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고 조양호 회장 5주기를 맞아 경기도 용인시 신갈 선영에서 열린 추모제에 진우회 7대 집행부가 참석했다. 왼쪽부터 민효식 감사, 김홍준 사무총장, 안완수 회장, 오무균 부회장, 최영배 부회장. |
어느덧 한진해운이 파산한 지 7년 여가 지났다. 한진해운은 지난 2016년 8월 말 법정관리(회생절차)를 신청했지만 끝내 회생에 실패하고 이듬해인 2017년 2월 법원에서 최종 파산 선고를 받아들었다.
국내 대표 선사의 좌초는 한국해운을 큰 위기에 빠드렸다. 5위였던 우리나라 지배선대 순위가 7위까지 미끄러졌고 국내 해운기업의 신용도는 급전직하로 추락했다. 부산항도 환적화물 수십만개가 증발하는 피해를 입었다.
세월이 흘러 정부의 해운 재건 정책과 코로나19가 불러온 사상 초유의 해운 호황을 배경으로 한국해운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우리나라 지배선대는 어느새 9000만t을 돌파하며 세계 5위를 회복했다.
이런 가운데 한때 국내 대표 해운사의 퇴직 임원(OB) 모임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 온 ‘진우회’가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어 주목된다. 올해 1월 7대 수장으로 취임한 안완수 회장과 최영배 부회장을 만나 진우회의 지난 역사와 향후 계획을 들었다.
한진해운 OB 모임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시절이던 1999년 태동했다. 올해로 25년의 나이가 된 셈이다. 외환 위기 당시 한진해운이 사상 최대 규모의 임원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그때 회사를 나온 한진해운 이승현 부사장과 고병우 컨테이너영업이사 등이 주축이 돼 진우회 창설을 이끌었다. 둘은 진우회를 창립한 뒤 각각 초대 회장과 총무 자리를 맡았다.
이승현 회장은 한진그룹 창업자인 조중훈 회장이 대한선주를 인수해 한진해운을 만들 당시 대한항공에서 파견 온 인물로, 이후 한진해운과 거양해운 부사장, 독일 세나토 사장을 역임했다. 한진해운을 나온 뒤엔 동남아해운과 한국도심공항 사장을 지냈다. 고병우 총무는 대한해운공사에서 합류한 해운통이다.
이를 두고 안 회장은 한진해운이 여러 회사에 있던 구성원들이 모여 만들어진 회사임에도 결속이 잘 됐다고 회고했다.
대한항공·해운공사·한진해운간 융화가 진우회 근간
“한진해운은 대한항공과 대한해운공사(대한선주), HJCL(통합 전 한진해운) 이 세 곳을 뿌리로 해서 만들어졌다. 대개 보면 그룹이나 회사는 통합이 되면 자기들끼리 알력이 많은데 한진해운은 선배들이 잘 하신 건지 세 곳의 멤버들이 융화가 정말 잘 됐다. 뿌리는 다를지언정 전혀 갈등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이 퇴임 후에 자연스럽게 진우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사와 관계 없이 자생적으로 생겨난 모임인 까닭에 초창기 진우회는 그야말로 퇴직자들의 순수 친목 모임으로 운영됐다. 자체 규정도 갖추지 못했고 모회사의 지원도 없었다.
그러다 2005년 2대 송영수 회장이 취임한 뒤 비로소 창립 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을 알리게 된다. 이때 회칙도 제정됐다. 지금은 고인이 된 송영수 회장은 대한항공과 대한선주 대한조선공사 등의 인수합병을 주도해 한진그룹의 토대를 다진 인물로, 한진해운 부사장과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 사장을 지냈다.
이후 김찬길 전 한진해운 사장이 3대 회장을 맡았을 무렵 한진해운의 찬조금 후원이 이뤄졌고 모임은 더욱 커졌다. 2011년 황희태 전 한진해운 전무가 4대 회장에 취임했을 당시 전체 회원은 130명을 넘어섰다. 국내 해운업계 대표 OB 모임으로 우뚝 선 것이다.
▲올해 4월 열린 정기총회에서 진우회의 재도약과 회원 간 화합을 다짐했다. |
하지만 2016년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모임의 대외 활동도 크게 위축됐다. 모회사의 지원이 끊기면서 기금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박정원 전 한진해운 사장이 5대 회장을 맡고 있을 무렵이다.
박정원 회장의 바통을 오창권 전 한진해운 전무가 이어받았고 올해부터는 안완수 회장이 새롭게 모임을 이끌게 됐다. 안 회장은 지난 2005년 벌크선 영업담당 상무를 마지막으로 한진해운에서 퇴사한 뒤 인천과 중국 톈진 간 카페리선을 운항하는 진천국제객화항운에서 사장을 지냈다. 이후 박사학위를 취득해 동국대에서 후학을 가르친 학구파다.
한국해양대 항해과 29기(73학번)로, 미국 해운사였던 라스코해운에서 승선 근무할 당시 2년 만에 선장으로 승진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안 회장은 “그동안 진우회 회장은 대표이사급 임원이 맡는 게 관례였는데 저는 상무로 퇴임했지만 초고속 선장, 교수 등의 이력이 있어서 이번에 회장을 맡게 된 것 같다”고 농을 쳤다.
회원 문턱 낮춰 모임 활성화 꾀해
안 회장은 취임 이후 최영배·박길영·오무균·류재혁(부산) 부회장, 민효식 감사, 김홍준 사무총장을 집행부로 위촉하고 모임 재건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4월 정기총회를 열고 조양호 회장 5주기 추모제에 참석하는 등 공식 행보를 본격화한 안 회장은 이후 각종 소모임 행사를 활성화해 회원 간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현재 진우회엔 등산반과 트레킹반 한시반 당구반 등의 소모임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일본통인 최영배 부회장을 ‘가이드’로 앞세워 지난해와 올해 일본 원정 투어를 다녀오기도 했다.
안 회장은 향후 사업방향으로 모회사 복원과 기금 확충, 신규 회원 확대를 꼽았다. 당장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계열 분리한 유수홀딩스나 조원태 회장과 조현민 사장이 이끄는 한진그룹과 관계를 복원하려고 노력 중이다.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진우회도 고아원 같은 신세가 됐다. 우리끼리는 행사를 계속 이어나가긴 했지만 뿌리인 모회사가 없어지면서 모임 방향도 불투명해지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진해운은 사라졌지만 최은영 회장이 이끄는 유수홀딩스나 한진해운의 모그룹이었던 한진그룹은 여전히 건재하지 않나?
한진해운의 한 축이었던 대한해운공사 출신들은 ‘해공회’나 ‘해동회’ 등의 OB 모임을 여전히 왕성하게 운영하고 있다. 해운공사가 없어진 지 벌써 40여 년이 흘렀는데도 OB모임 멤버들의 결속력은 대단하다. 우리 진우회도 그렇게 갈 수 있다고 본다.”
최영배 부회장은 한진해운이 사라져서 신규 회원 영입이 사실상 어려워진 점을 고려해 회원 자격을 한진해운 임원 출신에서 차·부장으로 확대했다고 전했다. 한진해운 퇴직 임원 모임에서 팀장급까지 참여하는 모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진우회 회원은 오히려 과거보다 늘어났다. 현재 150명 정도가 회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등 해외에서 20여 명, 부산 등 지방에서 4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모회사가 없어졌어도 신규 회원을 늘려야 모임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겠나. 한진해운에서 부장이나 차장으로 근무한 분들 중에 한진해운이 인생 직장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진우회에 참여하라고 독려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20명 정도의 회원이 새롭게 가입했다.”
안 회장은 “한진해운은 비록 과거의 회사가 됐지만 거기에 몸담았던 인력들은 현재 해운업계 곳곳으로 퍼져 한국해운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며 “진우회도 그들과 함께 해운산업 재건에 이바지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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