하이 법인 근무를 시작으로 2008년 선전 분공사 총경리, 2010년 상하이 영업 총경리를 맡았던 정광호 팀장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중국 물류현장의 애환을 생생하고 진솔하게 풀어낸다.
그 첫 번째로 내륙운송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저녁시간에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고, 물류 회사의 사장님 되신 분이 직접 전화를 하셨다는 것은, 매우 급한 일 이라는 것을 단번에 직감할 수 있었다.
그분의 요청사항은 단순했다. “정광호 지사장, 시간이 없다. 당장 차량을 준비해 베트남 호치민 공장 생산라인이 멈추기 전에 원료를 운송하라!”
좀 더 부연 설명을 하면 “중국 광동성 황푸에 있는 ISO 탱크 컨테이너 4대를 픽업 해 베트남 호치민에 있는 공장까지 4일 만에 운송하라. 해상운송은 환적시간 때문에 도저히 안 되고 직접 진두지휘해 중국-베트남 국경을 통과해 화물을 적기에 운송하라.” 필자에게는 절체절명의 미션이었다.
어떻게 보면 간단할 수가 있다. 협력사에 연락해 차량을 배정하고, 정해진 시간에 화물을 픽업해 중국과 베트남 국경을 넘어서 제한된 시간 내에 고객사에게 화물을 인도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벌어진 곳은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하자면 중국-베트남 국경을 통과하는 물류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부분 해결해야 할 많은 선결 과제가 있다.
첫째, 차량을 어떻게 긴급 수배할 것인가? 베트남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 차량은 광서성 차량 밖에 없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던 곳은 광동성 선전(심천). 광서성과는 약 1,300km 떨어진 곳이며 광서성 차량이 우리의 화물을 운송해 주기 위해 예약도 없이 갑자기 수배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둘째, 중국 트럭 기사들이 화물의 긴급성을 알고 1,300km가 되는 고속도로를 달려 하루 만에 국경에 도착할 수 있을까? 중국 물류환경을 아시는 분들은 이 부분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중국-베트남 국경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통상 중국 세관은 주말에 근무를 하지 않는다. 시나리오상 화물을 픽업해 중국 국경지대에 도착할 예정시간은 토요일 새벽. 토요일 오전에는 반드시 수출 통관을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문제가 있는 곳에 반드시 해결 방안도 있다는 것을 물류를 해 보신 많은 분들은 알고 계실 것이다. 제일 먼저 진행한 것이 광서성 차량 수배였다. 사무실 전 직원들에게 현재의 트럭킹 협력사들, 광서성 회사, 인터넷을 통해 광고하는 회사들, 모조리 연락을 취했다. 밤을 잊은 채 연락을 하고 또 연락을 해 마침내 차량 3대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런데 1대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다음날 광동성 광저우로 직접 찾아가 직접 트럭 기사님을 설득, 마침내 모두 수배하게 됐다. 그 기사님은 광서성의 목재를 싣고 광동성 광저우에 운송하고, 다른 화물을 싣고 광서성을 갈 계획이었으나 중국어도 어눌한 한국 사람이 어떻게든 도와 달라고 사정을 하니 결국 우리의 화물을 운송해 주겠다고 승낙했다. 참 감사한 중국 트럭 기사님이셨다.
결국, 차량 3대는 우리 직원이 직접 동승해 함께 광서성으로 출발하게 됐고, 필자는 나머지 1대의 중국인 차량 기사님과 함께 1,300km를 달려 중국-베트남 국경지대에 도착하게 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1,300km를 하루 만에 완주(?) 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렇게 하여 첫째, 둘째 선결과제는 해결했다.
그런데 세 번째 선결과제는 정말 답답했다. 바로 중국 세관이 문제였다. 비가 오는 주말 토요일 아침, 베트남과 연결되는 중국 광서성 핑샹 세관은 한산했다. 전날 도착한 우리 직원과 트럭 기사님들과 차량 3대는 주차장에서 마지막 1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의 프로젝트 화물 이었으므로 함께 통관하기 위함이었다.
필자를 반갑게 맞이해야 할 우리 직원은 풀이 죽어 있었다. 이유인즉슨 세관 직원과 미리 확인을 하니 토요일은 통관이 안 된다는 것. 오직 토요일 통관이 가능한 화물은 베트남에서 수입되는 신선 식품(과일,채소 등) 그리고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수출되는 신선식품(생선 정도..) 나머지 일반화물, 특히 ISO 탱크 컨테이너는 과거에 통관을 주말에 해 본적도 없고, 앞으로도 이러한 화물은 주말에는 절대 통관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밤을 새워 1,300km를 달려 온 직원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너무 허탈하다는 것이었다. 차량을 급하게 찾고 어렵게 트럭 기사님을 직접 설득해 여기 까지 왔는데, 포기 할 수가 없었다. (포기는 배추를 한 포기, 두 포기 셀 때 사용하는 용어 이지, 물류 업무를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중국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안 되는 것도 없고, 되는 것 또한 없다.” 먼저 생각한 것은 담당 직원이 아니라, 총괄을 담당하고 있는 세관 담당과장을 찾아 가기로 한 것이다. 중국말도 어눌한 한국인을 만나 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야겠다 싶어 직원과 함께 세관 담당 과장 집무실을 찾아갔다. 담당 세관과장은 여자 분이었다.
그분도 중국-베트남 국경 지대에 외국인으로 보이는 중국말도 잘 못하는 한국인을 보며 당황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차분하게 설명을 드렸다.
중국과 베트남의 가교 역할을 하는 이곳 핑샹 세관을 직접 방문하게 되어 영광이며, 현재 베트남 호치민에 있는 공장생산이 멈추게 됐다. 그 곳의 한국기업이 더 이상 생산을 못하게 되면 향후에 중국의 물량이 베트남으로 수출되는 것은 더 이상 어렵게 된다는 등등 처한 어려움과 마땅히 운송을 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 분은 원칙을 고수 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세관 담당 과장의 말씀. “주말에 일반화물 통관은 법으로 금지 돼 있고, 주말에 이곳에서 대기하고 월요일 아침 일찍 통관을 진행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더 이상의 방법은 없는 것인가? 다시 시도 했다. 필자가 알고 있는 모든 중국어를 동원해 정말 간절하게 다시 상황을 설명했다. 눈에 눈물을 보이며 (물류를 하시는 많은 분들은 이러한 심정을 아실 것이다.) 한 번만 살려 달라고 간절히 간절히 호소했다.
“간절하면 통한다”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그때 알게 됐다. 그리고 “안 되는 것도 없고, 되는 것 또한 없다”라는 중국에서의 의미가 이런 것 임을 몸소 체험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독자 분들께서 믿으실지 모르지만 광시성 핑샹 세관담당 과장은 우리의 화물 총 4대의 ISO 탱크 컨테이너를 토요일 오전에 유유히 베트남 랑선으로 갈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과거에 없었던 일을 성취한 그 쾌감. 그 기쁨. 몇 년이 지났지만 그 때의 추억을 떠 올릴 때면 정말 가슴에 꽉 찬 기쁨이 아직도 나타나 입가에 미소를 머금기도 한다.
중국, 세계의 공장, 제 2의 경제대국, 그 속에서 오늘도 노력하시는 많은 물류업 종사자 분들 또한 필자와 같은 기쁨을 맛보고 계시리라 생각된다. 아울러, 한국에서 고군분투 하시는 많은 물류를 하시는 후배님들도 필자와 같은 경험 들을 많이 해 나가시기를 기대한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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