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6 17:37

기획/ 세계 경제침체 여파 해운업계 ‘된서리’

물동량 둔화 본격화…태평양항로 마이너스 성장 전망
선사들 ‘선복량 줄이기’ 혈안…운영자금 확보 관건



●●● 40년 역사의 씨앤라인(C& Lines, 옛 동남아해운)이 최근의 시황하락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6일 영업을 중단함으로써 사실상 파산을 선언했다. 지난 1967년 동서해운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지난 41년동안 아시아 역내항로를 중심으로 탄탄한 성장을 해왔던 만큼 업계의 충격은 크다.

최근 해운업계는 미국발 금융 시장 부실로 불거진 세계 경제침체와 중국발 물동량 감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반기까지 국제유가 상승으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던 선사들에겐 유가가 안정을 찾자 뒤이어 불어 닥친 세계적인 경기 악화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해운시장에서 볼 때 현재의 금융위기는 자산가치 감소로 인한 소비 위축과 이자율 상승으로 인한 투자 감소 등으로 이어져 결국 교역조건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해상수요의 근간인 수출입 물동량의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제전망 전문기관들은 향후 해운시황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글로벌인사이트(CI)는 향후 기간항로인 아시아-유럽항로, 태평양항로의 물동량은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거나 감소세로 전환할 것으로 예측했다.

경제전문가들 “해운 시황 전망 비관적”

극동-북유럽항로의 경우 지난해 13% 증가에서 올해 1.7%, 내년 2.8% 등 증가율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지난해 유럽항로 호황세를 이끌었던 극동→지중해 항로 증가율은 지난해 22%에서 올해와 내년엔 3.1%, 3.8%로 크게 둔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지중해→극동항로도 지난해 10% 증가에서 올해와 내년엔 각각 2.2%, 2.7% 증가에 머물 전망이다. 게다가 극동-미국항로는 올해 물동량이 8.2% 감소할 것으로 전망돼 선사들의 힘을 빠지게 하고 있다.

해양수산개발원 한광석 연구원은 “해운시장 수요는 단기시황을 결정하고 선박공급은 장기적인 시황을 결정하는 요소지만 금융위기는 외생적인 충격으로 파급효과는 수요와 공급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과거 1970년대 말 오일쇼크에 이은 1980년대 초 금융시장 위기, 2000년 초 닷컴버블 붕괴로 인한 금융시장 위기로 해운 시장이 불황기에 빠진 사례도 있다.

컨테이너선 시황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종합용선지수(HR)는 올해 초 1335포인트에서 이달들어 900포인트대로 추락했다. 초호황기였던 지난 2005년 6월의 2천포인트와 비교할때 절반 아래로 떨어진 셈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미국 금융위기의 파장에 가장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우려스럽다. 은행은 가능한 대출을 줄이고 달러를 확보하려고 하고 있고, 수출업체들은 수출상품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곧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의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올해 초 930원대를 기록했던 원·달러 환율은 이달 현재 1200~1300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9일엔 장중 한때 1485원까치 치솟다가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1400원대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날 하루 환율 변동폭은 113원으로 연중최고치를 기록했다.

환율이 널뛰기 장세를 보이자 수출입 하주들이 고민에 빠졌다. 원자재를 수입해 완성품을 수출해야 하는 하주들은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원자재를 수입하기 위해 신용장(L/C) 개설 시기를 면밀히 검토하는 등 민감한 모습이다. 게다가 은행도 수출어음의 결제를 미루자 원자재 구입 시기를 놓친 하주들은 납기일 맞추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울상이다. 환율 상승은 일반적으로 수출물동량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같은 공식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원자재를 수입해 이를 가공 수출하는 무역구조 특성상 환율 상승은 단기적으로 수출 성장에 기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한 국제물류업체 관계자는 “환율상승으로 수출물량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체감상 물량 증가 효과는 없는 것 같다”며 “환율 급등은 수출입 양쪽에 마이너스이기 때문에 적정선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너마저”…주요 항로 물동량하락 ‘아우성’

중국발 물동량 감소도 해운시황에 먹구름이 되고 있다.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 기간동안 자국내 생산 활동을 중단한 것이 시황 악화에 크게 한몫했다.

지난 몇 년간 세계 해운경기를 떠받쳐 왔던 중국은 올림픽 기간을 전후해 환경문제를 이유로 자국 항만에서의 위험화물 반출·입을 중단했을 뿐 아니라 오염물질 배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공장 가동도 크게 줄였다. 그 결과 중국을 기점으로 한 모든 항로들은 큰 물동량 하락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곧 해운시황에 직격탄이 되고 말았다.

한중항로를 취항하는 선사측 관계자는 “올림픽 기간동안 한중항로 수출입 물동량은 전체적으로 20~30% 가량 감소했다”며 “올림픽이 끝난지 오래지만 물동량은 여전히 상승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한중항로의 경우 주력 수출품중 하나인 레진이 최근 유가하락에 따른 수출 연기로 여전히 상승세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북미항로와 유럽항로의 시황부진도 중국발 물동량의 성장세 둔화에 의한 영향이 크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북미항로에서 중국은 매년 40~50% 이상 성장하던 매우 큰 시장”이라며 “하지만 올해 들어 북중국은 15% 성장으로 둔화됐고 남중국은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씨앤라인의 영업중단 원인도 물동량 부진에 따른 운임 하락과 현금 유동성 문제로 요약된다. 아시아 역내항로를 중심으로 하는 선사로서 최근 환율 상승의 여파로 물동량이 크게 줄면서 심각한 채산성 악화를 겪었다. 이 회사 고위관계자는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가 안 들어오고 있다”며 “이에 따라 수입물동량이 크게 감소했을 뿐 아니라 이를 가공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수출 물동량도 덩달아 부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씨앤라인 영업중단으로 이 회사에 화물을 실었던 하주들은 해외 항만에 짐이 묶이면서 곤욕스런 처지다. 국내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홍콩이나 중국 항만 등에서 화물이 묶여 있는데 어떻게 풀어서 운송할 수 있을 지 암담하다”며 “선사가 도산할 때 하주들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는지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씨앤라인측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마무리하는게 중요하다”며 “현재 항만에 잡혀 있는 화물들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와 올해 초까지 유사 이래 사상 최고의 시황을 보였던 건화물선 시장도 최근 급격한 침체로 선사들을 긴장케 하고 있다. 건화물선운임지수인 발틱드라이인덱스(BDI)는 지난 13일 1976포인트를 기록, 지난 2005년 8월 이후 3년2개월만에 처음으로 1천포인트대로 추락했다. BDI 지수는 14일에도 1809포인트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세계 경기침체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있고, 중국 철강사들과 세계 최대 철광석개발회사인 브라질 발레사가 가격을 놓고 대치국면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TNWA, 북미항로 2개노선 서비스 중단

이같은 시황하락으로 선사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최선의 선택은 선박량을 줄여 공급과잉을 완화하는 방법이다. 현대상선, APL, MOL의 뉴월드얼라이언스(TNWA)는 시황 부진이 계속되자 ‘동계 운항프로그램’을 이달부터 가동하고, 첫 케이스로 아시아-미서안항로 2개 항로(PSW, PS3)를 내년 4월까지 잠정중단했다.

또 대만 완하이라인과 싱가포르 PIL은 이달부터 중국-태평양항로 운항선박을 종전 4250TEU급 5척에서 2500TEU급 5척으로 대체, 선박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에버그린은 자체 아시아-호주노선을 중단하는 대신 현대상선 등 4개 선사의 공동운항서비스로 갈아타 선복 조정에 나설 예정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이번 동계 프로그램으로 선박을 아예 항로에서 빼 운휴하게 된다”며 “한국발은 선복에 큰 변화가 없을 예정이지만 홍콩 등 남중국은 주당 1천TEU의 선복량이 감소된다”고 설명했다.

운영자금 확보도 관심사다. 한진해운이 지난달 말 1년3개월만에 처음으로 2천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한 것을 비롯해 현대상선도 이달 말 1500억원어치를 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최근 회사채 시장이 극도로 위축돼 있는 상황이어서 투자자 모집이 힘들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뿐 아니라 내년까지 적자폭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선사들의 핵심 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위기로 시황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은행들도 타이트하게 움직이는 만큼 자금 확보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해운업에 관심 없나”

한편 최근 들어 정부의 해운업계 홀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들린다. 2005년 도입한 톤세제의 일몰제 적용이 그것이다. 정부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서 톤세제도를 2009년 12월31일까지 일몰제에 포함키로 했다. 한국선주협회가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조세연구원에 톤세제 필요성에 대한 연구용역을 맡기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얼마나 큰 메아리를 만들 수 있을지는 현재까지 미지수다.

또 포스코나 한국전력 등 국내 대형하주기업들이 시장논리를 이유로 들며 국적선사와의 장기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외국 선사와 운송계약을 하는 점도 국내 선사들로선 아쉬운 대목이다.

대형 국적선사 관계자는 “일본 NYK는 시황이 하락해도 10년은 간다고 할 정도로 견실하다”며 “비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해운선사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여건은 그렇지 못하다”고 정부와 일부 대형하주들에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이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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