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13 13:10

KSG에세이/무늬만 海技士 평생을 짝퉁으로 살며 얻은 벼슬 “해운계 甘草” (32)

서대남 편집위원
G-5 海運韓國을 돌이켜 보는 추억과 回想의 旅路 - (32)

2001년에도 엑스트라 부업 촬영은 계속했다. 그 곳 문경 새재의 상초리 세계 최대규모의 ‘태조왕건’ 사극 촬영장은 2만평의 넓은 터전에 옛 고증을 거쳐 이를 토대로 200억원 이상을 들여 기와집 48채, 초가집 47채와 저자거리 그리고 고려왕궁 후백제 왕궁 등을 그럴싸하게 재현한 것이었다. 게다가 워낙 넓다 보니까 눈 여겨 신경 쓰며 다니지 않으면 길을 잃거나 자기 소속 촬영팀들을 찾아 헤매기가 일쑤였다.

또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 인근 청풍 호반에도 후삼국시대의 개성 벽란도 포구를 실물처럼 완벽하게 재현하여 고려 광종을 그린 ‘제국의 아침’과 ‘대조영’, ‘명성왕후’로 활영이 이어졌다. 이 곳들은 드라마 이전 촬영장 자체만으로 유명했고 그 후 지금까지도 이름난 관광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王建이어 ‘女人天下·體驗 삶의 現場’서도 엑스트라 계속

몹시 눈보라치고 음산한 어느 혹한의 촬영 현장. 지금 돌이켜 봐도 너무나 아깝고 뼈아픈 기억이 있다. 일당 3만5천원에 밤샘 촬영수당을 합해야 5만원이 기껏인데 동료 K군과 휴식시간에 자판기 커피 한잔씩을 뽑은 후 안주머니에 되넣은 지갑이 나중에 일고보니 밖으로 흘러 새버린 것이었다. 푼돈 벌러 와서 쌈지의 목돈이 없어진 것이었다.

언 손이 여러겹으로 껴입은 병졸복 안주머니를 잘 못 더듬어 찔러 지갑이 새버리는 바람에 비상금으로 숨겨뒀던 제법 큰 자기앞 수표가 날아간 것. 이럴 때 적합한 비유가 “노적가리에 불 지르고 싸라기 주워 먹는 격” 이란 속담이리라.

몇 만원 출연료를 벌려다가 한달치 개런티에 해당되는 거금을 잃어버렸으니 이만저만한 헛 장사가 아니었다.
한편 엑스트라 출연과 관련, 뜻밖의 추억거리도 있다. 역시 몹시 춥던 어느 날 여주 신륵사 인근 강변에서의 촬영 때 였다. 새 박사 Y 교수가 KBS ‘체험, 삶의 현장’ 이란 프로에 주역 캐스팅이 됐고 필자가 함께 촬영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조연을 맡게 되었다. 뉴스 프로에는 자주 얼굴을 비쳤어도 단역을 맡아 연기(?)를 하기는 첨이라 긴장되었다.

당해 소재가 바로 어렵게 사극물의 모브신(mob scene)에 수염 달고 칼차고 창들고 엑스트라로 출연해서 쥐꼬리 출연료로 호구 지책을 삼는 사람들의 업종을 소개하며 그들의 애환을 담는 녹화였던 것. 몇 주 뒤 TV방송서 필자 얼굴을 알아 보고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 왔고 처음으로 단역이나마 얼굴을 보이는 엑스트라가 되긴 했으나 편집이 절반을 넘었다.


푼돈 벌려다 쌈짓돈 잃어 노적가리 불지르고 싸라기 줍기

고려사 실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태조 왕건(최수종 분)이 “인생은 참으로 덧 없는 것이다”라는 유언을 끝으로 막을 내릴 때까지 궁예(김영철 분), 견훤(서인석 분)과 강비(김혜리 분)의 곁을 맴돌던 때도 벌써 10년이 지났나 보다.

그 후에도 일산 탄현의 SBS 제작센터나 춘천호반 일원의 ‘청풍명월’영화 촬영지 등을 돌면서 나이든 신하나 병졸, 가마꾼 등으로 활약(?)했던 현장 경험과 추억은 아직도 지우기가 아깝다. 아픔없이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힘들지 않는 세상 일이 어디 있으리오만은 짧은 한 평생에서 미답의 세계를 현장 체험을 통해 삶의 폭과 양을 두루 다양화 해 보겠다는 필자같은 사치한(?) 욕망에서가 아니고 이를 호구지책 내지는 평생직업으로 삼고 가족을 부양하며 연명하는 엑스트라들의 그 혹한기 노동의 강도는 가히 눈물겹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겹 양말에 특수 방한화를 신고 털 내복을 입은 위에 전투복과 소품으로 무장을 해도 손발가락 감각이 전혀 없었다.

적병을 향해 돌격을 하거나 입성을 다투는 돌격전이나 육박전 촬영이 PD나 감독의 눈에 들지 않는 NG(연기실수)가 나게 되면 그리도 힘든 촬영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 시키는게 예사였다. 그럴 땐 정말로 죽었다고 복창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목을 치받는 숨참에 주저앉거나 꼬꾸라지지 않고는 못 배겼던 것이다.

특히 영화 촬영시 가마를 메고 뛰거나 상여를 멜 경우 필자같은 단신은 어깨가 닿지않아 수월할 때도 있지만 가끔 이를 눈치챈 장신들이 어깨를 낮추면 단신들에게 부하되는 중력은 엄청나서 역부족, 땅바닥을 파고들며 나 죽는다고 고함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숏다리’의 비애를 통감하는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생일 모임으로 필자 휘하 직계가족 전체를 집합, 지갑을 잃어 거금을 피해봤단 얘기는 숨기고 추위에 떨며 밤새 어렵사리 엑스트라로 번 촌지 봉투를 아들 며느리네와 딸 사위네에 하나씩 돌려 “엑스트라 할아버지 최고!”란 찬사를 받을 땐 은근히 재는 맛도 있었다. 역시 “돈으로 효자를 산다”는 말이 천만번 옳거니 생각되기도 했다.

이같이 고되고 힘들긴 해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엑스트라로 잠시 외도(?)를 하는 사이 새해 들면 필자가 K항업을 그만 둔다는 소문은 좁은 군산 바닥에 순식간에 퍼졌던 모양이었다. 현지에서 동종 업체에 종사하다가 독립하여 새 회사를 설립한 젊고 의욕적인 ‘(주)D마린’의 J사장으로부터 도움이 필요하다는 간절한 영입 제의를 받았다.


K港業 떠나 D마린으로 바로 옮겨 群山 못 떠나고 활동 연장

이왕 군산과 인연을 맺었으니 토 달 필요없이 새 회사란데 호기심이 생겼고 평소에도 가끔 보아온 터에 믿음도 가서 필자의 해운계 삶의 이력서에 한 줄을 더 긋게 되었다. 대우나 급여 및 근무조건은 K항업을 답습하는 ‘전관예우’였다.

직급은 필자 맘대로 정하라고 했으나 마땅한게 떠오르지 않았다. 궁리끝에 이번이 마지막 재활용이려니 생각돼 “상임 고문”을 택했고 모두 그게 좋겠대서 ‘(주)D마린 상임고문’ 명함을 새기고 재 출정의 깃발을 높이 올렸다.

일거리 물어 나르는 영업이란 게 ‘요령은 전과 동’으로 뻔했지만 소속을 옮겼으니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부담은 따랐다. 다시 한번 날을 세우며 각오는 단단했으나 직원들이나 거래처 모두가 약간의 낯가림으로 조금은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K항업에서의 파트너 박정식 영업부장은 전공을 살려 이미 부산에 자리한 모 법무법인의 해운담당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고 전해 왔다.

무엇보다 한가지 편한 건 전 같이 저인망을 치고 불특정 다수의 거래대상을 찾아 쏘다니며 대시를 할 필요가 없이 J사장이 지정해 주는 오더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시간이 여유로워서 좋았고 젊은 사장이 현장에서 본선 실무작업을 통해 화물감독이나 수퍼바이저들과 함께 움직이며 쌓아 올렸던 신뢰를 바탕과 밑천으로 직접 상경해서 거래처를 찾아 상대했다.

필자, 나이든 고문은 서울역에 내리는 젊은 J사장을 잘 모시고 거래처와의 약속 장소로 길 안내를 하거나 선사의 거물급(?)을 콘택트할 때 동행하여 상담시 옆 자리에 앉아 얼굴만 비쳐주면 되는 최 특과(?)의 보직이었다. 급여와는 별도로 차량유지비를 받기까지 하는 처우가 마치 관료 출신이 산하 단체나 업체에 ‘고문’이란 이름만 걸고 꼬박꼬박 공짜 돈 챙기는 것 같이 보일까 민망했다.

그러나 ‘고운 사람 미운 데 없고 미운 사람 고운 데 없다’고 했다. 안방과 부엌의 계산(?)은 서로가 다르려니 뺨 맞을 놈이 여기 때려라 저기 때려라 못 하듯이 소쿠리 들고 떡 주는데 이 떡 달라 저 떡 달라 못 할 바에야 감지덕지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육순 나이에 해운업계 주위를 맴돌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영광과 행운으로 여길 따름이었다.

한편 2001년 정기총회에서 주요 경제단체의 하나로 손꼽히는 한국선주협회에서 임원으로만 16년을 재직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고 박창홍 전무이사가 드디어 떠났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해기사 출신으로 범양상선에서 협회 파견근무를 계기로 인연이 됐던 박찬재 상무이사(한국해대 27기)가 바톤을 이어 사무국 수장으로 전무이사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船協사무국도 朴燦在전무·丁海龍상무 승진체제로 새 출발

서울대 출신으로 필자를 위시하여 협회 국제업무 담당 부서장 및 상무들의 직무를 사실상 대행하며 국제부장을 거쳐 런던주재 구주 사무소장을 지내다가 IMF 사태로 복귀한 정해용 이사가 상무이사로 승진하게 되었다.
문무(?)를 겸비한 선장출신의 유능한 해기사 전무와 뛰어난 외국어 실력으로 협회 국제업무를 도맡아 처리해 온 상무가 콤비를 이뤄 사무국은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빌린 부채를 모두 갚고 한국은 3년8개월만에 IMF 관리체제를 졸업하고 외환위기 사태가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그러나 세계경제 침체로 해운기업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게 되고 드디어 업계의 부러움을 받으며 성장을 거듭하던 조양상선과 장영해운의 파산선고라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게 된다. 슬픈 일이었다.
해상물동량도 전년비 12%가 줄어 4억7천만톤에 그쳤고 국적선 적취율 27%에 운임수입도 110억달러에 멈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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