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상반기께 평택과 중국 옌타이(煙臺)를 잇는 국제여객선(카페리) 항로가 열린다. 지난달 1일부터 3일까지 중국 윈난(云南)성 리장(麗江)시에서 열린 한·중 해운회담에서 결정된 사항이다. 양국 정부가 평택-중국 카페리항로의 향후 가능성을 높게 내다 본 결과다.
평택-옌타이 카페리항로는 한국측 하나로해운(진양해운 관계사)과 중국측 옌타이항그룹 산둥보하이룬둬(山東渤海輪渡)가 각각 지분투자하게 된다.
진양해운이 창명해운으로부터 장기용선해 쓰고 있던 선박 <퀸칭다오>호를 다른 선사로 넘겨주면서 선박 확보 문제가 불거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아직 취항까지 2년 정도가 남아 있어 선박확보를 위한 시간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카페리선사가 밀수조직? ‘기도 안찬다’
새로운 항로 개설이 확정되면서 평택항 카페리항로도 활력을 기대해봄직 하지만 분위기는 정반대다. 해운회담이 열리던 그날 한 방송사의 보도로 카페리항로는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MBC는 이틀에 걸쳐 <뉴스데스크>에서 평택항 기점의 한중 카페리항로를 집중 조명했다. 한중 소무역상(보따리상)들이 카페리선을 통해 조직적으로 밀수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MBC는 밀수 중간책(노반)이 일명 다이공(代工)으로 불리는 운반책(소무역상) 수십명을 거느리고 밀수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다이공들은 “각자 100여개의 밀수조직, 상단에 소속돼 있으며 조직적 밀수의 정점에 여객선을 취항하는 선사가 있다”고 보도했다. 선사들이 밀수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MBC 보도 이후 한중 카페리선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소무역상들의 정확한 내용을 알 리 없는 일반 시청자들이 카페리선을 밀수조직을 실어 나르는 밀수선으로 오인하는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게다가 세관측이 밀수조직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고 있다고까지 기사화되면서 평택항은 그야말로 거대한 밀수의 온상으로 비쳐지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인천-칭다오·다롄 두 군데 정도의 노선만 남기고 항로를 취소해야 한다” “말이 보따리상이지 그들을 고용해서 밀수를 하고 있는 거물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따리상들을 근절시켜야 한다”는 의견 등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왔다.
MBC 보도는 상승곡선을 그리던 한중 카페리항로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특히 올해로 카페리선 취항 11주년을 맞은 평택항 기점의 한중 카페리항로는 그동안 많은 성장을 일궈 왔다. 여객 수송 실적은 올해 들어 쾌조의 순항을 보였다. 10월까지 평택-중국 간 카페리항로의 여객 승선 실적은 43만명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의 33만4천명에서 29% 급증했다. 2달여를 남겨 놓은 상황에서 지난해 연간 실적인 40만명을 뛰어넘어 항로 활성화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보도 이후 평택항 카페리의 이용객 수는 뚝 떨어졌다. 평택세관이 통관을 강화하면서 소무역상들이 대거 떠났기 때문이다.
현재 ‘여행자 및 승무원 휴대품 통관에 관한 고시’(관세청고시)는 농산물은 총 50kg 품목당 5kg, 농산물 외 품목의 경우 담배 1보루, 술 1병, 향수 60ml 이하 등으로 반입량을 제한하고 있다. 총 반입금액은 400달러 이하여야 한다. 특히 세관은 MBC가 문제 삼았던 여객터미널 인근 판매행위를 집중 단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무역상들의 점유율이 높은 평택항 카페리 특성상 소무역상들의 이탈은 곧 여객 승선율의 하락을 의미한다. 평소 매 항차 700명 가까운 여객을 태우던 평택-룽청 노선은 보도 이후 한 때 50명 이하로 실적이 급감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평택항 기점의 한중 카페리선사들은 밀수선이란 오명 뿐 아니라 여객 실적 악화란 사업상 직접적인 타격도 받게 돼 가시방석이다. 11월 말 들어 회복되긴 했으나 승선률은 평소 대비 70~80%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중소 수출기업에까지 ‘후폭풍’
소무역상들은 자신들이 과거 20여년 동안 한중 교역의 숨은 공신임에도 부정적인 부분만을 집중 부각한 MBC 보도에 분개하고 있다. 소무역상 단체인 평택항소무역상연합회와 인천항상인회 군산항상인회 등은 지난달 관세청과 MBC를 잇달아 방문해 항의집회를 열었다. 또 청와대와 농림수산식품부 관세청 해양경찰청에 탄원서를 제출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소무역상 단체는 탄원서에서 “소무역상 대다수는 중국어도 못하고 중국 사정이나 문화도 몰라 절실한 필요성을 갖고 자연스레 분업화한 것일 뿐 밀수조직이 아니다”며 “양국 세관이 허용한 면세품 한도 내에서 구입해 중간 상인에게 얼마라도 웃돈을 받고 사고 파는 형태의 생계형 장사를 하고 있다”고 MBC 보도 내용을 전면 반박했다.
소무역상들은 양국간 교역 확대에 큰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탄원서는 “소무역상들은 중국에 진출해 있는 우리나라 기업의 원부자재를 값싸고 신속하게 공급하는 역할과 우리나라 최신 전자제품 화장품 식료품 생필품 등과 같은 신상품을 중국에 정식으로 수출하기 전에 중국에 제일 먼저 소개하고 홍보하고 있으며, 연간 10억달러 이상의 상품을 수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998년 국가 외환위기 당시 정부와 사회가 실업자를 줄이기 위해 소무역상을 ‘개미수출군단’이라며 적극 권장하고 육성했다는 점도 들었다.
전국 소무역상인을 5000명으로 가정할 경우 한 항차 당 소무역상들이 한중카페리항로를 통해 들여오는 농산물은 250t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연간 3만3천t가량이 소무역상에 의해 우리나라로 반입되는 것이다. 반면 공산품은 소무역상 한명당 평균 85kg가량을 휴대한다고 할 경우 전체 소무역상들이 중국에 수출하는 연간 공산품 규모는 5만6100t에 이른다. 소무역상을 통해 중국에서 들어오는 수입량보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나가는 수출량이 70%가량 많은 셈이다. 금액으로 따질 경우 연간 공산품 수출액은 1조2870억원으로 농산물 수입액 1617억원보다 8배나 많다.
특히 동대문시장에서 생산되는 구제의류나 직물 원단, 화장품, 벽지 등 중국에서 인기 좋은 공산품들은 많은 양이 보따리상들을 통해 수출되고 있는 형편이다.
정식 수출경로를 통할 경우 신용장 개설이나 운송장(인보이스) 패킹리스트 작성 등 절차가 번거롭고 물류비도 비싸지만 인편으로 화물을 보낼 경우 이런 절차를 생략할 수 있어 간편하고 비용도 매우 저렴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사태로 중소수출기업, 중국 현지에 진출해 있는 완제품 생산기업 등이 타격을 입고 있다. 특히 중국 진출 기업들은 국내에서 들여오던 원부자재 수입루트가 끊겨 고생하고 있다.
이들이 원부자재를 들여오는 물류비용은 소무역상을 통할 경우 kg당 1500원 수준이다. 하지만 항공을 통할 경우 5000원으로 4배 가까이 물류비가 뛴다. 중국 웨이하이시 한국상공인들은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한국 외교통상부나 관세청 등에 탄원서 제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보따리상들은 엄연히 수출 역군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한 단면만을 보고 죄인 취급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며 “화장품 샘플 등이 보따리상을 통해 중국으로 나가는데다 동대문 재래시장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따리상들은 선사 뿐 아니라 수출기업과 무역회사, 지역 상권 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순기능을 설명했다.
중국 무역보복 움직임…소무역상제도 마련 목소리
세관의 소무역상 단속으로 외교마찰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소무역상을 통한 농산물 수출이 차단당하다시피 되자 중국 정부가 보복성 조치를 취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00년에도 우리 정부가 중국산 마늘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자 곧바로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을 수입금지하는 경제보복에 나선 바 있다.
이번에도 장쑤성에서 즉각 보복조치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장쑤성 롄윈강항은 12월1일 평택 출항부터 소무역상들의 공산품 휴대를 전면 금지했다. 소무역상들은공산품 수출을 통한 수익이 항차당 200만원 정도인 반면 농산물 반입을 통한 수익은 20여만원 수준이라고 말한다.
공산품 수출이 막히면 그 항로에선 사실상 소무역 활동을 접어야 하는 셈이다. 현재 롄윈강항은 연운항훼리가 평택·인천을 연결하는 주6항차 카페리 서비스를 벌이고 있다. 연운항훼리 관계자는 “보복조치라는 근거는 없지만 (장쑤성에서) 공산품 반입을 금지하기로 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산둥성에서도 공산품 반입 한도를 한명당 기존 85~100kg 수준에서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선사와 소무역상들을 긴장케하고 있다. 산둥성은 15개 한중 카페리 노선 중 8곳이 포진해 있는 핵심 지역이다. 산둥성마저 무역보복에 나설 경우 한중 카페리항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차제에 소무역상에 대한 제도 마련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무역상들을 언제까지 우범자로 취급할 순 없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관세법상 자가소비용을 제외한 판매용 물품을 휴대해 반입할 경우 과세를 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대법원은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용물품은 여행자 휴대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간이수입신고를 통해 면세통과됐다 하더라도 무신고 수입죄에 해당 된다고 볼 수 있다”며 “이러한 물품을 취득하는 행위는 밀수품취득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결한 까닭이다. 대법원 판례로 소무역상들은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물품을 들여오면서도 수입통관을 거치지 않아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범법자가 되고 말았다.
소무역상 단체들은 관세청고시에서 여행자 개인용의 자가사용물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여행자 및 승무원 고시 외에 소무역상 고시를 별도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다. 소무역상들을 사업자로 등록시켜 세금을 부과하되 과세특례자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다. 소무역상을 통해 들어오는 농산물의 유통경로를 추적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농산물 반입 한도를 품목당 3kg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농림수산식품부도 소무역상의 제도화엔 긍정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평택소무역상연합회 최경일 회장은 “1992년 한중 수교 이전부터 소규모 보따리 상인들이 활동하면서 양국 교역의 가교역할을 해왔음에도 범법자로 취급당할 때마다 답답함을 금치 못한다”며 “전국적으로 5000명가량의 보따리상들이 있다. 범법자를 양성하지 말고 민생차원에서 접근했으면 좋겠다”고 정부의 적극적인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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