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24 08:33
1. 서론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계기로 다시 시작된 남북교역은 약 20여년의 세월만큼이나 그 규모와 내용면에서 적지 않은 진전이 있었다. 실제로 남북한 교역액은 교역초기인 1989년의 약 1,870만달러에서, 2008년에 약 18억2천만달러의 최고 실적치를 기록함으로써 거의 100배에 가까운 폭발적인 성장세를 나타내었다. 물론 교역규모가 커지면서 교역의 내용면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즉 남북교역은 교역초기의 소위 '유무상통'에 입각한 단순 상품교역에서 출발하여 이후 초보적인 형태의 경제협력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위탁가공교역을 거쳐 이제는 개성공단처럼 북한지역에 대한 직접투자의 단계까지 진전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역증가의 속도와 교역단계의 진전(단순상품교역->위탁가공->직접투자)만을 고려할 경우 남과 북은 교역초기에 비해 상호간의 경제적 의존도가 더욱 심화되었다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를 선뜻 받아들이기에는 아직도 남북교역은 여전히 분단국의 한계에서 파생되는 적지 않은 제약요인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러한 제약요인은 남북교역을 제3국과의 교역과 구별 짓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남북교역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통상의 국가간 무역관계와는 달리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여러 가지의 요인들을 반영하게 된다. 따라서 남과 북의 교역을, 이를 구성하는 다양한 거래유형으로 구분하여 보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서는 남북교역의 특성과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데 있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본고는 이러한 이유에서 남북간에 나타나는 다양한 거래유형별로 남북교역을 세분하여, 남북교역이 거래유형별로 어떻게 변화되어 왔고 그러한 변화가 내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본고는 우선 남북교역의 전반적인 추이를 소개하고, 이후 남과 북의 (거래)유형별 교역구조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고, 이후 유형별 교역구조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특징과 의미를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분석을 통해 얻은 시사점을 기술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2. 남북교역 추이
지난 20여년간 남과 북의 교역규모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였다. 실제로 남북교역의 초기 연도인 1989년과 1990년의 경우 남과 북의 교역액은 각각 1천8백7십만달러와 1천3백5십만달러에 불과하였고 거래내용 또한 거의 모두가 남한의 반입으로 구성된 일반교역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난 2008년과 2009년의 남북교역 규모는 각각 18억2천4십만달러와 16억7천9백1십만달러로 교역초기에 비해 약 100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북한의 대외무역량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남북교역이 빠르게 증가하고, 북한의 대외무역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남북교역은 자연히 북한의 전체 대외무역 구조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남북교역이 북한무역에서 점하는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이는 다시 말해 북한 대외무역의 남북교역에의 의존성이 커졌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 북한의 전체 대외무역에서 남북교역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이전에 비해 매우 커졌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남북교역의 시작 초기인 1990년의 경우 북한의 전체 대외무역에서 차지하는 남북교역규모는 겨우 0.3%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기 이후 경제협력이 활성화됨에 따라 남북교역이 북한 전체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5~25% 수준까지 높아졌다. 이러한 흐름은 200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었고, 2005년 이후 개성공단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남북교역이 북한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넘어서기 시작하였다. 특히 2007년의 경우 남북교역 비중이 약 37.9%에 달할 정도로 북한무역의 남북교역 의존도는 빠르게 확대되었다.
한편 두 번째의 중요한 변화는 북한수출에서 차지하는 남한시장의 중요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북한수출은 중국, 일본, 러시아 및 구동구권 등에 치중되어있었고 수출시장으로서의 남한시장의 존재감은 매우 미미하였다.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여 교역초기인 1990년의 경우만 하더라도 남한시장이 북한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0.7%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이후 남북교역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남한시장이 북한수출에 있어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높아지게 되었다. 이 비중은 1990년대 중반에 20%를 넘어섰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30% 가까이 근접하였다.
이후 개성공단이 본격 가동되면서 이 비중은 더욱 높아져 지난 2007년 이후 남한시장이 북한의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를 넘어서게 되었다. 북한수입에서 차지하는 남한(반출)의 비중도 수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점차 그 비중이 높아져 교역초기 1% 미만에 그쳤던 비중이 2007년의 경우 최고 33.7%를 기록하였다.
마지막으로 남북교역의 양적증가와 더불어 그 질적인 면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즉 거래유형이 초기의 단순 상품교역에서 위탁가공을 거쳐 직접투자의 단계로 이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교역 초기 연도인 1989년과 1990년에 있어서의 남북교역은 남한의 반입이 대부분인 단순 일반교역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92년부터 소규모 위탁가공교역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이후 1998년에는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일환으로 금강산 관광사업이 시작되었으며, 2003년 6월에는 개성공단이 착공되어 남북교역은 본격적인 직접투자의 단계로 이행하게 되었다.
물론 남북교역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상업적 거래만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 즉 1990년대 중반기에는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다자간 경제협력사업의 일환으로 경수로사업이 추진되었고, 이에 따라 북한에 대한 다양한 지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또한 2000년의 남북 정상회담 이후 쌀과 비료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북지원이 연례적으로 정례화됨으로써 2006년까지는 비상업적 거래가 전체 남북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40% 내외를 기록할 정도로 비상업적 거래 역시 남북교역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였다.
3. 남북한 유형별 교역구조의 변화
3.1 남북교역의 거래유형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남북교역에는 다양한 거래유형이 존재한다. 이는 남북교역이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즉 상업적 거래가 중심이 되는 통상의 국가간 무역과는 달리 인도적 지원과 같은 비상업적 거래는 물론 다양한 형태의 남북간 협력사업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남북교역통계는 거래유형을 크게 상업적 거래와 비상업적 거래로 나누고 있는데 상업적 거래에는 일반교역과 위탁가공교역 그리고 경제협력사업(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경공업협력, 기타 경제협력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주로 지원성 사업을 의미하는 비상업적 거래는 대북지원거래와 사회문화 협력사업에 따른 물자이동, 경수로 건설사업과 KEDO의 중유지원 그리고 2007년부터 나타난 에너지지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거래유형에 관한 이러한 분류체계가 교역초기부터 일관되게 적용되어 온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통일부는 2005년까지 남북교역의 거래유형을 크게 '거래성 교역'과 '비거래성 교역'으로 구분하여 교역통계를 제공해 왔는데 '거래성 교역'에는 '상업적 매매거래'와 '위탁가공교역'이 포함되었으며 '비거래성 교역'은 다시 '협력사업'과 '지원물자'로 대분되어 '협력사업'에는 '경수로사업'과 '금강산 관광사업' 그리고 '기타 협력사업'이, '지원물자'에는 'KEDO 중유'와 '대북지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현재의 분류체계에 맞추어 거래유형별로 남북교역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분류체계에 의해 집계된 통계를 현재의 분류체계에 맞게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
3.2 거래유형별 교역구조
남북교역의 거래유형은 남과 북을 둘러싸고 있는 대내외적인 경제환경의 변화뿐만 아니라 분단국의 특수성도 반영한다. 즉 남북간 거래유형별 교역규모와 그 변화는 해당시기의 남북관계를 나타내는 일종의 거울이며 따라서 지난 20여년간의 남북관계 변화는 남북교역의 거래유형과 규모의 변화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인도적 지원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이유의 다양한 대북지원이 대부분인 비상업적 거래는 남북관계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움직여 왔기 때문에 그 규모의 변화 자체가 남북관계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비상업적 거래의 경우 남북경협이 시작된 1989년부터 1994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시기에는 시험적 수준의 상업적 거래(즉 일반교역과 위탁가공교역)만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5년부터 시작된 대북지원과 KEDO의 중유지원 그리고 1997년부터 경수로 건설사업이 시작되면서 비상업적 거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부 차원의 쌀과 비료의 대북지원이 2000년 정상회담 이후 연례적으로 정례화됨으로써 비상업적 거래의 비중은 전체교역의 40%가 넘는 수준까지 높아졌다.
지난 20여년을 돌이켜 보면 전체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상업적 거래의 비중은 1995년에는 불과 3.8%에 머물렀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00년에는 35.7%, 2002년에는 무려 42.7%에 달하였다. 이후 점차 비중이 줄기 시작해 2007년에는 20.2% 그리고 대북지원이 중단된 2008년과 2009년에는 각각 6.0%와 2.2%로 급격히 감소하였다. 물론 상업적 거래는 이와 반대의 양상을 보였다. 즉 교역초기에는 교역의 대부분이 상업적 거래로 이루어졌으나 1990년대 후반이후 비상업적 거래가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그 비중이 줄어들기 시작하였으나, 이후 개성공단이 본격 가동되면서 비중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7년에는 거의 80%가까이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대북지원이 중단된 2008년과 2009년의 경우 각각 94%와 97.8%로 회복되었다.
한편 상업적 거래와 비상업적 거래의 반출입구조는 그 특징을 그대로 반영해 비상업적 거래에서는 반입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반출로만 구성되어 있다. 2000년의 경우 비상업적 거래의 반출이 전체 반출에서 점하는 비중은 55.6%였고, 2002년에는 74.0%에 달하기까지 하였으나 이후 2007년에는 35.3% 그리고 2008년과 2009년에는 각각 12.2%와 5%로 크게 하락하고 있다. 이는 물론 2008년 이후 대북지원이 중단된 측면을 반영한 것이다.
반면 상업적 거래에서는 개성공단이 본격화되기 전인 2004년까지 반출의 비중이반입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에, 2000년대 이후에는 반출의 경우 오히려 비상업적 거래의 반출이 상업적 거래의 반출보다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2007년 이후 반전되어 2008년과 2009년의 경우 전체 반출에서 차지하는 상업적 거래의 반출은 각각 87.8%와 95%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반입의 경우 당연히 상업적 거래의 반입이 전체 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 상업적 거래의 유형별 교역구조 변화
비록 남북관계의 특수성이 반영되어 비상업적 거래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기는 했으나 남북교역 역시 타국과의 거래와 마찬가지로 거래의 중심은 여전히 상업적 거래가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1997년까지 남북교역은 순수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라고 할 수 있는 상업적 매매(거래성 교역)에 국한되었다. 초기에는 일반교역이 중심이었으나 1992년부터 위탁가공교역이 시작되었다.이후 1998년부터 금강산 관광사업, 2004년부터 개성공단사업과 관련된 물자이동에 따라 경제협력사업 부문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상업적 거래에서 점하는 경제협력부문의 비중은 1998년에 21.3%에 달했고 그 이후 점차 감소추세를 보였지만, 2005년 이후 개성공단사업이 본격화됨에 따라 비중이 점차 증가하기 시작해 2006년에 40%를 넘어섰고, 2008년에는 52.8%를 기록해 이 부문이 거래성 교역(일반교역과 위탁 가공교역)의 비중을 초과하게 되었으며 이는 2009년까지 지속되고 있다. 경제협력사업부문에 있어서는 단연 개성공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개성공단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2005년 이후 전체 경제협력사업 부문에 있어서의 교역의 대부분은 개성공단이 차지하고 있다.
한편 거래성 교역(일반교역과 위탁가공교역)의 경우 교역초기에는 일반 교역이 압도적이었으나 위탁가공교역이 시작된 1992년 이후 위탁가공교역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여 1998년 이후 일반교역의 비중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가장 최근 연도인 2008년과 2009년의 경우 상업적 거래에서 일반교역이 점하는 비중은 각각 23.3%와 15.6%이며, 위탁가공교역은 각각 23.9%와 25%를 차지하였다. 이는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대결국면에 빠질 경우 위탁가공교역보다는 상대적으로 일반교역이 더욱 위축된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왜냐하면 정부당국의 정책적 재량권이 위탁가공교역보다는 상대적으로 일반교역을 대상으로 행사하기가 더욱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교역을 통해 나타나는 교역수지는 다른 거래유형의 교역수지와는 달리 해석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을 필요가 있다. 즉 위탁가공교역이나 개성공단의 경우 그 실제의 교역형태는 남한이 원부자재를 공급하고 이를 북한 지역내 북측 근로자의 임가공을 통해 다시 남한으로 상품을 반입하는 형태이므로 비록 교역이 증가할 경우 이에 따라 임가공에 의한 외화수입이 커질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교역수지에서 나타나는 수치가 그대로 북한의 외화수급과 연결된다고 볼 수는없다.
반면 일반교역의 경우 무역수지는 그대로 북한의 외화수급과 연결되기 때문에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일방적인 남한의 반입, 즉 일방적인 북한의 수출이라는 형태를 가지고 있는 일반교역은 북한의 외화수급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교역에 있어 북한은 2007년에 약 4억2천1백만달러의 교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 들어선 2008년과 2009년에 교역수지 흑자규모가 각각 3억3천3백만달러와 2억3천4백만달러로 축소되어 남북교역을 통한 외화수급에 있어 적지 않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개성공단의 경우 본격 가동된 2005년 이후 그 교역규모는 여전히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반입의 경우 2007년 이후 여전히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음에 비해 반출의 경우 2008년까지 증가추세를 보여 왔으나 2009년에 들어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동안 입주기업들의 공장설립과 관련된 자재 등의 반출이 공장설립 등이 마무리되면서 증가세가 위축된 측면도 반영하고 있겠지만 개성공단으로의 반출은 향후 남한으로의 상품반입을 위한 원부자재의 공급이라는 측면도 반영하고 있으므로 반출의 감소가 지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개성공단의 교역감소와 공단의 침체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측면에서 금강산 관광중단과 더불어 최근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향후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협력사업 부분의 교역이 감소추세로 돌아설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매우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나. 비상업적 거래의 유형별 교역구조 변화
남북교역에 있어서의 비상업적 거래는 1995년에 대북지원과 KEDO의 중유지원으로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비상업적 거래의 유형으로는 크게 대북지원과 사회문화협력 그리고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다자간 협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집행한 경수로 건설과 에너지 제공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5년의 경우 비상업적 거래에서 차지하는 각 항목의 비중을 살펴보면 대북지원이 2%, KEDO 중유지원이 98%를 점했으나 2000년에 이르러서는 대북지원이 68.8%, 경수로 건설이 23.5%, KEDO 중유지원이 7.7%를 기록하여 2000년부터 대북지원이 급격히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2003년 이후부터 경수로 건설과 KEDO의 대북 중유지원이 중단됨에 따라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비상업적 거래의 거의 전부가 이를 제외한 대북지원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2007년 이후 대북지원규모가 감소하고 에너지 지원이 일부 이루어짐으로써 2008년 현재 비상업적 거래 중 대북지원은 61.5%, 에너지 지원은 37.1%를 구성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비상업적 거래에 있어 경수로 건설과 KEDO 중유지원이 다소 높은 비중을 차지한 적이 있기는 하나 이들 예외적인 사업을 배제할 경우 비상업적 거래의 중심은 여전히 민간 및 정부의 대북지원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2007년과 2008년에 대북지원이 축소되는 추세에 있고 현재의 첨예한 긴장국면에 놓인 남북관계를 생각할 때 비상업적 거래가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설 가능성은 당분간 매우 낮다고 볼 것이다. 다만 2009년의 경우 우리 정부가 신종플루에 대한 방역차원에서 북한에 타미플루 등의 관련 약품을 지원함으로써 대북지원이 전체 비상업적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8.4%로 다시 높아지기는 했으나 이는 전세계적인 신종플루 유행이라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발생한 대북지원의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남북한 유형별 교역구조 변화의 특징
비록 남북관계의 특수성, 북한 핵문제와 같은 경제 외적인 요인 등으로 인해 연도별로 기복을 보이기는 했으나 남과 북의 교역이 다시 재개되고 약 20여년이 흐르는 동안 남북교역은 양적인 측면에서나 교역단계의 발전이라는 질적인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왔다. 양적인 측면에서 볼 경우 교역액이 최고치를 보인 지난 2008년의 경우 남북교역규모는 약 18억 2천만달러를 기록해 1989년 대비 100배에 가까운 급속한 성장세를 시현하였다.
또한 질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교역초기인 1989년과 1990년의 경우, 거의 모두가 남한의 반입으로 구성된 시험적 거래수준의 일반교역에 머물렀던 남북교역은 이후 위탁가공교역뿐만 아니라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협력사업은 물론 다양한 형태의 대북지원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 규모도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지난 20여 년간의 남북교역의 규모와 그 유형에서 나타난 변화와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상업적 거래와 비상업적 거래에서 남북교역은 1994년까지는 일반교역, 위탁가공교역 등 전적으로 상업적 베이스에서 운영되었으나 1995년부터 경수로사업, 대북지원 등 비상업적 거래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대북지원이 거의 정례화됨에 따라 비상업적 거래의 비중이 40%를 넘는 구조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업적 거래와 비상업적 거래 구조는 2007년부터 상업적 거래의 비중이 80% 수준으로 올라서고 2008년과 2009년에는 다시 1995년의 95% 수준 이상으로 복귀되었다. 이는 비록 그동안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였던 대북지원이 중단되어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현재의 남북교역이 상업적 베이스를 중심으로 점차 변화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는 상업적 거래에서 경제협력사업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사업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개성공단사업의 본격적인 가동에 따른 결과지만 거래성 교역(일반교역과 위탁가공교역)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을 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세 번째로는 거래성 교역 중 위탁가공교역은 반출과 반입에서 상당히 안정적인 성장 추이를 보이는 데 반해 일반교역은 거의 일방적인 남한의 반입구조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위탁가공교역의 경우 시작연도인 1992년에 83만 9천달러에 불과하던 것이 거의 매년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 2008년과 2009년에는 각각 408.3백만달러와 409.7백만달러를 기록하고 있으며 반출과 반입 모두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일반 교역의 경우 전체 반출입의 거의 전부를 남한의 반입이 채우는 일방적인 남한 반입구조로 정착화되고 있다. 실제로 남한의 총반출에서 일반교역의 반출이 점하는 비중은 지난 3년간 1%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일반교역에 있어 반출과 반입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극심한 불균형은 기본적으로 북한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즉 구매력 부족과 북한상품의 경쟁력 열위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따라서 북한의 경제력이 일정수준에 올라서지 않는 한 일반교역에 있어서의 불안정하고 불균형한 구조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남북교역의 다양한 거래유형에 있어 북한의 외화수급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통로인 일반교역에 있어 북한의 교역수지 흑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남북교역에서 북한 외화획득의 주요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교역의 반출입 구조를 살펴보면 2005년 이후 90% 이상이 남한의 반입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로 인해 북한이 거둔 교역수지 흑자규모가 2006년 이후 연간 2억6천만달러를 거쳐 2007년의 경우 4억2천만달러를 기록하기도 하였으나 2008년의 경우 3억3천만달러로 축소되었고 2009년의 경우는 2억3천만달러를 기록하여 전년에 비해 무려 1억달러 이상이 감소했다.
북한경제에 있어, 특히 북한의 외화수급에 있어 가장 중요한 통로인 일반교역이 남북간에 경색국면이 지속되고 첨예한 대립관계가 형성될 경우 상대적으로 가장 타격을 받기 쉬운 부문이라는 점은 현재와 같이 남과 북의 대결국면이 첨예하고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5. 결론
북한경제의 심각한 침체가 그간 사회주의 국가들 간의 역내무역으로 지탱해 온 대외물자 공급체제가 붕괴된 데에서 비롯되었고, 따라서 북한경제의 복구를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과제가 대외경제관계의 정상화에 있다는 점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외개방이 가져올 체제의 불안정을 우려하는 북한에 있어 이러한 대외경제관계의 정상화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외개방을 미룬 채 턱없이 부족한 내부자원만을 동원해 수입에 필요한 외화를 충분히 획득하려는 시도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남과 북의 경제적 교류와 협력은 남북관계의 확대발전과 경제 공동체 및 통일경제의 형성을 위한 가장 핵심적 수단이자 결과라는 점에서 교역의 절대규모나 외형적 성장을 넘어서서 가늠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비록 최근의 천안함 사태로 인해 현재 남북교역이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과 북의 경제적 교류와 협력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언젠가 다가올 경제공동체와 통일경제를 준비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고의 남북한 유형별 교역구조의 변화에 대한 검토를 통해 얻은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일반교역에 있어서의 불안정과 불균형이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북한의 경제력이 높아져야 하겠지만 현재 1차산품이 주력인 수출품목의 가공 등을 통한 고부가가치화와 품목의 다양성에 대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위탁가공교역의 경우 지속적인 성장세를 시현하고 있지만 단순 위탁가공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직접투자 또는 시설재 반출과 결합된 위탁가공교역으로의 확대를 적극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개성공단의 경우 현재 발생하고 있는 현안 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즉 3통문제와 인력난의 해결을 위한 전향적인 조치가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교류협력과 관련해서는 인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정부는 물론 NGO와 지자체의 역할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이에 필요한 지원과 협력에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재론할 필요도 없이 북한이 직면한 구조적인 경제난의 해결에 있어 남북교역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크다.
즉, 남북교역은 북한에 있어 부족한 외화의 소중한 공급원이자 현재 북한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외자유치에 따른 파급효과의 조심스러운 시험장인 셈이다. 물론 우리에게 있어서도 남북교역은 통일과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남북교류협력을 촉진하는 소중한 촉매제임에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비록 남북교역의 역사가 항상 순탄한 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지난 20여년간 남북교역이 그 끈을 놓지 않고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어냈다는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남북교역은 남과 북을 둘러싼 대내외적인 환경변화에 극도로 취약한 모습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며 또한 남북교역이 북한경제와 북한주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과 변화를 가져왔다는 상호간의 신뢰 역시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1993년과 2004년의 북핵 위기, 그리고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등으로 남북관계가 정체 내지 경색되었을 때 남북경협도 일시적으로 후퇴한 적이 있었다.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이러한 일시적인 충격은 곧 회복되었고 따라서 다소의 우여곡절이 있긴 하였으나 이와 같은 일시적 충격이 남북교역의 전반적인 성장세를 근본적으로 되돌리지는 못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볼 때 향후에도 이러한 성장세가 지속될 지는 매우 불투명하며 오히려 상당기간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할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근년 들어 남북관계에 있어 긴장과 대결국면이 지속되고 있고 이에 따라 2008년 이후 남북교역이 위축되고 있는 추세에 접어들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발생한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전면적인 남북교역 중단이라는 정부의 제재조치가 지속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할 경우 정부의 제재조치로 인해 북한은 일반교역과 위탁가공교역에서만 대략 3억달러에 달하는 외화획득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 측도 대북교역업체들의 적지 않은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향후 남북교역은 당분간 상당히 부정적인 충격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또한 역
사가 경험하고 일러준 남북관계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장기적으로 남과 북은 대내외적인 환경변화가 남북교역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의 마련에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현시점에서 이보다 더욱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복귀하는 것이며 또한 이를 통해 남북간의 교류협력과 교역이 북한경제와 주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 이 되고, 이를 통해 남북간의 상생과 공동번영 그리고 평화통일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다.
[자료제공 : KDI]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