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타이타닉 >의 한 장면 |
●●●지난 4월15일은 < 타이타닉 >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1912년 4월11일 영국 사우샘프턴항을 출발해 미국 뉴욕항으로 항해하다가 4월15일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앞바다에서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다. 이 사고로 2200명의 승객 중 1523명이 대서양의 차가운 바다에서 희생됐다.
1912년 < 타이타닉 >호 침몰사고 이후 세계 조선의 역사와 배를 건조하는 기술 등은 크게 변했다. 세계 조선산업의 판도 또한 판이하게 달라졌다. < 타이타닉 >호처럼 석탄을 때는 선박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지구 온난화 열풍을 타고 태양열을 이용하는 배까지 등장했다. < 타이타닉 >호 사고 이후 100년 동안 해운·조선 분야의 흐름과 변천사를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추적했다.
↘ 기선 시대부터 태양열 선박까지
< 타이타닉 >호는 길이가 268m, 폭 27m, 4만6천t으로 당시로는 세계 최대, 최첨단 선박이었다. 이 배에 탈 수 있는 승객과 승무원 정원은 모두 3547명이었다. 오늘날 일반적인 크루즈 선박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특히 이 배는 바닥을 이중으로 만들고 16개의 수밀 격벽을 설치해 ‘신조차 침몰시킬 수 없는 배’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배 밑바닥을 두 겹으로 처리한 것은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최근에 건조되는 유조선과 일부 화물선만 기름 오염사고를 막기 위해 선체를 이중으로 만들고 있다.
문제는 이 선박이 지금과 달리 석탄으로 움직이는 증기 터빈 기선이었다는 점이다. 이 선박은 무려 7700t의 석탄을 싣고 있었다. 하루에 소비하는 석탄의 양도 자그마치 600t. 선박에는 모두 29개의 보일러가 설치돼 있었는데, 이 보일러를 돌리기 위해 1시간당 모두 176명의 선원(화부)이 동원될 정도였다.
오늘날에는 이 같은 기선은 사라졌다. 디젤엔진이 개발된 이후 선박은 거의 대부분 벙커유를 연료로 사용한다. 최근에는 배로 인한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 선박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태양열 선박과 전기 추진 선박, 그리고 LNG를 연료로 쓰는 선박도 운항되는 실정이다. < 타이타닉 >호처럼 석탄을 때다가는 당장 국제기준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이 변했다.
20세기 초의 해운 사정과 최근의 상황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동안 우리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제작한 영화 ‘타이타닉’에 대한 여운에 밀려 당시의 해운회사 등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타이타닉 >호를 운영한 해운회사는 화이트스타라인이다.
당시 유럽에서 미국으로 가는 대서양 여객 항로는 이 회사와 쿤나드 해운회사와 경쟁하면서 독과점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미국으로 가는 이민자들이 급증하면서 두 회사는 상당한 이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화이트스타라인은 대서양 항로뿐만 아니라 지중해, 유럽 항로 등을 운항하면서 연간 200만명 이상의 여객을 수송했다고 한다.
이 같은 해운 호황도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막을 내리게 됐다. 많은 선박들이 전쟁에 징발됐고 항공기의 등장으로 대륙을 오가는 정기 여객선은 자취를 감췄다. 여객들은 1주일 넘게 고생하면서 대서양을 건너지 않아도 되게 됐다. 대신 그 자리에는 크루즈라는 새로운 호화유람선 시장이 들어섰다.
< 타이타닉 >호는 여객선으로 건조됐으나 내부 시설은 현재 영국 런던에서 영업하고 있는 5성급 리츠 호텔을 모델로 했을 정도로 호화스러웠다. 화이트스타라인은 여객선이라는 개념보다 ‘해상 호텔’이라는 점을 내세워 마케팅 전략으로 삼았다. 1등실에 설치된 대형 계단이나 수영장, 체육시설, 레스토랑, 세탁소 등은 현재 크루즈 선박이 그대로 따르고 있다.
선박의 종류도 다양화됐다. < 타이타닉 >호는 여객 운송뿐만 아니라 화물 및 우편물을 수송하는 기능도 했다. 지금은 이 같은 다목적 선박은 없다. 화물선의 경우 벌크 선박과 컨테이너선으로 나뉘어졌고 국제 우편물은 대부분 항공기를 이용해 수송된다.
선박의 크기도 더 커졌다. 컨테이너선의 경우 길이가 300m가 넘은 대형선박이 등장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크루즈 선인 오아시스호는 길이가 360m, 무게로는 25만t으로 < 타이타닉 >호보다 5배 정도 크고 승객과 승무원을 7500명까지 태울 수 있을 정도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당시 대서양 항로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화이트스타라인이 쿤나드라인에 통합돼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고를 일으킨 화이트스타라인은 1934년에 쿤나드에 매각돼 1950년에 쿤나드 라인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합병된 두 회사는 현재 세계 최대의 크루즈 회사의 하나인 카니발 사에 흡수되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조선 주도권 유럽서 아시아로
세계 조선 시장의 주도권도 변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100년 동안은 영국이 세계 조선시장을 좌지우지했다. 특히 < 타이타닉 >호가 건조되던 20세기 초는 영국의 조선산업이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한 시대였다.
그러나 영국은 조선산업 현대화에 실패하면서 1950년대 중반부터 일본이 세계 조선시장의 주도권을 넘겨받았다. 이후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이 명실상부한 세계 제1의 조선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은 저임금 노동과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바탕으로 한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한편 < 타이타닉 >호를 만든 조선소 하랜드 앤드 울프 중공업의 변신은 영국 조선산업의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 준다. 아직까지 운영되고 있는 이 회사는 1861년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설립됐다. 벨파스트는 20세기 초 세계 최대의 조선단지였다. 이곳에서 설립된 이 회사는 < 타이타닉 >호를 비롯해 화이트스타라인이 주문한 같은 크기의 선박 3척을 건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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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회사는 양차 대전을 등에 업고 고속 성장을 거듭했으나 1950년대 후반 제트기 생산과 일본 조선산업의 성장 등으로 시장 환경이 변하면서 성장세가 꺾였다. 최고 전성기 때 이 회사는 근로자 3만5천명을 고용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그러나 지금 이 회사는 근로자를 3천명 수준으로 감량 경영하면서 유조선과 석유 시추선, 해상 풍력, 조력 발전 등 해양 플랜트와 해양 신재생 에너지 쪽으로 사업 영역을 특화하고 있다. 이 부문이 전체 사업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해양 에너지 개발에 주력하여 활로를 찾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 안전 기술 발전해도 인재는 못막아
국제사회는 < 타이타닉 >호 침몰 사고 후 2년 만에 해상에서의 인명의 안전을 위한 SOLAS 협약(International Con vention for the Safety of Life at Sea, 1914)을 채택했다.
그 내용은 선박에는 모든 인원이 승선할 수 있는 구명정을 갖출 것, 항해 중에 구명훈련을 실시할 것, 선박에는 모스(Morse)식 무선전신을 설치하고 500킬로헤르쯔(KHz)의 조난 주파수를 하루 24시간 계속 청취하는 무선당직을 유지하기 위해 무선 통신사를 승선시킬 것, 북대서양 항로에서 유빙의 흐름을 모니터링할 것, 선박 승객의 등급에 의한 구출 순서를 폐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협약의 내용이 이처럼 정해진 것은 < 타이타닉 >호의 침몰 사고 경위를 조사한 결과 선박의 구조상의 문제와 더불어 표준화 되지 않은 구조신호 체계, 무선통신 체제 미흡, 최대 탑승인원의 절반가량만 탑승할 수 있을 정도의 구명정 설치에 따라 피해가 크게 확산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 타이타닉 >호 사고 이후 해상안전 운항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대부분의 선박들이 최첨단 안전장비를 장착하고 첨단 통신장비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대양을 누비고 있다. 인공위성과 레이더 및 GPS 시스템 등으로 유빙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한다. 사고 발생시 자동 구조신호 발신, 구명정, 구명조끼 등 각종 구난 장비도 충분히 준비돼 있다.
그러나 지난 1월 이탈리아 해안에서 좌초해 30명 이상의 희생자를 야기한 < 코스타 콩코르디아 >호 사고는 아무리 첨단 장비로 무장한 선박이라 하더라도 운항 중의 방심과 부주의가 얼마나 큰 피해를 야기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아직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으나 운항규정을 무시한 항해, 사고 이후 부적절한 조치 등을 볼 때 전형적인 인재에 의한 사고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과거 < 타이타닉 >호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최첨단 장비를 설치했다 해도 이를 운영하는 데 과실이 있으면 사고는 언제나 발생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당시 < 타이타닉 >호에 탔던 승무원과 승객은 모두 2223명이었다. 이 가운데 승무원은 891명. 이들은 피해를 어떻게 배상 받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푼돈을 받는 데 그쳤다. 사고가 난 지 3년 후 미국 대법원은 < 타이타닉 >호 사고로 인해 화이트스타라인이 배상해야 할 전체 금액을 9만1천달러로 확정했다. 이 금액은 전체 승선 인원으로 나누면 1인당 40달러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건은 영국 국적 선박에 대한 손해 배상을 미국 법에 따라 미국 법원에서 재판했다는 점에서 당시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덕분에 화이트스타라인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350만달러를 부담해야 했다.
당시 영국 법률은 해운회사가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 책임을 지는 한도액은 선박 t당 75달러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미국의 법률은 사고 선박의 남아 있는 가치를 기준으로 피해 배상액을 산정하는 제도를 갖고 있었다. 즉 사고 이후 인근을 지나던 < 카르파티아 >호가 건져 올린 구명보트 등을 선박의 잔존가치로 인정, 손해 배상액을 계산했다.
이 같은 피해 배상액은 현재 기준으로 하면 상당히 낮다. 최근 선박 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해사기구(IMO)는 여객선 사고로 인한 배상 문제를 처리하는 국제기준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2006년에 제정한 국제 협약을 기준으로 할 때 < 타이타닉 >호와 같은 크기의 선박이 사고가 나는 경우 승객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은 3억7500만원가량이다. < 타이타닉 >호 사고 발생 이후 100년이 흐르는 동안 피해 배상액은 크게 늘어났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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