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24 09:47

선박금융, 올 해운물류업계 위기 극복 실마리?

해운·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자산관리공사가 공적자금 선박펀드를 통한 해운선사 선박 매입에 나서면서 선박금융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선박금융은 선박구입자금에 대한 대출, 해운기업에 대한 기업운전자금 대출, 조선업에 대한 시설자금 대출, 선주로부터 받는 선수금에 대한 환급 보증(Refund guarantee)와 함께 선박펀드(선박투자회사)에 대한 투자 등이 있지만, 이번 해운·조선업 구조조정 등에서 각종 제도적 미비점이 발견되고 각 금융기관의 전문성 결여 논란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올 들어 해운업계의 가장 당면과제는 선박건조 보증금 환급보증 보험인 RG보험이다. 선박을 발주하는 경우는 가격이 크고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발주처가 은행과 지급보증을 통해 조선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대형 조선사의 경우 조선사 신용 자체가 높기 때문에 은행이 자체적으로 이 증서를 보유하지만, 중소형 조선사를 상대하는 경우 은행은 이를 다시 보험사에 보험을 들게 되고, 보험사는 재보험을 들어 위험에 대비한다. 이같은 RG보험은 조선사가 정상적으로 선박을 건조해 인도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분석이다. 은행과 보험사 모두가 수수료를 얻는 구조이기 때문. 하지만 조선사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이 RG는 거대한 액수의 폭탄 돌리기로 변하고 오히려 기업의 워크아웃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해운·조선업 구조조정 국면에서 C&중공업과 진세조선 등이 RG보험을 둘러싼 각종 분쟁으로 고통을 겪은 케이스다.

우선 C&중공업의 경우와 진세조선은 모두 RG보험을 둘러싼 조선사의 채권은행들과 RG보험 보험사들간의 갈등이 워크아웃 중단을 불러왔다. 주거래은행 등 일반채권자들은 ‘워크아웃의 이념은 채권자 공평에 있다’는 점을 강조, 문제 조선사의 선박을 공동관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RG보험이 걸려 있는 보험사로서는 공동관리 방식으로 들어갈 경우 제 기한에 선박인도를 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한다.

이렇게 보험사와 주거래은행간 분쟁을 조율할 마땅한 기준이 없다는 게 이번 기회에 발견됐다. 진세조선의 경우 주채권은행인 국민은행과 보험사들간에 극심한 의견 대립 끝에 워크아웃이 무산됐다. 향후 이런 경우에 대한 처리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더욱이 진세조선의 경우 선박 발주 계약자와 환급 보증을 맺은 은행과, 이 은행이 보험을 다시 든 상대방인 보험사간에도 분쟁을 낳고 있다. 선박을 발주한 ‘송가’ 측과 환급 보증 계약을 맺었던 신한은행은 진세조선이 워크아웃 실패로 들어가자 ‘송가’의 요구에 따라 보증액을 지급하고 이를 보험사측에 청구했다. 하지만 메리츠화재측은 송가측이 이미 계약 기간을 넘길 것이라는 사정을 알았고, 분쟁 중에는 지불유예에 대한 단서합의가 있었다고 주장, 양측이 소송단계에 있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은행측은 대외신뢰도나 보증서 내용상 지급보증 지불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고, 보험사측은 재보험에 들 당시 문구나 내용에 따라 이를 선박 발주 계약자측에 지불하지 말았어야 주장하고 있다”라고 요약하면서, 법원 판단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는 RG를 ‘대출’로 보느냐 ‘보험’으로 보느냐는 인식차도 깔려 있다.

이 관계자는 “그간 해운경기가 호황이었고 이런 상황에 대해 예상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라면서 은행과 보험사 모두가 전문성과 주의를 결여된 가운데 거액 거래에 나섰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RG보험이 폭탄돌리기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위축된 해운업계를 살리고 선박의 헐값 처분을 막기 위해 선박을 인수한 뒤 운영(용선)하다가 나중에 재매각해 국부 유출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여기 앞장서는 곳이 자산관리공사(캠코)다. 캠코는 해운사 선박 매입에 4조 3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1차의 선박 매입 신청은 완료된 상태고, 2차로도 추가 매입이 추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느 해운사의 어느 선박을 매입할지 선별하는 문제도 숙제다. 4조 남짓의 선박펀드로서는 혜택대상이 제한돼 전체 해운업 규모 중 1/3 정도만 캠코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금융기관 융자를 많이 받은 선박은 캠코의 다소 할인된 가격의 매입제안이 탐탁치 않을 수도 있다. 더욱이 캠코는 다른 기업 구조조정 관련 업무 등도 함께 맡아야 하는 곳이라, 선박펀드에만 초점을 두기 어렵다. 캠코 관계자는 “캠코는 기업 구조조정 등 여러 업무를 맡고 있으며 선박금융은 일부분인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현재 이번 선박펀드 업무추진을 위해 10여명의 전문인력 충원을 했지만, 짐을 100% 떠안기는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이러한 속사정에 따라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의 민간 선박투자회사(선박펀드) 출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지난 17일 금융위원회는 은행업 감독규정을 고쳐, 은행이 선박투자회사(선박펀드)에 출자를 할 수 있도록 길을 텄다. 선박투자회사를 활성화해 산업 전반에 투자 영향이 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조치로 시중은행들이 곧바로 선박투자회사에 투자를 할지를 단언하기는 어렵다. 해운업이 2,3년은 더 불황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하고, 최근까지 주요 은행들마저 PF, 파생상품 거래 등을 추진했다가 실적 부진을 겪은 바 있다. 더욱이 주요 은행들 역시 선박금융 부문을 잘 아는 전문가집단이 없어, 선뜻 이같은 투자 판단에 도움을 줄 인력군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간 자산운용사 중심으로 이어져 온 선박투자회사 진출은 이 분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기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동진 FSB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독일 HSH Nordbank나 영국 RBS 등도 자국 정부들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는 “유럽 은행권이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여파이지, 선박금융 자체의 위험성만으로 이같은 구제금융 상황으로 간 것은 아니”라면서 “가장 돈이 되는 영역이며, 우리는 할 줄 몰라서 못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선주협회 연찬회에서 “위기일수록 공격적 경영이 필요하다. 선박 금융 등의 방법을 적극활용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쨌든, 선박투자회사를 활성화나 각종 관련기업 대출, 관련 보험상품 등 이번에 드러난 선박금융의 여러 문제는 결국 전문 인력군에 대한 필요성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이나 해운기업에 대한 접근 역시 여타 일반 대기업에 대한 심사처럼 진행해 온 게 국내 금융기관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RG 등을 둘러싼 각종 분쟁에서 보듯, 보험사나 은행 모두에서 이를 심도있게 다루지 않아 온 게 현실이다. 이는 금융기관의 순환보직 인사제도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해 원자재 파동이 터진 이후에야 원자재 전문가의 아쉬움을 절감했던 것처럼, 지금이라도 “은행 등이 선박금융쪽을 장기간 다루도록 하는 인력을 키워 각 영역에 공급하는 게 시급하다”는 한 전문가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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