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9자에 이어>
(다) 이처럼 ‘감항성의 결함’은 일반적·규범적인 개념으로서 그 의미가 다소 광범위하기는 하나, 이는 안전한 항해와 관련된 무수히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감항성이라는 개념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선박이 감항성을 갖추려면 선체의 외벽과 격벽, 용골 등 구조의 안전성, 기관, 전기설비, 방화설비, 구명정과 구명조끼 등 구명장비, 항법장치, 연락설비 등을 모두 갖추어야 하고, 이를 적절히 운용할 수 있는 선원을 탑승시켜야 한다. 이는 개별적인 선박의 규모와 운항목적은 물론이고 운항하려는 바다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어야 하는데, 바다의 상황은 계절과 기상, 시간에 따른 조류의 변화 등에 따라 같은 해수면 위라고 하더라도 천차만별이므로, 위와 같은 요소들을 고려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가정해 법령에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뿐더러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어떤 선박이 감항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확정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은 없고, 특정 항해에서의 구체적·개별적인 사정에 따라 상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바, 심판대상조항의 수범자인 선박소유자, 선장, 선박직원은 자신이 소유하거나 운항하는 선박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들로서 해당 선박이 특정 항해에서 감항성을 갖추었는지 여부에 관해 충분히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처벌법규의 수범자들이 일정한 범위로 한정돼 있는 경우에는 수범자들이 금지되는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거나 예측할 수 있음을 전제로 명확성에 대한 요구가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헌재 2023년 10월26일 2023헌가1 참조), 신고의무조항이 ‘감항성의 결함’의 구체적 의미에 관해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더라도 해당 규정이 수범자의 입장에서 예측가능성 내지 명확성을 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
(라) 청구인들은 ‘감항성의 결함’의 의미가 불명확한 탓에 매우 경미한 결함의 신고를 누락한 경우에도 처벌받을 위험에 놓이게 되는 것이 부당하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정기적 혹은 임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선박안전법상 검사들에 합격할 수 있는 상태를 감항성을 갖춘 것이라고 본다면, 청구인들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선박의 감항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매우 경미한 결함까지 신고의무의 대상에 포함된다고 해석되지는 아니하며, 구체적 사안에서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마) 한편 신고의무조항의 문언에 따르면 신고의무조항의 수범자는 ‘누구든지’, 즉 모든 사람이며, 벌칙조항의 직접적인 수범자는 ‘선박소유자, 선장, 선박직원’으로서 다른 해석의 여지없이 명확하다. 비록 양벌규정인 구 선박안전법(2009년 12월29일 법률 제9871호로 개정되고, 2020년 2월18일 법률 제1702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4조 제4항에 의해 벌칙조항의 수범자의 범위가 ‘선박소유자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까지 확대되기는 하나, 이러한 양벌규정의 취지는 벌칙조항의 직접적인 수범자는 아니더라도 그러한 업무를 실제로 집행하는 자가 있을 때 벌칙 규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적용대상자를 해당 업무를 실제로 집행하는 자까지 확장해 그 행위자도 아울러 처벌하려는 것이어서 이러한 양벌규정은 해당 업무를 실제로 집행하는 자에 대한 처벌의 근거 규정이 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므로(대법원 2017년 11월14일 선고 2017도7492 판결 참조), 이로 인해 수범자의 범위가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가 불명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청구인들은 신고의무의 발생시기 및 소멸시기가 불명확하다고도 주장하나, 신고의무조항의 문언 및 상법 제794조가 감항능력은 발항 당시에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보면 ‘선박의 감항성의 결함’을 발견한 자에게는 곧바로 신고의무가 발생하고, 신고는 적어도 해당 선박의 발항 전까지는 이루어져야 하며, 출항 전까지 결함이 자체적으로 수리되지 않거나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신고의무조항을 위반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 위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신고의무조항의 ‘선박의 감항성의 결함’이란 ‘선박안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각종 검사 기준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상태로서, 선박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성능인 감항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흠결’이라는 의미로 명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신고의무조항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다. 심판대상조항의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 위배 여부
(1)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고의무조항의 ‘선박의 감항성의 결함’의 의미가 ‘선박안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각종 검사 기준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상태로서, 선박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성능인 감항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흠결’이라는 의미로 명확하게 해석되는 이상, 선박의 감항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매우 경미한 결함을 발견한 경우까지 신고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
(2) 청구인들은 선박소유자, 선장, 선박직원뿐만 아니라 선박소유자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이하 ‘선박소유자의 관계인’이라 한다)까지 심판대상조항 수범자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은 비례원칙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심판대상조항의 개정이유는 선박의 결함을 발견하고도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를 은닉하고 운항을 계속함으로써 막대한 인명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야기하는 사고로 이어져온 해운업계의 잘못된 관행에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인바, 이러한 입법목적을 고려한다면 선박소유자의 관계인에게도 신고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 과도하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과실범은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하는 것이 원칙이고(형법 제14조), 심판대상조항의 문언에 비추어볼 때 이를 과실범의 경우에도 처벌한다는 규정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우므로, 심판대상조항위반죄는 고의범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선박소유자의 관계인이 심판대상조항위반죄로 처벌받으려면 그들이 선박의 감항성의 결함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검사가 증명해야 할 것이고, 선박의 결함을 알지 못했다면 고의가 인정되지 아니해 처벌받지 않을 것인바, 선박소유자의 관계인에게도 신고의무를 부담시키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는 것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보기 어렵다.
(3) 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하는 문제 즉, 범죄의 설정과 법정형의 종류 및 범위의 선택은 행위의 사회적 악성과 범죄의 죄질 및 보호법익에 대한 고려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 입법 당시의 시대적 상황, 국민 일반의 가치관과 법감정 그리고 범죄예방을 위한 형사정책적 측면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법자가 결정할 사항으로서 광범위한 입법재량이 인정돼야 할 분야이다. 그리고 행정법규 위반행위에 대해 이를 단지 간접적으로 행정상의 질서에 장애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는 데 불과한 경우로 보아 행정질서벌인 과태료를 과할 것인지, 아니면 직접적으로 행정목적과 공익을 침해하는 행위로 보아 행정형벌을 과할 것인지는 기본적으로 입법권자가 제반 사정을 고려해 결정할 문제이다(헌재 2010년 7월29일 2009헌바53등; 헌재 2023년 6월29일 2020헌바489 참조).
선박 사고는 장거리를 장시간 운항하는 선박의 특성상 육지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비해 발생했을 때 외부의 즉각적인 조력을 기대하기 어려워 막대한 인명피해와 물적 손실이 발생할 위험성이 크다. 이러한 피해는 한 번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므로 사전에 그러한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예방할 필요가 있는바, 사후적인 보완명령이나 과태료 처분 등 단순한 행정상의 제재수단만으로 이와 같은 위험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한편 항공안전법에서는 선박안전법과 달리 결함 미신고 행위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으나 항공기와 선박은 물리적으로 전혀 다른 구조와 작동원리를 가지고 있고, 운항 환경과 안전통제 제도, 해당 업계의 관행, 사고 위험성과 규모 면에서도 동일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운송수단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와 관련된 규정들도 동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벌칙조항은 법정형을 징역형과 벌금형으로 선택적으로 규정하면서, 하한의 제한 없이 상한만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에 따라 법관으로서는 신고하지 아니한 결함의 경중이나 그 결함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의 정도, 결함을 발견한 자의 지위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행위의 위법 정도와 행위자의 책임에 비례하는 형벌을 부과하는 것이 가능하고,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이 책임의 범위를 벗어나 과도한 법정형을 정했다고 볼 수도 없다.
(4)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6. 결론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모두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아래 7.과 같은 재판관 이종석, 재판관 이은애, 재판관 정형식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재판관들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의한 것이다.
재판관 이종석(재판장) 이은애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정형식
<계속>
< 코리아쉬핑가제트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