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자에 이어>
5. 판단
가. 쟁점
(1) 청구인들은 신고의무조항의 의미가 불명확하고 지나치게 광범위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므로 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2) 청구인들은 신고의무조항의 의미가 불명확한 까닭에 심판대상조항의 수범자가 매우 경미한 결함의 신고를 누락한 경우에도 처벌받게 되는 점, 수범자의 범위가 과도하게 넓은 점 등을 들어 심판대상조항이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므로, 이에 대해도 살펴본다.
(3) 청구인들은 심판대상조항이 ○○호와 같이 국내에 기항하지 않는 외국 국적의 선박에도 적용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심판대상조항을 비롯한 선박안전법 조항들이 국내에 기항하지 않는 외국 국적의 선박에도 적용되는 것은 심판대상조항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박안전법 제3조 제2항 제3호에 따라 국적취득조건부 선체용선을 한 외국선박에도 우리나라의 선박안전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므로, 청구인들의 이 부분 주장에 관해는 판단하지 아니한다. 한편 청구인들은 운송수단이라는 점에서 선박과 동일한 항공기의 결함을 신고하지 않은 자에게 과태료만을 부과하는 항공안전법과 비교할 때 심판대상조항이 체계정당성 원리에 위배된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일정한 공권력작용이 체계정당성에 위반된다고 해서 곧 위헌이 되는 것은 아니고, 결과적으로 비례의 원칙이나 평등원칙 등 일정한 헌법의 규정이나 원칙을 위반해야 한다(헌재 2023년 6월29일 2019헌바433 참조). 청구인들의 이 부분 주장은 결국 신고의무를 위반한 행위에 대해 형벌을 부과하는 것이 과도한 제재라는 취지이므로,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 위반 여부를 살펴보는 이상 이 부분 주장에 관해는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한다.
(4) 따라서 이 사건의 쟁점은 신고의무조항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 및 심판대상조항이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이다.
나. 신고의무조항의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 위배 여부
(1)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의 의미
헌법상 죄형법정주의는 범죄와 형벌이 법률로 정해져야 함을 의미하며,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되는 명확성원칙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법규범의 문언을 순수하게 기술적 개념만으로 구성하는 것은 입법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치개념을 포함한 일반적, 규범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당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 당해 법률의 체계 및 다른 규정들과의 상호관계를 고려하거나 이미 확립된 판례를 통한 해석방법을 통해 그 규정의 해석 및 적용에 대한 신뢰성이 있는 원칙을 도출할 수 있어서 법률조항의 취지를 예측할 수 있는 정도의 내용이라면 그 범위 내에서 명확성원칙은 유지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법관의 보충적인 가치판단을 통한 법문의 해석으로 그 의미내용을 확인해낼 수 있다면 명확성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헌재 2021년 12월23일 2019헌바87등 참조).
(2) 구체적 판단
(가) 감항성(堪航性, seaworthiness) 또는 감항능력이란 ‘선박이 자체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능력으로서 일정한 기상이나 항해조건에서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성능’을 말한다(선박안전법 제2조 제6호). 선박안전법은 ‘선박의 감항성 유지 및 안전운항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 원래 감항성은 해상법 및 보험법 분야에서 발달한 개념으로서, 운송인의 감항능력 주의의무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상법 제794조에 따르면 운송인은 자기 또는 선원 등이 발항 당시 다음의 사항, 즉 ‘선박이 안전하게 항해를 할 수 있게 할 것(제1호)’, ‘필요한 선원의 승선, 선박의장과 필요품의 보급(제2호)’, ‘선창·냉장실, 그 밖에 운송물을 적재할 선박의 부분을 운송물의 수령 운송과 보존을 위해 적합한 상태에 둘 것(제3호)’에 관해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했음을 증명하지 아니하면 운송물의 멸실 등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바, 위 각호의 내용이 상법에서 운송인에게 요구하는 감항능력의 구체적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감항능력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책임은 당사자 간의 특약으로도 감경할 수 없고(상법 제799조 제1항 참조), 해상보험자는 그로 인한 손해에 대해 면책된다(상법 제706조 제1호 참조). 이처럼 감항성은 해운업계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으로서 운송인과 화주 및 보험사 모두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특히 철광석 등 원자재의 해상화물운송을 목적으로 설립된 청구인 선사는 운송인의 지위에 있을 경우가 많으므로, 청구인들의 입장에서는 사고 발생 시 감항능력 주의의무를 다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한 경우 치명적인 경제적 손해를 입게 되는바, 감항성의 의미와 그에 관한 구체적 사례를 숙지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선박안전법에서 말하는 감항성 또한 위와 같이 해운업계에서 통용되는 감항성 또는 감항능력의 개념을 차용하되 그중에서도 선박의 안전성 측면을 특히 강조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나) 한편 ‘결함’이란 사전적으로 ‘부족하거나 완전하지 못해 흠이 되는 부분’을 뜻하는 일상적인 용어이며, 선박안전법에서는 신고의무조항 이외에도 선박용물건 등의 성능검사(제19조의2 제2항), 컨테이너의 성능검사(제23조의4 제2항), 항만국통제(제68조 제4항), 특별검사(제71조 제1항)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바, 이를 앞서 본 감항성의 의미와 종합해보면 신고의무조항에서 말하고 있는 ‘감항성의 결함’이란 ‘선박이 일정한 기상이나 항해조건에서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성능인 감항성이 부족하거나 완전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또한 앞서 본 바와 같이 선박안전법은 선박의 감항성 유지 및 안전운항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바, 선박안전법은 건조검사(제7조), 정기검사(제8조), 중간검사(제9조), 임시검사(제10조), 임시항해검사(제11조) 등 선박이 건조돼 운항하는 동안 받아야 하는 여러 검사들을 규정하고 있으며, 특히 청구인 선사와 같은 국제항해에 취항하는 선박의 소유자는 선박의 감항성 및 인명안전과 관련해 국제적으로 발효된 국제협약에 따른 해양수산부장관의 검사를 받아야 하며(제12조 제1항), 해양수산부장관은 위 검사에 합격한 선박에 대해 국제협약검사증서를 교부해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12조 제2항). 그렇다면 위와 같은 검사들의 심사대상이 되는 항목이 합격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감항성의 결함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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