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맞아 대국민 인지도 제고 기회 삼아야
●●● 한중수교가 체결되기 2년 전인 지난 1990년 9월15일 위동항운의 골든브릿지호는 가깝고도 먼 나라였던 중국의 웨이하이(위해)항을 향해 첫 물살을 갈랐다. 한중 국제 여객선(카훼리)항로가 처음 열리는 순간이었다.
올해로 한중 카훼리항로가 취항 20주년을 맞았다. 카훼리항로는 양국의 경색된 관계를 풀고 국교수립의 민간대사 역할을 해낸데 이어 20년간 양국간 정치·경제적인 관계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조그만 어촌에 불과했던 웨이하이나 칭다오 다롄 등 중국 산둥성 일대 도시들은 한중 카훼리서비스 개설과 함께 글로벌 물류허브(hub)로 비약적인 발전을 일궜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카훼리항로는 다시금 도약의 기지개를 활짝 켜고 있다. 지난해 해운불황에 따른 실적 부진을 말끔히 털어낸 모양새다. 반면 무비자 왕래 저운임 경쟁 등 해결해야할 과제도 많다. 홍보차원에서 20돌 행사를 대규모로 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5월까지 화물수송 43% 성장
황해객화선사협회에 따르면 한중 카훼리항로 14곳의 5월까지 화물수송실적은 20피트 컨테이너(TEU) 16만7760개(빈컨테이너 제외)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1만7515개에 비해 무려 42.8%나 급증했다.
올해 실적은 비교적 높은 수준을 자랑했던 2007년이나 2008년에 비해서도 높다. 항로가 열린 이후 최대 실적이다. 2008년 15만8300TEU에 견줘 6% 늘어난 데다 2007년의 14만9200TEU에 비해선 12.4%나 증가했다. 수치로만 따지자면 한중 카훼리 항로는 불황의 그늘에서 완전히 빠져 나온 셈이다.
14개 노선 모두 성장곡선을 그렸다. 특히 20돌을 맞은 위동항운의 활약이 단연 눈에 띈다. 인천-웨이하이 노선이 2만 1200TEU로 1년 전보다 30.3% 늘어났으며 인천-칭다오 노선은 2만100TEU를 수송, 47.8%의 급성장세를 보였다. 위동항운이 운항하는 노선 2곳이 나란히 2만TEU를 넘어서며 1~2위를 나눠 가졌다.
중국횡단철도(TCR)의 출발지란 강점을 갖고 있는 인천-롄윈강(연운항훼리) 노선은 29.2% 늘어난 1만7900TEU로 그 뒤를 이었으며 한중훼리의 인천-옌타이 노선은 42.7% 늘어난 1만5700TEU로 4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진천국제객화항운이 배를 띄우고 있는 인천-톈진 노선은 54.8% 성장한 1만4700TEU 화동훼리의 인천-스다오 노선은 15.2%늘어난 1만4700TEU를 각각 기록했다. 인천-톈진 노선은 지난해 6위에서 한 계단 올라선 반면 취항 이후 줄곧 견고한 성장세를 보여왔던 화동훼리는 올해 들어 다른 항로에 비해 저조한 성장률을 보이며 지난해 4위에서 6위로 내려앉았다.
대룡훼리의 평택-룽청 노선과 연운항훼리 평택-롄윈강 노선은 각각 51.3% 32.6% 늘어난 1만3700TEU 1만2400TEU를 수송하며 7위와 8위에 이름을 올렸다.
8위와 9위간 성적표는 격차가 큰 편이다. 9위를 차지한 대인훼리의 인천-다롄 노선은 56.5% 늘어난 6900TEU를 기록했다. 평택-롄윈강 노선보다 5천TEU가량 적은 실적이다. 단동항운의 인천-단둥 노선은 17.4% 늘어난 6700TEU 진인해운의 인천-친황다오 노선은 48.8% 늘어난 6300TEU를 수송했다. 이밖에 범영훼리의 인천-잉커우 노선 6200TEU 평택-웨이하이 노선 5000TEU 군산-스다오 노선 4800TEU 순으로 집계됐다.
취항선사들은 그동안 실적 악화의 원인이었던 임가공 제품의 부활을 시황 반전의 일등 공신으로 꼽고 있다. 운항선사 한 관계자는 “미국 경기가 살아나면서 임가공 제품이 많이 늘었다”며 “임가공 화물이 많아지다보니 원부자재도 따라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여객도 크게 늘어났다. 14개 노선의 1~5월 여객수송실적은 55만75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2만8400명에서 30.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평택-룽청 노선은 5개월동안 8만명의 여객을 수송해 여객 부문 1위에 올랐다. 2위 인천-웨이하이 노선보다 무려 1만7천명 가까이 많은 실적이다.
카훼리 선사들은 중국인의 입국비자 발급 확대와 휴가철 도래 등으로 앞으로도 여객 실적은 상승흐름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달 중으로 중국인 관광객확대를 위해 복수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할 계획이다. 발급대상은 교사나 퇴직후 연금수령자, 우수대학 졸업자 등이다. B선사 관계자는 “7월부터 여객이 더 늘어나고 있어 긍정적”이라며 “학생들이 방학을 맞은 데다 휴가철에 접어들면서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경영실적 개선은 ‘글쎄’…대형 행사로 항로 홍보 절실
표면상으로 선사들의 성장세는 괄목할만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 선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낮은 운임 수준이다. 중소기업들이 생산하는 임가공화물 중심으로 운영돼 왔던 한중 카훼리항로는 최근 몇 년 사이 화물품목의 큰 변화를 맞았다. 중국내 기업환경 악화와 내수부진 등으로 임가공 업체들이 생산기반을 대거 동남아 등지로 옮기면서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 등 대기업들의 LCD 물량이 임가공 화물을 대체했다. 최근 임가공화물이 늘었다지만 과거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물류환경의 변화는 운임하락으로 이어졌다. 대기업들은 물류비 절감을 이유로 카훼리 선사들과의 운송협상에서 대부분 낮은 운임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웨이하이나 스다오 룽청 옌타이 등 산둥성 항로들은 경쟁이 격화되면서 출혈경쟁에 울상이다.
현재 카훼리항로의 운임 수준은 ‘컨테이너선과 경쟁할 정도’라는 말까지 나올 만큼 낮다. 200달러 이하로 움직이는 화물들도 포착된다. 700달러대 안팎이었던 예년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이 같은 운임수준에선 화물을 예년보다 2~3배 더 많이 실어 날라야 전체적인 수익규모를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C선사 관계자는 “연료유 상승 등 운항원가는 많이 올라가 있는 상태지만 운임은 예년에 비해 3분의 1에서 4분의 1 수준까지 하락했다”며 “똑같은 100개를 실어 나르더라도 채산 부분에선 옛날을 못 따라간다. (최근의 물량 증가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돌아서는 개념은 될 수 있지만 물량 증가폭 만큼 좋아졌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과 대만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체결도 카훼리선사들에겐 호의적인 뉴스가 아니다. 양측이 서명한 경제협력기본협정은 대만산 539개 품목과 중국의 267개 품목에 대한 상호 무관세 혜택과 20개 업종에 대한 시장 개방을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다. 중국의 원부자재 공급처가 우리나라에서 대만으로 바뀌게 될 경우 그에 따른 한중 카훼리 선사들도 해상물동량 감소라는 직격탄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사 관계자는 “양안 경제협력으로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화물인 레진이 대만에 밀릴 가능성이 커졌다”며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카훼리선사들의 생존권도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돌을 맞아 한중 카훼리 선사 일부에선 항로홍보를 위해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방송사와 연계한 대규모 음악회나 오락행사 개최가 그것이다. 큰 규모의 행사를 통해 카훼리항로가 두 나라의 관계 개선에 이바지한 공로를 조명하고 시급한 현안과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취항선사 한 관계자는 “20주년을 맞아 위동항운과 (황해객화선사) 협회를 중심으로 인천시 국토부가 후원해 한중 카훼리항로의 대국민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해야 한다”며 “무비자나 섀시수송 문제 등을 이런 행사를 통해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여객영업을 하면서도 축하행사는 일부 지역규모로 치러진 것을 꼬집은 것이다.
황해객화선사협회는 9월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중국 웨이하이에서 한중 카훼리항로 20주년 기념 해운포럼을 개최할 계획이다.
투자자 이탈로 평택-르자오 노선 무산 위기
평택-르자오 노선 재개는 주요 투자자들의 이탈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사업자 교체도 점쳐진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측 투자사인 진양해운(실제 투자사는 자회사인 하나로해운)이 동방컨소시엄 탈퇴를 결정했으며 중국측 산둥홍다(山東宏達)사도 최근 투자 철회를 선언한 것으로 파악됐다. 항로 개설이 늦어지면서 사업성에 의문을 품게 된 까닭이다. 이로써 평택-르자오 노선 투자자는 한국측 동방·보이스코리아와 중국측 르자오항무국만 남게 됐다.
진양해운의 경우 아직까지 공식적인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투자 철회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항로에 뛰어든 큰 이유였던 선박 용선사업이 무산되자 컨소시엄 탈퇴로 결론 내린 것으로 보인다.
당초 동방컨소시엄은 <퀸칭다오호>(1만6485t)를 투입해 이 항로를 재개키로 내부 조율하고 중국측과 협상을 벌여왔다. 하지만 595km에 이르는 평택-르자오항로간 거리상 20노트의 퀸칭다오호로는 운항이 불가능하다는 중국측 파트너들의 지적으로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중국측은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주3항차 운항이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양해운 관계자는 “선박 용선이나 한국법인 운영, 항로 안정성 등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이뤄진 것이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투자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한중 양측에서 나란히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면서 항로 개설은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 됐다. 남은 동방이나 르자오항무국 등은 카훼리항로에 투자만 해왔을 뿐 운항경험이 전무해 항로가 열린다 해도 원활한 운영이 불투명한 까닭이다. 항로 관계자는 “르자오는 수익성이 그리 좋은 항로가 아니다”며 “수익성이 좋은 스다오나 옌타이 노선 개설을 위해 한중해운회담에서(르자오 노선을) 폐지토록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희 차장 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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