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극심한 물류 적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 수출기업들이 육상운송에 경험이 풍부하거나 물품을 보관할 수 있는 현지 파트너를 찾아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코트라 최한나 키이우무역관은 최근 ‘우크라이나 물류시장 현황과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발표, 기업들의 원활한 물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상운송 재개됐지만 안심할 수 없어
우크라이나에서 곡물을 실은 선박이 최근 출항했지만 전쟁이 계속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올해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흑해 수출길이 봉쇄되면서 해상 물류는 완전히 막히게 됐다. 주요 수출품인 곡물과 철강 대부분이 해상운송으로 진행되고 무엇보다 곡물 수출길이 막혀 전 세계 식량 대전으로 번질 거란 우려가 컸다.
하지만 지난 7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유엔(UN), 튀르키예가 우크라이나 곡물의 흑해 수출을 재개하는 협정에 서명하면서 오데사항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항만 3곳이 수출을 재개했다.
지난달 우크라이나 인프라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곡물을 실은 첫 선박이 출항한 이래 총 490만t의 농산물이 수출됐다. 총 222척의 배가 우크라이나 항만에서 농산물을 싣고 아시아, 유럽 및 아프리카 국가로 보내졌다.
다만 최 무역관은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으로 아직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곡물 수출 협정 체결 후에도 러시아의 항만 폭격이 있었고 러시아 대통령은 9월 초 곡물 수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항공에 이어 해상운송마저 제한된 가운데 대체 수단으로 꼽히는 철도 또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기업들의 수출길이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최 무역관은 관세 제도, 부패, 경영 위기, 낙후된 기반 시설 등을 우크라이나 철도물류의 주요 과제로 꼽았다. 특히 우크라이나 철도운송 비용이 동일하지 않아 관세 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철도물류 관세가 왜건의 유형과 거리, 화물의 특성과 제품 등급에 따라 모두 달라 균등하게 부과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관세를 균등화하려는 우크라이나 철도국영회사의 시도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많은 차이가 난다고 최 무역관은 말했다.
그는 “유럽의 표준을 맞추기 위해 관세 등급을 파기하는 건 내년 우크라이나철도국영회사 정책 중 하나”라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큰 과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철도 인프라가 낙후돼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연결하는 물류가 원활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가장 큰 문제는 유럽과의 궤간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1970년까지 소련에 속한 국가에서는 단일선로 폭이 1524mm였지만 1970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전체 기반 시설은 1520mm 선로로 이전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등과 함께 광궤를 사용하고 있다. 반면 유럽의 대부분 국가는 1435mm 표준궤를 사용한다.
최 무역관은 “궤간 차이 문제로 우크라이나-유럽 간 환적을 하는 데 시간이 걸려 빠른 물류 처리가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철도의 느린 속도도 물류 경쟁력에 악재로 작용한다. 현재 우크라이나 철도의 평균 속도는 50~60km/h로, 폴란드 140~160km/h와 3배가 차이 난다. 수도와 대도시 간 이동 시간이 3시간, 중소도시 간 소요 시간이 5시간을 넘으면 안 된다는 전문가의 지적을 고려할 때 물류 인프라 현대화가 시급해 보인다.
결국 철도사업이 우크라이나철도국영회사로만 이뤄져 화물과 여객운송, 역 및 인프라 운영자 등을 독립 운영해 인프라 확충을 이뤄내야 한다는 게 최 연구원의 견해다. 더불어 그는 예상치 못한 전쟁이 시작되면서 국가 예산이 막대한 적자를 내고 있는 만큼 해외기금과 투자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육상운송, 우크라 전체물동량 71% 취급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육상운송이 그나마 물류 적체로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코트라에 따르면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체 물동량에서 도로운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71%로, 수출은 폴란드를 통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다만 EU 국가와의 국경을 횟수와 기간에 관계없이 이동할 수 있게 시행 중인 화물운송자유화 협정에도 물류 적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곡물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곡물을 심은 차량들로 화물차 육로 국경 대기줄이 50~60km에 달한다는 게 현지 물류업계의 설명이다.
최 무역관은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 화물차 통과 지연의 가장 큰 원인은 수의학 및 식물 위생 검역 진행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의학 및 식물 위생 검역 대상 제품은 축산 동물과 유제품, 육류, 채소, 곡물, 식물성 기름, 해산물, 주류 등 거의 모든 식품이 검역 대상이다. 최근 한 달 전부터 수의학 및 식물 위생 검역 진행 작업을 주말에 진행하지 않고 9월부터는 24시간 운영을 중단했다.
따라서 대기 줄이 길어지면서 운송사들이 화물차 1대의 가동 중지는 매일 최대 400유로의 손실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러 가지 제안을 하고 폴란드와 협의 중이다.
다만 최 무역관은 유럽과의 공동 운송 및 상품 무역의 절차가 간소화돼 도로 운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까지 통관을 위해 통과 신고서를 유럽에 제출하고 서비스 비용을 지급해야 했지만 최근 EU와 우크라이나의 ‘공동운송 및 상품무역 간소화’ 협약으로 신고서를 우크라이나 내에 제출할 수 있게 됐다. 검문소에서는 신고서에 있는 바코드를 스캔하여 빠른 행정 처리를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물류 적체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새로운 물류 활로를 개척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해상운송은 곡물 수출만 가능하고 하늘길은 언제 열릴지 알 수 없어 유럽 국가를 거칠 수 있는 육상운송을 통한 무역 거래를 고려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최 무역관은 “전쟁이 빨리 끝날 거란 예상과 달리 7개월째로 접어들어 언제 끝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며 “육상운송에 경험이 있는 바이어나 우크라이나에 물품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를 가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파트너를 찾는 것이 거래하는 데에 있어 훨씬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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