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8 09:30

판례/ “해상운송 중 봉인이 탈락하면 어느 나라 법으로?”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10.14.자에 이어>

평석

1. 시작하며 

이번 호에서 소개할 판례는 해상운송 중 봉인이 탈락한 경우 그 준거법을 정하는 방법 및 제척기간의 도과여부를 상고심에서 새로이 주장할 수 있는지에 관해 판단한 사례이다.

2. 사실관계의 요약 

가.
주식회사 D는 네덜란드의 E 회사로부터 네덜란드산 냉동 돈육(고추장 불고기) 640박스를 구입한 후 이를 한국으로 수입하기 위해 C와 운송계약을 체결했다.
나. E는 네덜란드 농업·자연·식품부의 식품 및 소비재 안전국 소속 담당공무원으로부터 수출 검역을 받은 다음, 네덜란드에 있는 자신의 공장에서 피고가 제공한 냉동 컨테이너 안에 이 사건 냉동 돈육을 9개의 팔레트에 적재하고 ‘Seal Number I’으로 봉인했다.
다. 이 사건 컨테이너를 실은 피고의 선박 J는 부산항에 도착했는데, 하역과정에서 컨테이너의 봉인이 탈락된 사실이 확인돼 이 사건 컨테이너는 곧바로 화물집하장으로 이동됐다.
라. 검역담당관은 농림수산부 고시 제9조에 의거 봉인 탈락은 그 내용물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검역통과 불가사유에 해당되고, 한국에서 전염 중인 구제역 때문에 이 사건 컨테이너의 문을 여는 순간 내용물 승인은 불가능하게 된다는 이유로 위 요청을 거부했다.
마. 이 사건 냉동 돈육은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담당자 등이 입회한 가운데 전량 소각 처분됐다

3. 주요쟁점 및 법원의 판단 

가.
주요쟁점

1) 국제사법 제32조 제1항에서 정한 ‘불법행위가 행해진 곳’에 결과발생지로서 법익침해 당시 법익의 소재지가 포함되는지 여부
2) 상법 제814조 제1항에서 정한 해상물건 운송인의 송하인이나 수하인에 대한 책임의 소멸기간(제척기간)이 도과했는지가 법원의 당사자가 제척기간 도과 여부를 사실심 변론종결 시까지 주장하지 않았더라도 상고심에서 이를 새로이 주장·증명할 수 있는지 여부 및 이것은 제척기간이 연장됐음이 밝혀진 경우에도 마찬가지인지 여부 

나. 법원의 판단 

1) 불법행위의 결과발생지와 관련된 준거법의 결정
소송사건에 적용할 법률은 법원이 직권으로 조사할 사항이고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관한 것은 국제사법에 따라 준거법을 정해야 한다. 국제사법 제32조 제1항에서는 불법행위는 그 행위가 행해진 곳의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불법행위가 행해진 곳에는 손해의 결과발생지로서 법익침해 당시 법익의 소재지도 포함된다(대법원 1983년 3월22일 선고 82다카1533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08년 4월24일 선고 2005다75071 판결 등 참조).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봉인번호의 탈락이 최종 확인된 장소가 대한민국이고 이로 인해 침해된 한진의 법익 소재지도 대한민국이다. 따라서 원고가 대위하는 대한항공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준거법은 대한민국 법이 된다.

2) 제척기관과 관련해 
상법 제814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해상물건 운송인의 송하인이나 수하인에 대한 책임에 관한 소멸기간은 제척기간이다(대법원 1997년 11월28일 선고 97다28490 판결 등 참조). 또한 당사자가 제척기간의 도과 여부를 사실심 변론종결 시까지 주장하지 아니했다 하더라도 상고심에서 이를 새로이 주장·증명할 수 있고(대법원 2000년 10월13일 선고 99다18725 판결 등 참조), 이는 제척기간이 연장됐음이 밝혀진 경우에도 같다.

4. 검토 및 시사점

국제사법 제32조 제1항에 의하면 불법 행위는 그 행위가 행해진 곳의 법에 의하고, 불법 행위가 행해진 곳에는 손해의 결과발생지로서 법익침해 당시 법익의 소재지도 포함된다(대법원 2008년 4월24일 선고 2005다75071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운송계약의 당사자들은 준거법을 선택한 적이 없으며, 계약의 당사자들 모두 대한민국 법인이고 양하지는 부산항이다. 또한 결과적인 손해의 발생이라고 할 수 있는 소각처분이 대한민국에서 있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이 사건 운송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 만 아니라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의 결과발생지로서 법익침해 당시 법익의 소재지이다.

이 사건에서 불법행위는 봉인을 탈락하게 한 행위라고 할 수 있으나, 그 행위지를 탐색하기란 상당히 곤란하다. 반면 손해의 결과가 발생한 곳은 화물의 소각처분이 있었던 대한민국임이 분명하므로, 이에 따라 대한민국법이 준거법이 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타당하며, 이는 당사자 간 준거법 합의가 없는 경우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국제사법 제16조 제1항과도 부합하는 해석이다. 

또한 상법 제814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해상물건 운송인의 송하인이나 수하인에 대한 책임에 관한 소멸기간은 제척기간이고, 이는 법원의 직권판단사항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므로, 당사자가 사실심 변론종결시까지 도과여부에 관해 주장하지 않다가 상고심에 이르러 새로이 이를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법원으로서는 이를 심리해야 한다. 따라서 이에 관련한 대법원의 해석 역시 타당하다. 

위와 같은 대법원의 해석은 해상운송에 있어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사고에 관해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사고와 관련해 가장 실질적이고 적절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유연한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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