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13 14:36
- 대법원 2005. 11. 25. 선고 2002 다 59528, 59535 판결 -
【원고, 상 고 인】 A
【피고, 피상 고 인】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피고보조참가인】 K해운
【주 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4/3 자에 이어>
1. 들어가며
선박에 있어 그 최종 책임자인 선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선장도 자격을 갖춘 전문가이기는 하나 기계는 아니므로, 선장의 고의로 선박에 피해가 갈 수도 있으나 선장도 선주가 고용한 피용자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선주가 시키는 대로 이를 테면 이미 소개한 판례와 같이 선박을 고의로 침몰시키라는 선주의 지시를 이행하는 단순한 사자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따라서, 선박 운송에 있어 가장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영국 협회선박기간보험은 ‘① 선박의 화재, 폭발 또는 선장 등의 과실에 의한 침몰과, ② 선장의 악행으로 인한 선박 침몰’의 경우 보험자가 보험금 책임을 지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으나, 위와 같이 선장이 선주가 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하여 선박을 고의로 침몰시키라는 지시를 이행한 경우에는 보험자가 면책되는 것으로 명시하여 이러한 맹점을 타게하고 보험자와 선주 양 자의 이익을 적절히 교량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겠다.
2. 대법원 판결의 요지
원심인 부산고등법원은 이 사건 보험자가 그 적용을 명시하고 있는 영국 협회선박기간보험약관의 사안에의 적용은 유효하게 적용되고, 사안의 경우 보험자가 책임을 지는 것으로 약관상 명시되어 있는 ‘① 선박의 화재, 폭발 또는 선장 등의 과실에 의한 침몰 및 ② 선장의 악행으로 인한 선박 침몰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심과 결론은 같이하되 그 이론 구성을 달리하고 있다. 이하는 그 요지이다.
가. 영국 협회선박기간보험약관은 그 첫머리에 이 보험은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영국법 준거약관은 오랜 기간에 걸쳐 해상보험업계의 중심이 되어 온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따라 당사자 사이의 거래관계를 명확하게 하려는 것으로서, 그것이 우리나라의 공익규정 또는 공서양속에 반하는 것이라거나 보험계약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어 유효하다.
나. 영국 해상보험법 제55조 제1항에 의하면 손해가 담보위험을 근인으로 하는지 여부가 보험자의 책임 유무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바, 여기서 근인이라 함은 손해와 가장 시간적으로 근접하는 원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손해의 발생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원인을 말한다.
다. 영국 협회선박기간보험약관 제6조 제2항 제5호에서 부보위험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선장 등의 악행’이라 함은 선주나 용선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선장 등에 의하여 고의로 이루어진 모든 부정행위를 말하는 것인바(영국 해상보험법 제1부칙 ‘보험증권의 해석에 관한 규칙’ 제11조), 보험계약자가 선장 등의 고의에 의한 부정행위에 해당하는 사실을 입증하면 일응 선장 등의 악행은 추정된다 할 것이나, 이 경우 선주 등의 지시 또는 묵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험자가 입증하면 이는 보험자의 면책사유인 피보험자의 고의적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결국 보험자는 보험금 지급의무를 면한다.
라. 당사자가 변론에서 상대방이 주장하기도 전에 스스로 자신에게 불이익한 사실을 진술하는 경우, 상대방이 이를 명시적으로 원용하거나 그 진술과 일치되는 진술을 하게 되면 재판상 자백이 성립되는 것이어서, 법원도 그 자백에 구속되어 그 자백에 저촉되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선장 등의 고의적인 행위로 선박이 침몰되었다는 점에 관해서 재판상 자백이 성립하였으나 위 행위가 선주의 지시 내지 묵인에 의한 것이어서 선박보험계약상의 부보위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3. 평 석
원심과 대법원의 차이는, 이 사건 선박의 침몰 원인을 선장의 악행에 의한 것으로 볼 것이냐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원심은 이미 소개한, 선장 등의 행위로 선장의 악행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보험자인 원고의 면책을 판시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미 소외 선장이 고의 침몰에 대한 재판상 자백을 하였기 때문에 법원도 이에 구속되어 판단하여야 하나, 다른 사실관계에 따르면 이 사건 선박의 침몰은 선장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한 고의 침몰이 아니라 선주의 지시에 따른 고의 침몰이고 따라서, 이러한 경우 피보험자의 고의적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결국 보험자는 보험금 지급의무를 면하기 때문에 보험자인 원고가 면책된다는 것이다.
이미 증거의 제출과 당사자가 불리한 사실을 자백하고, 상대방이 이를 원용하게 되면 사실관계는 재판부도 구속하게 되는 사실로서 효력이 있다. 이를 재판상 자백의 효과라 할 것인데 이는 민사소송상 양 당사자가 모두 인정하는 사실관계를 확정함으로써 가장 진실된 사실관계를 전제하여 재판부가 판단하도록 함으로써 공정하고도 정확한 판단을 이끌어내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 할 것이다. 사안의 경우 피고는 선장의 악행으로 인한 고의 침몰을 자백하여 이를 부보위험으로 원용하고, 보험금 지급 책임을 물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견지에서 원심은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선장의 악행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이를 기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의 침몰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고 엄연히 선장이 자백을 하였음에도 이를 배척하는 결론은 그 이론 구성에 있어 약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이러한 논리 구성상의 하자를 완벽히 보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즉, 이미 자백한 사항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인정하여 선장의 악행에 의한 고의 침몰로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을 전제한 다음, 이러한 침몰의 경위가 선장의 자의적인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주의 지시에 따른 것이고, 이러한 경우에는 당연히 보험자가 면책됨을 분명히 함으로써 판단 근거가 체계적으로 잘 짜여진 듯한 느낌을 준다. 필자도 대법원의 판단과 같은 생각이다.
모쪼록 선장이라는 직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특수한 지위이고 그 책임이 막중한 만큼 그 책임의 귀속 문제 등은 우리가 미리 숙지하여야 할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대법원에서 판단 근거로 제시한 판결요지만 숙지하여도 선장의 책임 귀속에 대한 기본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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