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0-22 20:31

TSR 물동량 급증, 아시아~유럽 묶는 ‘철의 실크로드’로 부상하나

실제 운송시장 협소…러시아전체물량 중 5% 운송에 그쳐
보안할증료 도입 관련 하주ㆍ포워더 관심 고조… 선사측 성수기할증료 도입 결정


TSR(시베리아횡단철도, Trans-Siberian Railroad)은 러시아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와 한국 및 중국 등 주변 철도연결국들의 관심으로 요 몇년 사이 가장 각광받는 운송루트 중의 하나로 떠올랐다.
‘철의 실크로드’로 지칭되는 TSR은 유라시아대륙 전지역에 연결될 수 있는 철도운송망이다. 따라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기간운송망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큰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한국ㆍ일본ㆍ중국 등 동북아지역의 경제와 국제교역이 발전하면서 동북아지역과 유럽간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동북아지역을 유럽으로 연결시켜주는 TSR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높아지리란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우리나라도 TKR(한반도종단철도)과 TSR의 연결공사가 진행된다는 대대적인 보도와 정부당국자들과 러시아철도청 관계자들의 회담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이 운송루트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올해 들어선 물량마저 작년과 비교해 최고 두배까지 느는 등 이제 한국~유럽간 운송서비스를 해상에서 TSR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냐는 성급한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해상에 비해 약 7,600km 정도 짧은 운송메리트는 그런 분석들이 옳을 수도 있다는 데 무게감을 더해주고 있다. 부산에서 유럽의 로테르담항까지 TSR 운송거리 1만2,200km와 해상운송거리 1만9,800km가 보여주듯 TSR은 화물운송시간에서 해상서비스보다 일주일에서 최고 10일 정도까지 더 빨라 적기인도를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는 하주들의 경우 TSR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TSR이용률과 그에 따른 운송시스템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정부에서 말하듯 차세대 운송루트로서 그 역할을 십분 발휘하고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현재 TSR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선사 및 복합운송업체를 찾아 최근의 상황을 들어봤다.

TSR 총길이 9,466km…지구둘레 1/4에 해당

TSR은 유럽의 모스크바와 아시아의 보스토치니(블라디보스톡)를 잇는 총 길이 9,466km로 우리나라 경부선의 20배가 넘는다. 지구둘레의 1/4에 가까운 거리로 거쳐가는 주요역만 해도 59개나 되고 시간대가 7번이나 바뀌는 등 말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맨 처음 러시아의 군사적인 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는 TSR은 시베리아지역의 발전을 촉진해 러시아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동북아지역과 유럽을 연결하는 화물운송망으로서 TSR의 역할은 지난 1958년 일본의 주요항만과 러시아의 나호트카항간에 화물운송의 정기항로가 개설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9년이 경과한 67년에 일본과 유럽간 컨테이너화물의 시험운송이 성공함으로써 TSR의 컨테이너 운송서비스가 모색되기 시작했다. 특히 71년 3월에 구주운임동맹(FEFC)이 일본ㆍ나호트카항로에 컨테이너선박 Avalerovo호를 취항시키면서 TSR은 명실공히 ‘유라시아 컨테이너복합운송망’으로서 발전하게 됐다.
지난 80년대중반부터는 한국의 수출입화물도 TSR화물운송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TSR의 컨테이너화물운송실적은 서비스 개시 당시인 71년에 2,000TEU에 불과하던 것이 76년엔 연간 12만TEU에 달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처럼 TSR컨테이너 운송이 신속히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해상운송에 비해 수송거리가 짧아 운송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 TSR의 운임도 해상운송보다 15~40%가량 저렴했다. 이런 비용과 시간의 높은 경쟁력으로 인해 TSR의 컨테이너 운송체제는 상당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TSR의 컨테이너 운송량은 80년대 7~10만TEU수준에서 정체됐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화물을 합쳐 10만5,000TEU수준을 기록한 91년 이후 운송량이 점차 감소추세를 보였으며, 97년엔 연간수송량이 6만5,000TEU에 불과했다. 이처럼 TSR의 컨테이너 화물 운송량이 감소한 것은 해상운송에 대한 상대적 경쟁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해상운송에서는 선박의 대형화, 선사간 치열한 서비스 경쟁 등으로 서비스 질이 지속적으로 개선되면서 운임 또한 하향세를 나타냈다. 이에 비해 TSR은 경직된 운영과 시설투자 미흡으로 서비스 수준이 지속적으로 개선되지 못했다. 특히 구소련이 분리 독립된 90년대 이후엔 독립국가 연합 내의 협력 부족과 사회 불안으로 TSR서비스가 불안정해지고 운송의 안전성이 보장되지 못해 일본의 TSR 이용 물동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러시아 정부는 TSR의 개발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고, 주TSR이용국인 한국과 일본에 대해 적극적인 서비스마케팅을 실시하는 한편, TKR과의 연결 모색, 나아가 일본과 해저터널을 뚫는다는 복안까지 구상해 침체됐던 TSR에 다시 한번 불을 지피기에 이르렀다.

한국내 TSR운송사들 각축전 가열

현재 TSR 컨테이너 운송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해운업체는 선사 4개업체, 포워더(복합운송업체) 20여개업체 등에 이르고 있다.
선사는 러시아국영선사와 우리 국적선사의 합작인 동해해운(현대상선과 페스코합작)과 러시아선사 대리점인 신한상운(SCF의 한국대리점), MCL코리아, 한국적기업 단독으로 서비스하는 동남아해운이 있다.
이중 동해해운은 부산~보스토치니간 서비스의 주도선사로 가장 오래된 서비스경험을 자랑하고 있다. 현재 640TEU급 1척과 700TEU에서 올해 교체한 1000TEU급 1척 등 총 2척을 수요일과 금요일 양일에 걸쳐 정요일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신한상운은 SCF의 대리점으로 출발, 재작년 10월부터 취항을 시작했다. 또 MCL은 작년 하반기, 동남아해운은 올 7월경부터 동해항로(부산~보스토치니) 서비스의 닻을 올렸다.
이들 선사들은 그간의 부진을 벗어나 최근 물량 증가세와 함께 성수기까지 겹쳐 월말의 경우 소석률이 최고 100%에 이르는 등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동해해운의 경우 오랜 서비스경험과 주도선사라는 인식을 통해 물량증가세를 견인하고 있다. 최근엔 화물이 급증해 열차 웨건잡기가 힘들 정도라 전통적인 부산항 출항요일이었던 금요일에서 앞당겨 수요일로 배선을 옮기고 있다는 것이 선사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러시아 철도청이 선박의 보스토치니항 입항 순서에 따라 웨건예약 순서를 정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금요일서비스가 웨건예약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포워더의 경우 우진글로벌로지스틱스, 천지해운, 범한종합물류, 세계해운항공(SVT), 대아트란스, 그린로지스틱스, 이글쉬핑을 비롯해 중소10여개 업체가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복운서비스는 초창기엔 부산~보스토치니~폴란드/이란/루마니아/헝가리/유고 등 여러 루트의 운송루트가 개발돼 운영됐으나 90년대 이후 해상과의 경쟁에서 뒤져 모든 루트가 폐쇄되고 말았다. 현재는 한국/일본/중국~보스토치니~핀란드를 잇는 서비스와 한국~보스토치니~중앙아시아, 한국~보스토치니~러시아내륙(모스크바) 등 3가지 형태가 하주들을 상대로 서비스되고 있다.

전자제품ㆍ레이진, TSR화물 주도

TSR로 수출되는 물량은 이들 서비스루트에 따라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핀란드가 종착지인 통과화물과, 중앙아시아로 수출되는 화물, 러시아 내륙으로 들어가는 화물 등이 그것이다. 이 중 핀란드향 화물은 전자제품이 99%에 이르는 등 삼성, 엘지, 대우 등 우리나라 대형 가전3사의 제품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중앙아시아로 들어가는 화물은 한화나, 동부화학, 한농, 케이피케미컬 등 국내 화학제품 제조업체들이 생산하는 레진(화학제품원료)이 주를 이룬다. 또 러시아내륙으로 향하는 화물은 원자재와 전자제품이 혼조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들어 물동량은 10만TEU를 넘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2001년에 5만7천TEU를 기록했던 TSR 수송량은 2002년엔 7만2천TEU로 대폭 증가했으며, 증가세는 올해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물량증가세에 대한 이유로 이라크전쟁의 여파라는 분석과 해상운임의 인상, 러시아 시장의 팽창 등이 지적되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견해는 이 세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올초 일어났던 이라크 전쟁으로 유럽해상항로가 발목을 잡힘으로써 해상서비스를 이용하던 하주들이 대거 TSR에 몰린 것을 시작으로, 작년부터 시작된 원양해운시장의 최대호황에 따른 유럽항로의 운임인상이 촉발된 TSR의 물량증가세에 힘을 실어주었다. 또 러시아 시장팽창은 전자제품이 주도하는 부산~핀란드간 서비스의 물량증가를 주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핀란드로 향하는 전자제품들이 대부분 러시아로 역수입되는 화물이란 점에서 러시아경제의 활기는 TSR이용을 활성화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핀란드로 나가는 TSR화물은 한국~러시아간 직접 수출시에 발생하는 높은 통관료를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측 바이어와 한국 하주들이 변칙적으로 이용하는 한러 수출루트인 셈이다. 실제 러시아는 세관 규정과 세율 등이 수시로 변경되고 세관원에 따라 자의적으로 통관법을 해석하는 등 관세제도 정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통관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수입관세율을 비롯한 관세법령과 규정 등이 빈번히 변경됨에도 변경에 대한 정보입수가 어렵고, 과거에는 수입자가 수입통관을 지정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세관에서 특정세관을 지정하여 시간과 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러시아 통관규정 의외로 까다로와

특히 수입이 증가하는 물품에 대해서는 수시로 수입물품에 대한 전수(全數)검사를 실시하여 통관을 지연시키고, 보세장 보관료가 지나치게 높아 통관 지연에 따른 부대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다. 또 선적 서류상의 조그마한 실수도 해당 세관의 자의적 해석 및 규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통관이 지연될 경우 현지 바이어와의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올초에 보스토치니에서 세관원이 모든 컨테이너를 올스톱시키고 개봉검사를 하는 바람에 화물운송이 10일가량 늦어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통관으로 인해 경쟁력이 결정되는 국내 가전업체들은 러시아의 이같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두 가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첫째는 핀란드와 발트 국가 지역에 러시아를 비롯한 대동구권 수출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다. 즉 가전제품의 경우, 대부분이 핀란드와 발트 국가내 창고에 일단 하역됐다가 수요에 따라 러시아로 수출하는 것이다. 둘째는 직접 현지에 판매망을 조직하지 않고 러시아 에이전트를 통해 상품을 양도하는 것이다. 즉 물건은 러시아 가까운 국경에서 인도하고 그 물건의 통관 및 판매 일체는 러시아 에이전트에 넘겨버리는 방식이다. TSR을 이용해서 핀란드로 운송되는 가전제품은 첫째방법에 의해 러시아로 수출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러시아 정부, 기본운임인상 이어 보안할증료 도입까지

이런 물량증가세를 반영해 러시아철도청은 TSR의 운임인상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러시아 철도청은 97년 이후 요금 변동이 거의 없었던 TSR 운임을 지난 달부터 TEU당 1천700달러에서 1천900달러로 인상(부산~모스크바 기준)했다. 이번달 들어선 TSR 전 구간에 대해 보안할증료(Convoy Surcharge)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운임인상에 대한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현재 보스토치니~핀란드간 통과화물에 대해선 이용하주들의 강한 반발과 한국정부측의 강력한 항의로 철회된 상태다. 핀란드향 화물은 유럽해상항로와의 경쟁관계를 의식 않을 수 없기 때문. 그러나 CIS(독립국가연합)향과 러시아내륙화물에 대해선 보안할증료가 적용되고 있어 이 지역 수출하주들에게 상당한 부담감을 안겨주고 있다.
보안할증료란 개념은 다른 운송루트엔 없는 것으로 무장경호에 대한 비용을 말한다. 무장경호원이 호송하는데 따른 비용을 러시아 정부측이 하주들에게 받겠다는 의미인 것. 보안할증료는 그 요금 산정이 거리와 지역마다 달라 많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고 업계측은 설명한다. 현재 보스토치니~모스크바간 화물 경우 FEU(40피트컨테이너)당 350~400달러의 보안할증료가 적용되는데, 열차 한량당 3TEU의 화물이 적재되는 것으로 계산했을 때 전체 열차가 50량으로 연결될 경우 그 열차에 총 부과되는 보안할증료는 보스토치니~모스크바화물의 경우 3만달러를 넘게 된다. 보안할증료 도입에 대한 배경으로 내년 러시아에서 치러지는 총선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는데, 이유야 어찌됐건 이는 곧 한국하주들이 대부분인 TSR이용하주들을 상대로 억지장사를 하겠다는 러시아 정부의 횡포라고 관련업계 및 하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핀란드향 화물과 달리 다른 운송수단의 대안이 없는 중앙아시아나 러시아내륙화물 수출업체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보안할증료를 징수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보안할증료까지 작용됨에 따라 가뜩이나 한국~핀란드구간보다 운임이 높았던 한국~중앙아시아구간은 더욱더 많은 운임을 지불하게 됐다.
한편 선사들은 이달부터 구성한 가칭 ‘동해선사협의회’를 중심으로 성수기할증료(PSS)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보안할증료가 도입 안된 핀란드화물에 대해서 TEU당 100달러, FEU당 200달러의 PSS를 적용하고 있는 것. 하지만 대형가전3사 중심인 핀란드향 서비스 상황상 그 인상분은 고스란히 포워더가 떠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선사들도 우려하고 있는 부분으로 가전3사는 대형하주란 잇점을 살려 최대한 운송사측에 운임할인을 요구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운임어드벤테이지를 적용받고 있는 상황이다. 포워더들은 선사들이 PSS를 적용함에 따라 하주들에게 이를 청구해야한다고 전하고 있으나 실제로 청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미지수인 눈치다.

TSR시장 아직까지 미미하다

TSR을 서비스하는 운송사들은 떠들썩한 대내외보도와는 달리 TSR시장은 아직까지 협소하며 한정돼 있다고 말한다. 실제 화물수송분담률에서 러시아 전체화물량 중 TSR이 담당하는 비중은 5%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미미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진출 포워더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화물만가지고선 이제 복합운송업체들은 이익률 개선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기존 포워더들 위주로 새로운 하주들을 개발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법이 모색되고 있다. 중국, 베트남 등 현재 유럽해상항로서비스를 이용하는 하주들을 러시아와 CIS화물의 TSR루트로 유치하는 것과 아프가니스탄,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지리적으로 TSR경유 루트에 강점이 있는 지역의 화물유치 등이 그것이다. 또 국내가전업체들에 편중된 화물집하를 해외하주를 개발하고, 수출에 머무르고 있는 운송서비스를 수입쪽으로도 개발해야 한다는 것도 포워더들이 풀어야할 숙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이제까지 TSR이 많은 관심과 주목 속에서도 해당서비스 운송업체들이 실패한 데 대해 한 업체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무리한 해외 자회사의 설립과 이종업종에 무리한 투자를 하는 등 방만한 경영과 수출입 물동량의 균형을 이뤄내지 못한데 따른 컨테이너 관리 실패 등이 처음 TSR을 개발했던 포워더들이 이후 몰락의 길을 걸었던 이유입니다.”

글·이경희기자(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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