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를 표방하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사회 전반의 국정 운영과 방향성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해운산업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2016년 국적 대표선사였던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공해상에서 움직이는 국가의 영토인 우리나라 외항 해운력(Sea Power)은 세계 10위권 밖으로 추락했다가, 2018년 정부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에 힘입어 현재 7위권을 맴돌며 선복량도 대략 100만TEU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외형상 한진해운 사태 이전 수준인 5위권 이내로 진입하기에는 아직도 미흡하다. 국내 선사들이 수송 능력을 강화하는 데 못지않게 경쟁국 기업들도 지속적인 선복량 확충과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2030년 해운 리더국’의 비전 아래 선복량 150만TEU, 해운 매출액 70조원 달성을 목표로 해운 재건 보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가 설립한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역할은 매우 고무적이다. 공사가 설립된 2018년 이후 초대형선 20척 발주 등 신속하고 과감한 지원으로 선복량은 한진해운 사태 이전 수준에 육박하는 등 비약적으로 확대됐고 그에 따른 매출액도 약 40조원을 돌파했다.
해양진흥공사 역할 재조명 필요
그러나 이와 같은 정책 지원이 일부 특정 대규모 업체들에게만 집중되고 있어 정책 수혜의 범위에서 다소 벗어난 중소 국적선사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정책 방향을 크게 ‘조장’과 ‘규제’의 범주로 요약할 때,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공동행위 규제 같은 불리한 상황엔 모든 기업들이 예외가 되지 못하고 국가의 조장 정책에서는 배제된다면, 기업의 경영 의욕이 현저히 저하돼 자발적인 민간 자본의 유입이 차단되고 해당 산업의 장기적인 지속 발전 잠재력 확보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해운은 대표적인 글로벌 산업으로서 국가 간 자유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특정 국가의 정책금융 등 조장 정책에 대하여 여타 국가들의 주의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므로 정책집행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해양진흥공사는 최근 보유하고 있던 상당한 규모의 민간기업 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함으로써 주주로 참여했다. 해운은 국가 기간산업이므로 경영 적자로 위기에 처한 기업을 회생시키는 차원에서 기업 경영에 유리한 공적 자본 지원 방식은 이해된다. 다만 영업이익이 사상 최고치를 내는 등 유례없는 호조세를 타고 있는 상황에 미뤄 볼 때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며, 향후에도 이 기업에 공사의 지원이 집중될 거란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정부의 시장 개입에 따른 지나친 특정 기업 지원은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저해할 수 있고, 그 기업의 경쟁력을 약체화시켜 시장의 변동에 원활하게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을 조장할 수 있다. 국가의 정책은 일부 집단의 이익이나 여론에 호도돼선 안 되며 공정하고 편견이 제거된 토대 위에서 집행이 돼야만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정책적 실패에 따른 책임과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중소기업 경영안정 인프라 구축
다품종 고가의 개품 운송을 특징으로 하며 무한경쟁에 노출돼 있는 정기선 해운은 수준 높은 서비스의 공급이 수요를 견인하는 특성을 가진다. 즉 좋은 화주, 높은 운임의 화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우수한 선복량 확충이 기업 생존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특히 대형 글로벌 기업에 비해 동맹 가입의 주도권이 약한 중소 국적선사들은 어렵게 진입한 원양항로의 안정화를 유인할 수 있는 선박 공급의 유연성 확보가 독자적인 생존과 경쟁력 확보의 중요한 경영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항로에 필요한 적정 규모의 선복 능력에 이어 범세계적인 집화 네트워크, 그리고 원활한 공급망을 위한 전용터미널 등도 중요한 경쟁 선점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제반 인프라가 완비돼야만 우리나라 주요 수출입·물류업체들과 글로벌 화주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 제고에 차별적인 우위를 점유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한진해운이 관리하고 있던 싱가포르나 롱비치항 등의 해외 컨테이너 전용터미널은 외국계 기업에 넘어간 지 오래됐으나, 아직도 국적선사들이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며, 글로벌 기업들이 의욕적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는 범세계적 육·해·공 ICT(정보·통신·기술) 융합 첨단 디지털 물류 플랫폼 구축 등에 우리 기업들이 좀 더 효율적으로 접근해 시스템화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책이 요망되고 있다.
호황기 후 도래할 불황기 대비
현재 글로벌 시장에선 컨테이너 신조 발주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21년 한 해 전년대비 342%나 증가하며 전체 선박 발주량 4664만CGT 중 41%를 차지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코로나·오미크론 등 비정상적인 시장 변수가 사라지고 세계 경제가 선순환적인 발전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다가올 불황의 골이 깊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보다 많은 민간자본의 투자를 유인하고 자력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여타의 다수 국적 해운기업들에게 호혜적인 용선 혜택이나 경영 안정 지원책을 공정하게 제공함으로써, 산업의 대외 경쟁력을 확보하고 다가올 불황의 위기에서도 기업군의 시장 도태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정책 포트폴리오 방안 도입이 적극 추진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역사적으로 해운산업은 불황은 길고 호황은 짧은 사이클을 보인다. 1960년대 ‘자국화자국선 정책’에 따라 급격히 팽창한 해운 공급은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해 1980년 초 ‘해운산업합리화’란 구조조정을 야기했고, 이후 1997년 IMF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막대한 국가 공적자금 투입 사태를 만들었다.
국가의 해운력을 지배하는 정기선사들은 향후에도 개별적인 독자생존을 위한 경쟁력 강화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과점시장의 해운동맹을 인정해왔던 경쟁당국의 공동행위 규제가 국내외적으로 강화하고 있고, ICT와 융합한 글로벌 종합물류시스템을 기반으로 탄소중립 친환경·첨단 자동화 시설을 갖춘 초고가의 경제선들이 서비스 제고 전략과 맞물려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부도 이와 같은 패러다임에 초점을 둔 정책적 방향의 기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란 전제 하에 지난 정부와 차별화된 자유와 정의의 정책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역량을 결집하는 데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라고 해운산업 종사자와 국민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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