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24 17:02

아르헨티나 외채상환 중단 배경과 전망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성기준특파원= 1천320억달러의 외채에 대한 아르헨티나 과도정부의 최대 3년간 대외 부채 상환 중단 선언은 일단 국가경제의 부도와 파탄을 의미한다.
달러화대 페소화의 환율을 1대1로 고정시킨 태환정책과 달러공용화 가능성에 대한 거듭된 부인, 잇단 초긴축 정책 등으로 견딜 만큼 견디어 보았지만 `없는 집 제삿날 돌아오는 격'으로 매월 상환만기가 도래하는 외채원리금 앞에서는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997년 10월부터 시작된 아르헨티나의 경제난은 과도정부의 외채 상환중단선언으로 일단 일정기간 외채상환을 유예할 시간적 여유을 얻으면서 국제채권단에 갚아야 할 돈으로 국내투자와 고용창출, 밀린 월급과 연금 지급 등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연방의회의 인준절차를 거쳐 23일 임시대통령으로 취임한 로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과도정부로서는 일단 한 숨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문제는 외채 상환 중단 선언 이후의 상황이다.
로드리게스 사아 임시대통령은 이날 취임연설에서 "외채상환이 일시 중단되지만 상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또 "상환유예기간의 외채이자를 활용, 고용창출 및 월급과 연금을 지불해 민생안정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외환보유고가 100억달러 남짓한 상태에서 상환중지 기간이 지나더라도 채무변제능력을 갖출 수가 있느냐가 관건이다.
태환법에 묶인 태환정책으로 페소화의 시중유통량도 외환보유고 및 금보유량에 맞춰진 상태에서 외채상환 중단만이 최선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론당의 강경파인 로드리게스 사아 임시대통령은 "태환정책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재정지출을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당분간 공공부문근로자의 임금과 연금생활자의 연금을 보너스 채권으로 지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페소화의 평가절하는 태환정책의 포기 또는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려한 바도 없으며, 달러공용화 문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긴축론자인 로드리게스 사아 임시대통령이 상환 중단을 선택하되 긴축을 강조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지원 가능성을 다시 열어 놓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소요사태로 중도사퇴한 페르난도 델라루아 전대통령도 재임시절 9번째 긴축조치를 강행했으나 페론당 주지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최종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로드리게스 사아 임시대통령의 당내 역량과 "과거와 달리 긴축조치들이 제대로 가동될 경우 추가 차관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는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의 발언으로 볼 때 이번 만큼은 IMF도 추가 구제금융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법(태환법)으로 금지된 페소화 평가절하는 아르헨니타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심리적인 마지노선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에 과도정부라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사안이다. 태환법 실시 직전 라울 알폰신 정권시절의 아우스트랄화가 연간 5천% 이상으로 치솟는 초인플레 앞에서 휴지조각이 되는 것을 경험한 아르헨 국민의 입장에서는 페소화의 평가절하를 상상하기 어렵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사실상 달러경제화됐다는 점에서 달러 공용화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조치이지만 이 정책은 지금처럼 현금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실익이 없을 뿐 아니라 아르헨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만 준다는 점에서 채택 가능성이 희박하다.
외부에 내다팔 공기업이라도 남아있다면 평가절하나 달러 공용화가 경제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97% 가량 민영화된 현재로서는 `기댈 언덕'마저 없기 때문에 경제난을 회복불능 상태로 빠트리기가 십상이다.
경제학자들은 따라서 10여년전 아르헨티나가 경제위기에서 탈출했던 때와 같은 기적적인 회생책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단언해 왔다. 결국 과도정부는 1천320억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외채에 대해 최대 3년간의 지불중단을 선언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셈이다.
외채상환 중단으로 당장의 위기에서는 벗어났으나 수도꼭지를 손가락으로 틀어 막은 것과 같은 상황에서 태환정책의 고수여부는 앞으로도 아르헨티나 경제의 화두로 등장할 수 밖에 없다.
오늘날 경제위기의 원인이 외부적으로는 긴축만을 강요한 다국적 금융기관들에도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10년 이상 지속된 페소화의 고평가로 수출 부진과 투자 위축 등 많은 부작용을 낳은 데서도 찾을 수 있다. 로드리게스 사아 과도정부의 취임으로 사실상 정권을 넘겨받은 페론당이 앞으로 고심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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