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공급 늘어나 시장 악화 우려도
●●● 대한통운 한진 동방 세방 KCTC 국보. 이들의 공통점은 국내 대표적인 컨테이너 전문 육상수송 회사라는 점이다. 부산항과 광양항 인천항 평택항 울산항 등에 거점을 두고 부두 운영과 화물 수송을 통해 많은 수익을 거둬들여 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사업분야가 다양화되고 있다. 이른바 종합물류 개념이 확산되면서 이들 기업들은 신수종 사업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기업들의 이런 노력 한편에 중량물 수송사업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와 조선 경기 회복, 국내 건설업체의 해외 수주 증가 등으로 중량물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내 물류기업들이 관련 시장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이들 기업은 육상운송-항만하역-해상운송을 연계한 일괄운송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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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통운의 2만5천t급 탱커선 운송 모습 |
특히 자체 동력을 갖춘 중량물 전용 바지선(자항선)을 도입하며 도크와이즈 점보쉬핑 롤독 등으로 대표되는 유럽계 선사들이 장악한 중량물 해상수송시장에 명함을 내밀고 있다.
중량물 수송 맏형 동방…앞선 투자로 경쟁력 우위
국내에서 자항선을 통한 중량물 해상수송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곳은 동방이다. 동방은 국내 중량물 수송시장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992년 포스코의 철제품 해상운송을 시작으로 중량물 수송시장에 발을 들인 동방은 현대하이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회사 생산품을 비롯해 선박블록 조선기자재 등 중량물 해상수송서비스를 벌여 오고 있다.
특히 지난 2006년 국내 최초의 자항선인 1만1천t(재화중량톤)급 <동방자이언트>호를 인도받아 국내 수송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동방자이언트>호는 같은 해 9월 인도된 뒤 처음으로 마산항에서 첫 항해에 나서며 중량물 수송사업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이 선박은 첫 취항에서 두산중공업의 4500t 중량화물을 도착지인 쿠웨이트의 슈아이바항까지 무사히 수송했다.
자체동력과 자동 선적·하역시스템을 갖춘 자항선 도입으로 동방은 연근해 위주의 중량물 수송사업을 중동이나 유럽 등 전 세계 해외시장으로 확장했다. 경쟁업체들이 해외 수송은 외국회사들에게 맡길 동안 동방은 자항선을 통해 플랜트 화물의 점유율을 높여 갔다. 동방은 2008년과 올해 7월엔 각각 1만2천t급 2호선과 1만5천t급 3호선을 추가로 도입하기도 했다. 동방은 자항선 도입 이후 올해까지 50여회의 중량물 수송을 벌이며 경쟁업체들을 앞서 나갔다.
올해 3월엔 현대상선 현대로지엠과 합작 투자로 현대동방아틀라스를 설립해 중동지역 프로젝트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대한통운·한진, 자항선 도입으로 추격
국내 1위 물류기업인 대한통운도 최근 자항선을 발주하며 신성장 동력 확보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 6월 대한통운은 1만5천t급 자항선 2척을 발주했다. 내년께 신조선이 인도되면 대한통운은 그동안 닦아온 중량물 수송 경쟁력에 방점을 찍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지난해 1만2천t급 중량물 전용 바지선 2척을 인도받아 중국 일본 등 연안 중량물 해상운송에 투입하기도 했다.
대한통운의 강점은 육상과 해상에 걸친 입체적인 중량물 운송 능력과 수십여 년에 걸친 노하우, 전문인력이다. 과거 고리원자력 1호기, 서울 당인리 화력발전소 등을 비롯한 원전 및 화력발전소 기자재와 건설물자를 다수 운송했다.
대한통운 관계자는 “향후 대형 발전설비, 플랜트 물자 등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이에 대비해 특수전용선박 등을 발주했으며, 글로벌 중량물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6월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 전체를 한번에 운송해 화제를 모았다. 선박을 몇 개의 블록으로 나눠 운송하는 경우는 자주 있었지만 거의 완성된 배 전체를 통째로 운송한 것은 대한통운이 처음이다. 치밀한 하중 계산과 전문 노하우를 통한 쾌거다.
한진도 중국과 일본 등 일부 지역에 국한해 벌이던 중량화물 운송사업 확대에 나섰다.
한진은 중량화물 해상운송 능력 강화를 위해 연말께 1만5천t급 자항선을 도입할 계획이다. 현재 한진은 전자식, 기계식 모듈 등 총 20여대의 멀티모듈트레일러와 자력바지선 등 중량물 전용의 첨단 운송장비를 보유하고 신안 증도대교, 완도대교 건설 등을 위한 건설 기자재와 물자를 다수 운송해 왔다.
최근엔 1만2천t급 스틸브리지 블록을 첨단 운송장비를 투입해 육상과 해상에 걸쳐 운반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 현지까지 담수플랜트 4기의 운반에 성공하는 등 해외 신시장 개척에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통강자 세방, 다크호스 KCTC·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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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첫 자항선 1만1천t급 <동방자이언트>호 |
세방은 아직까지 자항선 투자계획이 없지만 1만7천t급을 비롯해 8천t급 3천t급 중량물 수송용 바지선과 예인선을 갖추고 발전소, 석유화학공장, 선박기자재, 중공업용 초중량화물을 국내 연안은 물론 일본, 중국, 대만 등 동남아까지 운송하고 있다. 특히 50여대의 모듈트레일러를 확보해 중량물의 육상수송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 최대 7200t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인양장비 세방크라모를 작년 하반기에 100%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해 차별화에 나서기도 했다. 세방크라모는 지난 6월 세계에서 가장 큰 초대형 골리앗크레인을 대우조선해양 거제조선소까지 운반 후 설치하는데 쓰여 이목을 끌었다.
이 크레인은 대우조선해양이 제작한 900t급 골리앗크레인으로, 길이 230m, 높이 100m, 총 중량이 6800t에 달하는 세계 최대규모다. 세방은 세방크라모를 사용해 골리앗크레인을 직접 들어올려 안착시키는 방식으로 작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세방 관계자는 “올해 4월에 중량 1100t의 정유설비를 인양해 설치한 것에 이어 두번째 초중량 인양 설치 작업에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KCTC도 중량물 시장 개척에 나섰다. 몇 년 전 중량물 수송에 진출한 뒤 20건에 이르는 프로젝트화물 수송에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현대중공업의 1545t JIB크레인을 수송했으며 증도대교 상부교각 수송에도 참여했다. 발전소 설비와 변압기, 가스터빈 공장용 타워 등 화물 형태도 다양하다. 올해 들어선 화력발전소에 들어가는 주설비 수송에 이어 중량물 수송 중에서도 까다롭다는 원자력발전 설비 수송에도 성공하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초중량물 운송 장비인 모듈트레일러 148축과 2290마력의 예인선, 250t급 해상크레인, 1만t짜리 부선 등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자항선 전문선사인 HMT메가라인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메가라인이 운항중인 선박은 1만6800t급, 1만7300t급 자항선 1척씩을 비롯해 3만5천t 반잠수식 자항선 1척 등이다. 반잠수식 선박은 오프쇼어 프로젝트와 시추선을 옮길 때 쓰이는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KCTC만이 유일하게 1척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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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방이 자체 인양장비인 세방크라모를 통해 운반한 세계 최대 골리앗 크레인 |
국보도 자회사인 SLK국보를 앞세워 중량물 수송사업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올해 2월 SLK국보는 대우건설이 알제리 오란 지역에 건설하는 비료공장용 기자재 수송을 성공리에 마치며 중량물 수송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SLK국보는 크레인이 장착된 준설바지선 5척과 예인선 2척, 2만t급 반잠수함 1척을 투입해 거제 고현항에서 알제리 아르주항까지 프로젝트 화물들을 무사히 수송했다.
중량물 시장 전망 엇갈려
이 같이 중량물 시장이 기업들의 잇따른 진출과 함께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향후 전망을 두고는 시선이 엇갈린다.
우선 플랜트 시장 활성화로 중량물 수송시장도 성장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란 의견이다. 중동 정유시설 증설 아프리카 산업시설 개발 북미나 구주쪽 풍력발전 태양열발전 설비 확충, 호주 LNG프로젝트 등이 기대해볼 만하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해외플랜트 수주액이 사상 첫 500억달러 고지를 돌파한 것으로 나타나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지난해 연간 실적인 463억달러보다도 9.5% 웃도는 실적이다. 해외플랜트 실적 증가는 초대형 프로젝트인 UAE 원전(186억달러) 수주와 중동 중남미 산유국들의 에너지플랜트 투자 확대 등에 따른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전통적인 주력 시장인 중동에서 전체의 약 72%인 366억달러를 수주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물류기업들의 잇따른 중량물 시장 진출로 외형 확대에 반비례해 수익성은 오히려 뒷걸음질 칠 것이란 우려도 크다. 특히 자항선을 통한 수송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자항선은 동방이 3척, HMT메가라인이 2척을 보유한 상태다. 한진이 12월에 1척을 인도받을 예정이며, 대한통운과 HMT메가라인은 내년 인도 목표로 각각 2척씩을 발주해 놨다.
중량물 수송기업 한 관계자는 “자항선이 잇달아 도입되면서 선박 공급이 물동량을 넘어설 것으로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존 유럽계 선사들과의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어서 시황이 썩 밝진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상반기까지 플랜트 투자가 많았지만 하반기 들어서면서 거래가 뚝 끊겼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해 비교적 비관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이경희 차장 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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