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1 09:12

알기 쉬운 해상법 산책(11)/ 선박의 기생충, 나도 모르게 마약 밀반입

법무법인 세경 최기민 변호사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자동차 밑바닥에 마약이 붙어 있다면? 일반인은 이런 경험을 할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해상에서는 이런 일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대상이 자동차에서 선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올해 1월 부산 신항에 정박 중인 컨테이너선 외부 바닥 쪽에 있는 시체스트(엔진냉각을 위한 해수 흡입구)에서 코카인 100kg(3500억원 상당)이 발견되었다. 국제 마약 밀매 조직의 일명 기생충 수법으로 보고 있다.

2019년에도 태안항에 입항하려던 화물선 갑판창고 내 체인로커(앵커체인을 보관하는 장소)에서 코카인 100kg이 적발되었다. 이 사건은 필자가 사건 초기부터 태안에서 근 한 달 동안 숙식하며 담당하였던 사건인데, 해당 선박의 일등항해사가 피고인으로 기소되었으나 무죄로 판단됐다. 선박 측은 마약 밀반입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선박을 이용한 마약의 유통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컨테이너 구조 자체 또는 컨테이너에 적입된 화물 안, 또는 벌크 화물 안에 마약을 숨겨 밀수하였다면(2021년 아보카도 안에 코카인을 숨겨 부산항에 밀반입하려다 적발된 사건이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선박의 외부 구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대체로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등 중남미에서 출발하거나 중남미를 거치는 선박에서 이러한 일이 많이 발생한다.

선박 내·외부에서 마약이 발견되면 사법당국은 해당 선박과 선원들을 면밀하게 조사하게 된다. 당연히 선박은 출항이 금지될 것이고, 선원들은 육지에 구금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선박의 항해 및 화물운송은 상당 기간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중간에 선박의 억류가 풀리더라도 조사받는 선원을 교체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형사 문제는 관련 사실관계와 해당 국가의 법률에 따라 판단될 것이다. 따라서 관련된 법률관계를 일반화하여 검토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반면, 선박 측이 마약 밀수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선박에서 마약이 발견된 이상 필연적으로 선박의 운항 일정은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는 민사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이 경우의 법률관계를 간단히 살펴보자.

만약 선박이 용선되어 있었다면 선주와 용선자 사이에서 책임 소재에 관한 분쟁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정기용선 선박이라면 선박이 억류되어 있는 기간에 대한 용선중단(Off-hire)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선주의 입장에서는 용선자의 지시에 따라 고위험 지역(예컨대 중남미의 항구)으로 항해하였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용선자가 안전하지 않은 항구(unsafe port)를 지정한 잘못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용선자의 입장에서는 선주가 감항능력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거나 선장 및 선원들이 국제선박 및 항만시설 보안규칙(ISPS code) 및 IMO 가이드라인(IMO’s Revised guidelines for the prevention and suppression of the smuggling of drugs, psychotropic substances and precursor chemicals on ships engaged in international maritime traffic)에 따른 조치를 다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책임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한 용선계약 특별조항(예컨대 BIMCO U.S. Anti-Drug Abuse Act 1986 Clause for Time Charter Parties 2013)이 있기는 한데, 이 조항은 마약이 선박 내(onboard)에서 발견된 경우만을 다룬다(Gard P&I Club의 관련 Article 참조).

 
▲올해 1월 부산항에서 발견된 마약


한편, 선박에 운송 중인 화물이 있는 경우에는 선박 억류로 인해 선하증권에 따른 화물클레임도 발생할 수 있다. 헤이그 규칙 또는 헤이그-비스비 규칙이 적용된다면 제4조 제2항 (g)호의 “arrest or restraint of princes, rulers or people, or seizure under legal process”에 근거하여 운송인은 면책을 주장해 볼 여지도 있을 것이고, 대한민국 상법이 적용되는 선하증권이라면 상법 제796조 제5호(재판상의 압류, 검역상의 제한, 그 밖에 공권에 의한 제한)에 따른 면책을 주장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운송인이 선박의 억류를 야기한 마약 밀수에 관여하지 않았어야 하고, 감항능력 주의의무를 준수하였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미국 정부는 2022년 말 세계 최대 해운사인 A사를 상대로 7억달러 이상의 벌금을 부과하였고 2018년에 건조된 컨테이너선에 대한 몰수 소송도 진행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A사의 선박을 통해 운반되던 마약이 발각된 사례가 여러 건 있었다는 것이 이유이다.

기생충 수법과 같이 국제 마약 밀수 조직의 방법은 기상천외하여 선박 내부에 몰래 넣어두거나 선박 외부에 부착해 둔 마약을 선박 측이 사전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A사의 사례가 있는 이상 선주를 포함한 해운업계가 무작정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선주뿐만 아니라 용선자, 터미널 및 관련 행정당국 모두 선박을 이용한 마약 밀수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전담 인력이 부족한 와중에도 해상·항만 마약 밀반입을 감시, 단속해야 하는 해양경찰청과 관세청 공무원 모두에게 감사와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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