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9-15 17:53
2020년 `아시아 경제.물류허브' 꿈꾸는 상하이
(상하이=연합뉴스) 최근 들어 다국적기업들 서로 앞다퉈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몰려드는 가운데 '아시아의 진주(동방명주, 東方明珠)'로 불리는 중국 상하이가 아시아 경제 중심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이에 따라 상하이는 역시 동북아 경제 중심을 겨냥하는 우리나라에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할 전망이다.
이달 초 상하이에서 대외경제정책 연구원(KIEP) 주최로 열린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전망 세미나에서 나온 발표와 현지에 진출해 있는 정부 및 기업체 관계자들에 대한 취재 내용을 중심으로 아시아 경제.물류중심으로 도약하고 있는 상하이의 현황을 소개한다.
밀려드는 외국인 투자.. 투자가 투자를 부른다
현재까지 상하이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만 봐도 동북아 경제중심 도약을 국가 목표로 선포한 한국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하다.
지난 1960년대 이래 40년 가까이 누적된 한국의 외국인 투자 유치 누계액이 847억달러에 이르고 있으나 90년대 초반에야 겨우 시작된 상하이 1개 권역의 외자 유치실적만 해도 이미 634억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상하이 당국은 여기에 더해 2010년 상하이 엑스포가 개최될 때까지 최소 300억달러를 추가로 유치해 발전 속도를 더욱 높인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뒤늦게 다국적기업 유치전에 뛰어든 한국과 달리 상하이의 떠오르는 경제 중심 포동지구에는 이미 세계 500대 기업 중 제너럴 모터스, 알카텔 등 174개사가 진출했고 작년 한 해에만 다국적기업의 지역본부 16곳이 새로 상하이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이 지난 2일 발표한 '동북아 경제중심 로드맵'에서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외국 기업에 대한 현금보조제나 프로젝트 매니저제 등을 제시했지만 이미 상하이에서는 오래 된 '구문(舊聞)'들이다.
투자 기업이 사업 초기에 거둔 이윤의 14∼18%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현금보조제는 물론이고 3년 이상 고용한 현지인 비율이 25% 이상인 경우 이윤의 7∼14%를 3년간 지급하는 고용보조금제, 투자 유치에 성공한 공무원에게 인사 우대와 함께 유치액의 0.2∼0.3%를 지급하는 인센티브제 등이 진작부터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박상기 상하이 총영사는 "상하이 뿐 아니라 인근 저장성과 푸젠성 관계자들까지,한국 기업의 투자를 끊임없이 권유하며 면담을 요청하고 있어 일정을 잡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하고 "최근의 급성장으로 여력이 커진 중국 기업들의 대외 투자 문제까지 논의하자는 제의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중국의 임금도 상승세를 보여 값싼 노동력의 매력은 다소 m줄었으나 투자가 투자를 끌어들이면서 상하이를 중심으로 중국 대륙을 찾는 외국 기업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하이 부근 쑤저우에 반도체 라인을 이달 초 증설한 삼성전자 현지법인 관계자는 "세계적 기업들이 핵심 기술 부문까지 중국으로 이전하는 게 저임금 때문만은 아니며 이곳에 시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주요 수요처인 PC와 통신기기업체들이 현지 생산 제품의 공급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아직 1천달러 내외에 불과하지만 이 같은 초고속 성장덕분에 상하이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말 이미 4천909달러를 기록했으며 연 평균 소득 증가율을 전국 평균인 7∼8%보다 2∼3% 포인트 높게 유지해 2007년까지 7천500달러를 달성한다는 게 시 당국의 복안이다.
거듭되는 급팽창..세계 최대 양산 심수항 개발
외자 유치와 경제 발전을 바탕으로 급증하는 물동량을 소화하기 위한 상하이의 계획을 보면 한국의 동북아 물류중심 로드맵은 초라할 정도다.
상하이항의 컨테이너 처리량은 2000년의 세계 6위 이후 매년 한 단계씩 올라 올해는 부산항을 제치고 세계 3위로 부상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특히 다른 지역에서 나온 물동량을 또다른 지역으로 바꿔 싣는 환적물량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연 평균 물동량 증가율이 10%대의 부산항과는 비교도 안되는 30%대에 달하고 있다.
현대상선 상하이 현지법인 관계자는 "화물연대 파업이 부산항의 순위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시기를 앞당기는 요인이었을 뿐이며 상하이는 벌써부터 외국 기업들이 쏟아내는 물동량을 소화하기에도 버거울 정도"라며 "이곳에서는 부산항의 발전 계획이나 한국의 동북아 물류중심 계획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물류에 대한 상하이 당국의 관심은 양쯔강에서 쏟아져 나오는 토사로 수심이 얕을 수밖에 없는 상하이항을 확장하기보다는 현재 부산항의 3배를 소화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52선석을 갖춘 양산 심수항 개발을 택한 점에서도 쉽게 읽힌다.
상하이 앞바다에 위치한 양산도와 상하이를 세계에서 가장 긴 32㎞의 6차선 연륙교로 연결하고 2020년까지 4단계로 나눠 개발될 양산 심수항 사업이 완료되면 현재 부산이나 일본 고오베, 홍콩 등에서 환적되는 중국의 물동량을 소화함으로써 물류 비용이 40%까지 줄어 중국의 경쟁력을 더욱 끌어올릴 전망이다.
아울러 중국발 환적 물량을 잃어 버린다면 동북아 물류중심을 겨냥하는 부산과 광양항에는 치명타가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동북아 경제 중심, 치밀한 검토 없이는 실패 가능성 높아
중국의 거대한 행보 앞에 가장 위협받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의 동북아 경제 중심 계획이다.
중국이 이미 시행한 제도를 뒤따라가는 외자 유치 촉진책이나 세계 최대의 신항개발에 따른 동북아 물류의 변화를 담지 못한 채 부산항과 광양항을 합쳐 2006년까지 14선석 가량을 확장하겠다는 구상 정도로는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현지에 진출한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놓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고일동 선임연구위원은 "DHL 등 세계적 물류기업들은 단순 물류 대신 세계 각국에 제품조립 공장을 세워 물류망으로 운송된 부품을 조립,공급하는 '고부가가치 물류'에 주력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환적 등 저부가가치 중심의 물류 정책이나 항만시설 확장 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를 의식한 듯, 이달 하순에 정부의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관계자들이 상하이를 찾아 현지의 발전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계획이다.
거대한 중화 경제권과 경쟁하면서 동시에 공존이 불가피하다면 이들 급성장하는 지역과 FTA 체결을 통해 연관성을 높여나가는 것이 동북아 경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KIEP의 정인교 연구위원은 "한중 양국이 많은 산업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 기술이나 가격 차이가 존재한다"고 전제하고 "2004년 체결 목표인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시한까지 체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만큼 이 같은 시기에 한-중, 나아가 한-중-일 FTA의 체결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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