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금환급보증(Refund Guarantee; RG)은 선박건조계약에 있어서 조선소(보증의뢰인, 매도인)의 요청으로 금융기관(보증인)이 발주자인 선주(수익자, 매수인)에 대해 선수금의 상환을 보증하는 것이다. 즉, 선수금환급보증서는 금융기관이 조선소의 의뢰로 선주에게 발행·교부하는 증서로서 선박건조계약상 선주가 어떠한 이유로든지 조선소로부터 선수금을 반환받아야 할 사유가 발생한 경우 금융기관이 선수금의 환급을 약속한 증서로 볼 수 있다.
발주자인 선주가 선수금환급보증서를 기초로 조선소의 경영악화 또는 도산 등을 이유로 보증인인 금융기관을 상대로 보증금의 지급을 청구하는 사건이 가끔 발생하는데, 이러한 사건에서 선수금환급보증의 법적 성격이 주요한 쟁점이 되는 바, 이번 기고에서는 대법원의 판례를 중심으로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선수금환급보증서는 주채무의 불이행이나 그에 대한 입증 등을 요건으로 하지 않고 ‘서면청구(written demand)’만 하면 취소 불가능하고 무조건적으로(irrevocably and unconditionally)’지급하도록 되어 있는 방식이 가장 흔하다. 이로 인하여 선수금환급보증의 법적 성격으로 꼽는 두 가지 특성이 바로 ‘독립성(무인성)’과 ‘추상성’이다.
우선, 선수금환급보증의 ‘독립성’은 해당 보증을 독립적 은행 보증의 일종으로 보고 기본계약인 선박건조계약과 독립적이며, 일반 보증과는 달리 원칙적으로 부종성이나 보충성이 없다는 점에 기초한다. 따라서 선주의 선수금환급청구가 있으면 보증인인 금융기관은 선수금환급보증서상의 지급조건의 충족 여부만을 기준으로 선수금의 지급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또한, 선수금환급보증의 ‘추상성’은 보증인인 금융기관이 선주로부터 선수금의 지급 청구를 받게 되는 경우 금융기관은 서류심사에 의해서만 선수금의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절대적 판단에 따라 선주의 선수금의 지급 청구가 있으면 이를 무조건적으로 지급하기도 하고, 금융기관의 서류심사는 제시된 서류가 문언상 선수금환급보증의 조건과 일치하는지의 여부만을 판단하며, 서류가 실질적으로 진정한 것인지 또는 선박건조계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는지의 여부 등을 조사할 의무는 없게 된다.
그렇다면 선수금환급보증의 독립성과 추상성은 항상 조건 없이 인정될 수 있을까?
그러나 선수금환급보증의 본질적인 특성인 독립성과 추상성이 항상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선수금환급보증의 독립성과 추상성에도 선주의 부당한 지급청구에 대하여는 금융기관이 보증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대법원은 선수금환급보증과 마찬가지로 추상성, 독립성의 특징을 가지는 이른바 독립적 은행 보증에 해당하는 신용장 관련 사건에서 보증서 문언에 따른 효력을 기본적으로 인정하되, 예외적으로 수익자의 청구가 신의칙과 권리남용 원칙에 위배되는 경우, 수익자가 청구 권한이 없음에도 독립적 은행보증의 추상성과 무인성을 악용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효력을 부인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 오고 있다. 그리고 선수금환급보증에도 동일한 법리를 적용하고 있다(대법원 2014년 8월26일 선고 2013다53700 판결, 대법원 2015년 2월26일 선고 2012다79866 판결, 대법원 2015년 7월9일 선고 2014다6442 판결 등).
다시 말해, 대법원은 신의칙 등을 이유로 독립성, 추상성에 근거한 선수금환급보증 효력 발생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어야 하고, 효력 발생의 예외를 쉽게 인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위 판결들의 시사점은 대한민국 법원이 독립적 은행보증인 선수금환급보증의 본질적 특성인 독립성과 추상성을 우선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법상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 또는 권리남용금지의 원칙도 예외적으로 적용될 수도 있지만, 금융기관이 위와 같은 효력 발생의 예외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주장 입증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성우린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전 팬오션에서 상선 항해사로 근무하며 벌크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다양한 선종에서 승선 경험을 쌓았다. 배에서 내린 뒤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로펌에서 다양한 해운·조선·물류기업의 송무와 법률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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