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7 09:10

코로나사태 차별받는 선원들 “왜 우리만 갇혀야 하나”

해운노조협의회, 코로나 단계별 선원조치 수립 촉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가장 고통받는 직군 중 하나가 바로 한국 해운과 수출입 물류를 책임지는 선원이다.

선원들은 코로나가 창궐한 뒤 배에서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선원 교대는 고사하고 뭍에 잠깐 내리거나 배에서 가족들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현실이다. 현재 거의 모든 선사들이 선원의 상륙과 가족 방선을 금지하고 있다.

선원노동계에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 코로나 확산이 부담스러운 정부와 해운기업은 눈치만 보고 있다.

선원 노조단체인 전국해운노동조합협의회는 지난달 24일 가진 간담회에서 코로나 사태로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선원 문제를 재점화했다. 해운노조는 이날 정부와 선사들이 선원들에게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항공·해상 차별하나…선원만 자가격리

김수헌 협의회 부의장(대한해운노조 위원장)은 일반인은 마스크만 끼면 자유롭게 일상생활하고 항공승무원은 자가격리 없이 항공기를 탑승함에도 유독 해상선원들은 배에 갇혀 있는 건 명백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코로나 전에 배를 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까지 승선했다가 최근 하선해 2주 자가격리를 마치고 휴가를 나온 한 선원은 (일반인들이) 마스크만 끼면 술 마실 거 다 마시고 회식할 거 다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걸 보고 선원 직업에 자괴감을 느꼈다고 하소연했다”고 전하며 “코로나 사태가 내년까지 갈지 내후년까지 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언제까지 선원들에게만 상륙과 방선을 못하게 막을 거냐”고 따져 물었다. 

윤인규 수석부의장(전국선원선박관리노조 위원장)은 1단계에도 선원들이 반드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상륙할 수 있도록 한 정책을 비판했다. 현재 선원들은 배에서 잠깐이라도 내리려면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빠르면 8시간에서 10시간가량 걸리다보니 길어야 하루 정도 국내 항만에 머물렀다가 해외로 출항하는 컨테이너선 선원들은 사실상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다.

윤 위원장은 “검사횟수를 하루 3번 정해놔 검사를 자유롭게 받을 수 없는 데다 검사 결과는 10시간 후에 나온다”며 “선종별로 파악해보면 (컨테이너선은) 하루 정도 부산항을 들르는데 회사에서 상륙을 허가하더라도 오후에 배가 들어오면 (검사) 결과가 다음날 아침에 나오는데 어떻게 배에서 내리느냐”고 반문했다. 

권기흥 이사(에이치라인해운노조 위원장)는 “선원은 반드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을 받아야 상륙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상륙을 못하게 막고 있다”며 “방역당국의 기준이 없다 보니 외항선사들은 한 곳 빼고 모두 상륙을 금지하고 있고 선주협회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문제지 협회 소관사항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윤기장 부의장(동진상선노조 위원장)은 “선원 검사는 반드시 수기로 적도록 하고 검역증도 직접 받아서 선박에 내도록 해 검사를 받아도 시간이 없어 상륙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요즘은 모바일로 모든 업무가 다 처리되는데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1단계엔 검사없이 상륙 가능해야

해운노조협의회는 육상과 마찬가지로 선원들도 사회적 거리두기 각 단계에 맞춰 활동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줄 것을 촉구했다. 1단계에선 선원도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체온 측정하고 손 소독을 잘하면 검사를 받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배 안에서 가족들을 만나거나 상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일반 사회에선 코로나 검사를 받지 않더라도 마스크만 끼면 외부 활동에 제한이 없는데 유독 선원들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게 선원노동계의 시각이다.
 
김수헌 위원장은 “선원은 승선할 때 필수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는 데다 배 안에선 서로 능동감시를 철저히 하고 최대한 비대면하면서 외부 접촉을 안하려고 노력한다”고 일반인들보다 철저한 선원의 코로나 방역상황을 전하며 2단계 같이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선원을 배 안에 격리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학희 정책개발위원(천경해운노조 위원장)은 오랜 승선 생활로 선원들의 불만이 임계치에 다다랐다고 전했다. 그는 “아무도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조금만 참으면 풀리겠지 하는 희망고문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지만 갑자기 2단계로 상향되면서 말도 못하고 죄인처럼 지내고 있다”며 정부에서 일반 방역지침에 맞춰 단계별 선원 대책을 만들어줄 것을 호소했다. 

윤기장 위원장은 “식당이나 가게는 확진자가 나오더라도 소독하고 2~3일 후에 다시 영업하지 않느냐”며 “선원에겐 아무것도 해보지도 않고 전면 금지해 차별받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선주협회에서 11월18~19일께 여객선 1순위, 잡화선 2순위로 단계별 선원 대응책을 결정하기로 했는데 상황이 악화되면서 갑자기 보류됐다”고 전했다. 

해운노조는 정부와 선사에 대한 불만도 털어놨다. 선사들이 책임지는 게 싫어서 선원들의 고통은 외면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김수헌 위원장은 “선주들은 지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란 이유로 선원들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있다”며  “선원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선원이 감염되면 배가 묶이고 화물이 묶여서 영업적인 피해가 날까봐 불안해 상륙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익 정책팀장(SK해운노조 본부장)은 코로나로 고통을 겪고 있는 선원 대책에 주체가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 이후 선원노조도 의견이 제각각이고 선사도 선원들에게 최소한의 노력은 기울여야 함에도 안 하고 있고 질병관리청과 해양수산부는 (선원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서 현장에 적용해야 함에도 방관만 하고 있다”며 “그 어떤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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