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7 17:54
한국 조선 ‘IFRS 개정안’ 관철 실패.. 회계대란 비상
한국 조선업계가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의 원칙론에 막혀 국제회계기준(IFRS) 위험회피 회계처리 개정안에 한국측 입장을 관철시키는 데 최종 실패했다. 현재의 IFRS 개정 초안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세계 톱 조선사도 부채비율이 급등, 한순간에 부실기업으로 전락할 수 있어 추가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파악된다.
27일 한국조선협회 고위 관계자는 “최근 발표한 IFRS의 위험회피 회계처리 공개초안(ED·Exposure Draft)에 그간 한국 조선사들이 주장해온 차감표시(LP·Linked Presentaion) 방안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내년 3월 초까지 공개초안에 대한 의견수렴이 진행돼 상황은 여의치 않아졌지만 한국측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보고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정 IFRS 도입 시 조선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장부상 부채 비율 급등이다. 금융당국 및 한국조선협회, 회계학계 등은 환율변동에 취약한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LP방안을 제시했지만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는 IASB를 설득하기엔 역부족이다. 한국 조선업계는 달러로 건조계약을 체결, 이때부터 선박 건조가 진행되는 3∼5년간 지속적으로 환위험에 노출돼 분기별로 환율변동에 따라 부채 비율이 급변한다.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외환관련 파생상품을 이용하지만 개정 IFRS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장부상 부채 비율이 급증, 우량기업이 한순간에 부실기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지난 1년간 한국 조선업계의 IASB 설득 작업은 외롭고 고된 싸움이었다. ‘막상 IASB가 있는 영국 런던으로 날아갔지만 누구를 만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부딪치고 하소연했지만….’ 지난 2월 한국 조선업계 IFRS 설득안을 들고 런던 IASB본부를 찾았던 한 국내 대형 회계법인 중견 회계사의 고백이다.
조선업계는 건설업계에 비해 IFRS 도입 파장을 일찌감치 감지하고 초기 금융당국의 지원없이 회계학계와 팀을 꾸려 1년여간에 걸쳐 IASB 설득에 나섰으나 현실의 벽은 높기만 했다. IASB는 한국이 제안한 LP 방안이 현행 IFRS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보고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예외 규정을 인정할 경우 IFRS의 권위가 추락할 수 있다는 게 IASB가 가장 우려하는 점이다. 무엇보다 ‘왜 한국만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생각이 가장 큰 장애였다.
조선협회 관계자는 “지난 2월 영국에 가보니 한국에선 내노라하는 저명한 회계학자들도 IASB에선 발언권이 없어 한마디도 못해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고 말했다. 국제 회계학계에서 한국 회계학계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 조선업은 세계 최고지만 회계 위상은 변방에 불과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특수성을 인정할 리 만무하다는 것.
문제는 IFRS 대란이 조선업종을 시작으로 해운, 항공, 건설 등 여타 산업으로 도미노처럼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대 경영학과 정도진 교수는 “IFRS는 현재 분야별로 지속적으로 개정작업이 이뤄지고 있어 언제 어떻게 우리 기업에 불리하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대부분 그룹사들을 비롯, 개별 기업들이 아무런 위기의식도 없이 손놓고 있는 실정이다”고 지적했다.
해운·항공업종은 손놓고 있다가 대책 마련에 들어간 대표적인 경우다. 당초 이 두 업종은 IFRS 리스 기준서 개정작업에 한국측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막상 지난 8월 공개초안이 발표된 후에야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 추가 대책에 들어갔다.
해운, 항공업종의 경우 지금까지는 임차한 선박, 항공기 사용료를 자산, 부채로 잡지 않았으나 향후 IFRS 개정 리스기준서가 적용되면 운용리스 회계처리가 폐지됨에 따라 모두 분기별로 자산, 부채로 처리해야 한다. 부채 비율이 자연히 급증하며 분기별로 1년 미만부터 장기 20년까지 임차기간이 천차만별인 수백척의 선박들의 임대비용을 모두 계산해서 올려야 한다. 현재 한국선주협회는 금융당국 및 회계 전문가들과 팀을 꾸려 집중 설득작업에 돌입했다. 국내 대형 해운사 회계담당자는 “미래 지급비용까지 모두 분기별로 부채로 기입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한다. 현재로선 IASB의 보수적인 입장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해운업계도 조선업계와 마찬가지로 내년 상반기 개정안 최종 통과 시점까지 IASB에 입장을 적극 개진할 계획이다.<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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