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1-02 10:02

KSG 칼럼/ 이호영 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부 "대인의식"

국제회의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국제계약협상을 할 때 흔히 고위급 회의에서 원칙을 합의하면 실무자들만 남아 회의록(Minute)이나 계약서 초안을 작성하는데, 이 작업은 또 하나의 전쟁을 방불하게 신경전을 벌리게 된다.
구두로 합의한 원칙은 간단하지만 이를 실제에 맞추어 정리하는 문구는 ‘아’ 다르고 ‘어’가 달라 이해관계가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런 경우 높은 사람들은 실무자들에게 맡기고 상대방 고위급들과 함께 회식 같은 것이나 즐기게 되는데 외국사람의 경우에는 고위급 중 한 명 정도는 꼭 자기 방에 남아 원격조정으로 자기측 실무자와 연락하에 회의록 작성을 지휘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일은 별로 보지 못하였다.
높은 사람들은 큰 원칙적인 문제만 다루고 조그마한 문제는 아랫사람들에게 맡긴다는 식의 사고구조가 우리들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윗사람은 아랫사람들이 하는 조그마한 일까지 관여해서는 환영받지 못하고 아랫사람은 이럴 때 스스로 알아서 해야 제 구실을 한다는 사고방식 말이다. 아랫사람 역시 상대방과 이견이 있어 자기측 고위 관리자와 상의하고 싶더라도 실무적인 일로 회식하는 높은 양반 불러내 상의하는 일은 번거롭게 일로 생각해 삼가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실무진이 확인한 회의록에 왜 이런 구절이 들어 있느냐고 때늦게 말해 봐야 이미 늦은 것이다.
모든 사안에는 전략적인 면이 있고 전술적인 면이 있는데 전략적인 면은 대범하고 단호해야 하지만 전술적인 면은 치밀하고 상세해야 한다. 이 둘이 분리되지 않고 같은 사안 안에 함께 들어 있는데 높은 사람은 큰 일만 하고 낮은 사람은 잔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사고구조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정부나 회사에서 고위급에서는 큰일만 챙기는 식으로 일을 주관하고 작은 일은 아래에서 하는 식으로 하다보니 우리 나라 사람들이 국제사회에서 체결하는 계약과 관련한 사고가 났을 때 성격상으로 보아 상대방이 보상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구체적인 조문을 들고나와 자기들 귀책사유가 아니라고 빠져나가는 일을 무슨 사고가 날 때마다 심심지 않게 보게 된다.
한 동안 셔츠수출이 많이 될 때 원재료나 공임은 일본산과 똑같이 다 들어갔는데 우리 나라 수출품은 일본산에 비하여 백화점 판매가가 30%정도 싼 적이 있었다.
단춧구멍이 만들어져 있는데 절개가 되어있지 않던가 재봉 선이 어딘가 조금 비뚤어져 있어 반품요청이 많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전체적으로는 제대로 하고 마지막까지 조그마한 것을 꼼꼼히 챙기는 사람이 없어 큰 손해를 보는데 이를 막기 위해 회사에서는 자체 검사원을 배치하고 품질관리에 신경 쓰지만 검사원이 꼼꼼하게 챙기는 사람은 드물단다.
그렇게 하면 모두가 사람이 너무 잘다느니, 좁쌀이라느니 손가락질하기 때문에 오래 견디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모두 통큰 사람이 되려고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지출로 인한 고통이나, 국제사회에서의 손실은 매우 크다.
얼마 전에 교육계의 거물 인사가 TV에서 자녀들 교육문제에 대해 대담하는 프로에서 ‘Think Big’을 역설하는데 같이 대담하는 사람들은 이 의미를 그 분의 본의와는 달리 대인 의식적인 사고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많은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장차 대통령이나 장군이 되고 싶다고 하고, 국회의원 출마자의 선거공약을 보면 하나같이 통이 커서(?) 대통령 출마자의 선거공약과 다른 점이 별로 없으며, 식당 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다른 손님들 객석을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우건만 이를 제지하는 부모는 별로 볼 수가 없다.
아이를 억압하지 않고 하고 싶은 데로 하도록 해 기를 살려서 키워야 큰 인물이 된다는 사고방식이란다.
모두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은 누가 할 것인가? 통크고 대범하게 행동할 사람은 대통령이나 관공서의 장, 회사나 사업체의 우두머리들이나 하게 하고 나머지는 소심하게 자기 책임을 융통성 없게 잘하는 일이 중요하다.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가치관으로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일본에 입국 시에 미국달러를 일화로 바꾼 적이 있었는데 너무 오래 기다리게 되어 알아보니 환전하는 직원이 위페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돈을 한 장 한 장 확인하고 있었다.
분통이 터져 내 차례가 되면 불평을 토로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차례가 끝나자 똑같은 일을 열심히 하는 그를 어느새 칭찬해주고 싶어졌다. 기다리는 동안 생각해 보니 남이 째째하다고 손가락질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꼼꼼하게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그것이 일본이 발전하게 된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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