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06 09:05

“흑자기업이 하루아침에 적자전환” 해운업계 탄소세 공포 커진다

KMI 보고서 “정부 친환경 선박 지원 확대 긴요”


해운산업에 탄소세가 도입되면 매년 견실한 이익을 내왔던 중소 해운사가 하루아침에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김한나 전문연구원은 최근 펴낸 ‘IMO 시장 기반 조치 도입이 국내 해운기업에 미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탄소세가 도입되면 우리나라 해운기업들이 한 해 내는 관련 비용은 최대 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같이 밝혔다. 

국제해사기구(IMO)와 유럽연합 등 국제 사회는 해운산업 온실가스 규제의 하나로 탄소를 배출하는 선사에 비용을 부과하는 이른바 시장 기반 조치(MBM)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시장 기반 조치는 크게 탄소세와 탄소배출권거래제도(ETS)로 나뉜다. 탄소세는 IMO에서, ETS는 유럽연합(EU)에서 각각 적극적인 도입 의지를 표명하는 규제 정책이다.

IMO는 탄소부담금(Carbon Levy) 또는 국제해사연구기금(IMRF) 등의 형태로 탄소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특히 지난 7월3일부터 7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80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회의에서 2027년 5월1일부터 탄소세를 시행한다고 공식화했다.

다만 부과 금액은 아직까지 결정되지 않았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3대 선박 기국 중 하나인 마셜제도공화국과 인근에 위치한 솔로몬제도가 탄소 1t(tCO₂eq)당 100달러를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을 IMO에 전달했다. 또 세계 3대 해운국인 일본은 2030년까지 56달러를 물리고 이후부터 135달러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할 것을 제안했다.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세운 덴마크 해운사 머스크는 가장 높은 150달러 부과를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019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온 상승을 2℃ 이내로 제한하려면 75달러의 탄소세 부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미 다른 산업에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는 세계 27개국의 평균 가격은 이들 제안보다 많이 낮은 32.8달러 수준이다.

정기운항하는 컨선이 탄소세 부담 더 커

김 연구원은 이들 안을 토대로 우리나라 전체 해운기업이 내야 하는 탄소세 규모를 최소 1조700억원에서 최대 4조8900억원으로 추산했다. 최소 금액은 27개국 평균 가격, 최대 금액은 머스크의 제안을 각각 반영한 수치다.

아울러 탄소세 부과로 국적 해운사의 당기순이익은 2021년 기준 12조1668억원에서 7조2743억원으로 4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김 연구원은 증시에 상장된 해운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도 소개했다. 4개 상장 해운사의 탄소세 비용이 최대 1조46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A 해운사는 B사에 비해 선박 수는 절반 수준밖에 안 되지만 매주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컨테이너선 특성상 연료 소모량과 탄소 배출량은 50%가량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최대 선사인 A사가 한 해 동안 내야 하는 탄소세는 최소 1501억원에서 최대 6862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를 재무제표에 반영하면 2021년 현재 5조3372억원이던 이 회사 당기순이익은 최대 4조6510억원까지 줄어든다. 백분율로 따지면 13%의 감소율이다.

이익 규모가 코로나발 사상 초유의 해운 호황기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기에 해운 시황이 급감한 올해 이후부터는 탄소세 부과로 초래되는 이익 감소율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발 해운 호황의 혜택을 A사보다 적게 본 벌크선 전문 선사들의 탄소세 부담은 훨씬 더 막대한 것으로 집계됐다.

B 해운사는 최소 1003억원에서 최대 4585억원의 탄소세가 발생해 2021년 5493억원이던 순이익이 최대 908억원으로 급감할 것으로 관측됐다. C 선사도 최소 436억원에서 최대 1995억원의 탄소세를 물고 순이익은 3066억원에서 1070억원으로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B사가 83%, C사가 65%의 이익 감소를 맛본다는 분석이다.

D 선사는 수익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탓에 탄소세 도입으로 심하면 적자에 빠질  것으로 조사됐다. 김 연구원은 D사가 최소 253억원에서 최대 1158억원의 탄소세 부담을 안게 돼 2021년 561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이 최대 -598억원까지 줄어든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놨다.

ETS 비용부담, 탄소세의 5분의 1 수준

탄소배출권거래제는 탄소세 만큼의 피해는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 제도는 정부가 기업에 탄소 배출 상한선을 설정하는 환경 규제다. 기업은 정부에게 할당 받거나 구매한 한도 내에서만 탄소를 배출할 수 있다. 배출권을 다른 기업과 거래할 수도 있다. EU는 지난 2005년 이 제도를 도입한 뒤 2012년 항공으로 확대했고 2024년부터 해운산업에도 도입할 계획이다.

김 연구원은 ETS 방식의 환경 규제 하에서 한국 해운기업이 한 해 동안 부담하는 최대 비용은 총 1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탄소세의 4분의 1 수준이다.

아울러 상장 해운사 4곳에서 부담하는 비용 규모는 A사 1800억원, B사 1200억원, C사 530억원, D사 3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역시 탄소세에 비해 비용 부담이 최대 70% 이상 줄어들 거란 예상이다.

김 연구원은 “정부가 해운기업의 친환경 선박 건조 지원을 확대해 해운기업-조선기업-금융기관 상생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해운기업은 고품질의 친환경 선박을 저렴한 선가로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LNG 연료 추진선에 초기 등록세를 75% 삭감하고 톤세를 50% 인하하는 싱가포르를 예로 들어 우리나라도 기존의 선박등록특구와 톤세제도에 친환경 선박 특례를 적용하는 지원책 도입을 주문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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