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0 11:00

논단/ 편의치적

정해덕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변호사/법학박사
법인격부인, 가압류가능성 및 관세법상의 문제에 관한 판례를 중심으로


<10.31자에 이어>

나. 대법원 1988년 11월22일 선고, 87다카1671 판결

위 판결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원고는 몬로비아 브로드 스트리트 80에 주사무소를 둔 리베리아회사로서 1981년 4월1일 역시 리베리아 회사로서 주사무소를 원고와 같이하는 소외 토우체스트 쉽핑리미티드와의 사이에 이건 선박에 관한 선박관리계약을 체결 …토우체스트 쉽핑 리미티드의 사실상의 주소지는 칩스테드 리미티드 방으로 칩스테드리미티드와 주소가 같을 뿐 아니라 전화번호, 텔렉스번호도 같으며 …이들 두 사람은 형제간인 사실,

…국제외항해운에 종사하는 선박소유자나 기업은 자신이 소속된 국가 또는 실제로 선박의 운항에 관해 기업의 중추가 되는 회사가 소지하는 국가와는 별도의 국가인 파나마, 리베리아 등에 해운기업상 편의를 위해 형식적으로 개인 명의 또는 회사를 설립해 그 명의로 선박의 적을 두고(이른바 편의치적) 그 나라의 국기를 게양해 항해하며 실제소유자는 이와는 별도의 명의로 위 이름뿐인 회사 등과 관리계약을 체결해 마치 선박관리만을 담당하는 기업인 것처럼 행세함으로써

선박소유자가 자국과 선적국과의 사이에 발생하는 재무, 노무, 금융 등 각 부문의 수준차를 이용하고 기타 사회 제조건의 차이 및 행정상의 법령, 규칙, 단속감독의 정도차를 이용해 자유롭게 해운기업을 경영하는 방편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피고회사들뿐 아니라 다른 수리조선소나 기타 선박관련 사업자들도 편의치적선의 경우 형식상의 소유자를 따지지 않고 실제의 소유자인 관리회사와 모든 계약을 체결하고 대금을 받는 것이 통례로 돼 있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바….

원심이 확정한 바와 같다면 원고 및 토우체스트쉽핑리미티드와 칩스테드 리미티드는 외형상 별개의 회사로 돼 있으나 원고 및 토우체스트 쉽핑 리미티드는 이건 선박의 실제상 소유자인 칩스테드 리미티드가 편의치적을 위해 설립한 회사들로서 실제로는 사무실과 경영진 등이 동일하므로 이러한 지위에 있는 원고가 법률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는 회사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거나 법인격을 남용하는 것으로서 허용돼서는 아니된다할 것이다.

원심이 위와 같은 취지에서 편의치적을 위해 설립된 회사에 불과한 원고가 이 건 선박의 소유자라고 주장해 이건 가압류집행의 불허를 구하는 것은 선박의 편의치적이라는 일종의 편법행위가 용인되는 한계를 넘어서 채무면탈이라는 불법목적을 달성하려고 함에 지나지 아니해 신의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음은 정당하다.

다. 대법원 1989년 9월12일 선고, 89다카678 판결

위 판결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거시증거에 의해 원고회사는 1985년 12월10일 키프러스 국법에 따라 설립된 유한책임회사로서 본점 소재지가 키프러스국 변호사 몬타니오스 앤드몬타니 오스 법률사무소의 주소와 같고 그 임원은 1986년 2월3일까지는 소외 스콜라오스 및 카라코스타스이었다가 그 이후로는 소외 란트차나키스 및 스피리디스이고 원고회사의 주주는 카드쉽핑사(소유주식 500주, 갑 제16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키프러스 변호사가 가지고 있던 주식 2주는 후에 카드쉽핑사에게 양도됐으므로 원심의 이 점에 관한 판시부분은 잘못이나 판결결과에는 영향이 없다)와 폭스 글로브사인 사실,

이건 선박은 원래 이탈리아의 에라클리데회사의 소유였는데 1984년 7월5일 유니버샬 글로우 인크(이하 글로우회사라 한다)의 사주인 소외 안토니오스 렐라키스가 소외 마이크회사를 대표해 정기용선계약을 맺었고 한편으로는 글로우회사의 대표자로서 위 마이크회사를 위한 위 용선계약의 이행보증인이 됐다가 글로우회사는 1985년 12월6일 그 소속의 선장인 소외 하찌스를 불특정된 매수인의 대리인으로 내세워 위 에라클리데회사로부터 이건 선박을 매수한 사실,

글로우회사는 리베리아법인으로서 그 본점소재지는 리베리아이나 영업활동의 주사무소는 그리이스이고 그 런던사무소는 소외 인터나브사의 주소와 같으며 글로우회사는 위 안토니오스 렐라키스가 실제 소유자로 지배하고 있는 렉라키스 해운그룹의 주력선사로서 1984년, 1985년 경에는 리베리아, 파나마 등에 선박의 적을 둔 40여척 선박의 등기선주를 대리해 위 선박을 실제 관리·운영해 온 사실, 원고회사의 전 임원이던 소외 스콜라오스와 카라코스타스는 글로우회사의 직원 내지 이사이고 현 임원인 란트차나키스는 글로우회사의 인사담당자로 근무하다가 퇴직했고,

같은 스리리디스는 위 글로우회사의 재정담당자이며 원고회사의 주주인 위 카드쉽핑사와 폭스글로브사는 모두 리베리아법인으로서 그 본점소재지가 글로우회사와 동일할 뿐만 아니라 카드쉽핑사가 등기선주로 돼 있던 팔콘 1호와 폭스 글로브사가 등기선주로 돼 있던 셀마호의 실제 운영선사도 모두 글로우회사인 사실, 글로우회사는 울산항에 입항한 이건 선박의 선주자격으로 1986년 4월9일 소외 대전실업주식회사와 탱크청소계약을 체결했다가 이 사건 가압류 이후 위 소외 회사로부터 원고회사를 대리한 토니 트래불회사 명의로 다시 계약서(갑 제8호증의2)를 작성해 받았으나 글로우회사의 직원인 하찌스 및 마네스 등이 실제 청소작업에 참여해 그 계약이행을 감독한 사실,

글로우회사는 이 사건 소송이 계속 중인 1986년 10월10일 그가 실제 운영하는 원판시 선박들의 등기선주 및 원고회사 등 39개회사를 대리해 위 회사들이 소외 오션오일회사에 대해 부담하고 있는 미화 85만957달러 상당의 윤활유대금지급 채무에 대해 주채무자로서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한편, 위 안토니오스 렐라키스도 위 채무에 대한 담보로서 원고회사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채권 미화 20만달러을 오션오일회사에게 양도한 사실,

국제해운사업에 종사하는 선박의 실제소유자는 그 선박의 선적국과의 사이에 생기는 재무, 노무, 금융 등 각 부분의 수준차를 이용하고 기타 사회 제조건의 차이 및 행정상의 법규단속, 감독의 정도차이를 이용해 자유롭게 해운기업을 경영하기 위한 방편으로 선박소유자가 소속된 국가 또는 실제 그 선박의 운항에 관한 중추기업이 소재하는 국가와는 별도의 국가인 리베리아, 파나마 등에 형식적으로 개인명의 또는 법인을 설립해 그 명의로 선박의 적을 두고(이른바 편의치적) 그 나라의 국기를 게양하며

실제 소유자는 이와는 별도의 명의로 위 이름뿐인 법인 등과 관리계약을 체결하거나 대리인으로 행세하며 그러한 나라들에서는 그 기업의 설립사무를 담당한 법률사무소의 소재지를 위 형식뿐인 기업의 본점으로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피고회사뿐 아니라 전 세계의 수리조선소나 기타 선박관련 사업체들의 수주 현황도 편의치적선의 경우 실제의 소유자인 운영선사나 대리인으로 된 회사 등과 수리계약 등을 체결하거나 그 보증을 받아 채권확보를 하는 것이 통례인 사실을 인정한 다음,

위 인정사실에 비추어 볼때 원고회사와 글로우회사는 외형상 별개의 회사이나 원고회사는 글로우회사가 이건 선박을 편의치적시켜 소유 운영할 목적으로 설립한 형식상의 회사에 불과하고 이건 선박의 실제소유자는 글로우회사이므로 원고가 위 선박의 소유권을 주장해 이 사건 가압류집행의 불허를 구하는 것은 편의치적이라는 편법행위가 용인되는 한계를 넘어서 이건 선박수리비채무를 면탈하려는 불법목적을 달성하려고 함에 지나지 아니해 신의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는 바,

원심이 위 사실을 인정함에 있어 거친 증거의 취사과정을 기록에 비춰 살펴보아도 정당하고 거기에 소론과 같은 자유심증주의의 범위를 벗어난 잘못이나 채증법칙위반의 위법이 없고 또 그 판단에 소론과 같은 편의치적 및 신의칙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할 수 없다.

원심이 이건 선박의 실제소유자가 글로우회사라는 점을인정한 이상 원심이 가정해 부가적으로 판단한 민사소송법 제509조에서 말하는 제3자의 권리에 관한 판시부분은 판결결과에 영향이 없는 것이므로 그 판단에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는 논지는 그 당부를 판단할 필요 없이 이유 없는 것이다.

그리고 소론이 들고있는 당원 1977년 9월13일 선고, 74다954 판결은 ‘법인형태론’을 채용할 수 있는가에 관한 판단을 유보한 채 그 사건에서의 사안이 법인격이 형해화됐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어서 원심판결이 당원의 위 판례와 상반된다는 소론은 채용할 수가 없다.

라. 문제점 및 의견

대법원이 편의치적선에 대한 선박가압류에 관한 사건에서 법인격부인이론을 채택하고 그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것은 큰 의의가 있다.

영국에서는 ‘piercing the corporate veil’ 또는 ‘lifting the corporate veil’이라 해 선박집행과 관련해 법원이 명목상의 소유자 뒤에 숨은 진정한 소유자를 파악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며 회사의 형식이 진정한 소유자를 모호하게 하기 위한 고의적 의도로 이용되거나 회사구조가 단순한 껍데기에 불과한 경우 등에 법인격을 부인한다.

그러나 실제상으로는 하나의 선박만을 소유하기 위해 설립된 소위 ‘one ship company’의 적법성을 인정하고 사기의 개입이 증명되지 아니하는 한 법인격의 부인을 꺼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학자들에 의해 법인격부인이론의 정당성과 그 도입의 필요성이 역설돼 왔고 앞으로도 법률실무가들이 이 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회사제도를 이용해 회사의 배후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악덕기업인으로부터 선의의 피해자를 보호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의 구체적인 적용요건이 모호해 남용의 소지가 있음도 부인할 수 없으므로 그 적용요건을 엄격히 하는 한편 다른 방법으로 구제방법이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법인격부인을 원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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