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마저 물류업에 진출할 경우 컨테이너는 8대 재벌그룹 물류기업이 지배하고 벌크는 포스코와 한전 가스공사 같은 국민기업 또는 공기업이 지배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입니다.”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는 지난 19일 서울 당주동 포시즌호텔에서 열린 합동기자회견에서 “포스코의 물류자회사 설립은 다른 대량화주인 한전과 가스공사 등의 물류자회사 설립으로 이어져 결국 국내 해운물류 생태계를 파괴하는 상황을 불러올 것”이라며 포스코의 물류업 진출 계획 철회를 주장했다.
포스코는 포항제철 시절이던 1990년 거양해운 설립 이후 30년 만에 해운물류시장 진출을 다시 꾀하고 있다. 지난 8일 이사회에서 본사와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터미널 등으로 분산돼 있는 물류업무를 통합 수행하는 물류자회사 설립을 의결했다.
신설법인 가칭 포스코GSP의 외형은 매출액 3조원, 연간물동량 1억6000만t에 이를 전망이다. 포스코는 설립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연내 출범 절차를 마무리 지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한해총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선주협회 김영무 부회장은 현안브리핑을 통해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은 정부의 3자물류 육성 정책에 전면 배치되는 것은 물론 국내 1위 세계 7위 기업인 한진해운 파산의 원인이 된 대기업 일감몰아주기의 병폐를 되풀이하는 상황을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기아차 삼성 LG 등의 8개 대기업 물류자회사는 2018년 현재 전체 매출액 39.7조원의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2000년 1.3조원에서 20년이 채 안 돼 30배에 가까운 외형 확장을 일궜다. 반면 국내 해운기업 전체 매출액은 2000년 16.8조원에서 2018년 29.5조원으로 2배 성장하는 데 그쳤다.
김 부회장은 2자물류기업과 해운기업의 성장 불균형을 일감몰아주기와 갑질거래에서 찾았다. 물류자회사는 지난 수십년간 모회사 물량을 기반으로 급성장을 일궜고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이 도입되자 이를 피하기 위해 3자물량을 저가로 대거 흡수하면서 우리나라 물류시장을 황폐화시켰다는 분석이다. 그 과정에서 선사들에게 저가 운임을 강요하는 등 심각한 갑질을 행사해 문제를 일으켰다.
물류자회사 일자리 기여도 저조
외형 급증에도 물류자회사의 일자리 창출 효과는 외려 해운기업이나 전문물류기업에 한참 뒤처진다. 현재 8대 물류자회사에서 일하는 전체 인력은 총 8100여명으로, 국내 해운기업 종사자 2만9000명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5000여개 중소물류주선업체의 경우 매출액은 2자물류기업의 10분의 1 수준인 3조6000억원에 불과하지만 종사자 수는 8배 많은 6만2000명에 달한다.
김 사무총장은 “현재 중소물류주선업계는 대기업 물류자회사의 막강한 시장 지배력으로 인해 고사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포스코 물류자회사도 일자리 창출이 아닌 중간에서 통행세만 받고 기존 물류 일자리를 빼앗는 등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까지 대량화주가 해운업에 진출해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점도 포스코의 물류업 진출을 반대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당장 포스코만 하더라도 30년 전 제철장학회 재원 마련을 목적으로 설립한 거양해운을 불과 5년 만에 한진해운에 매각하며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진출한 해운업에서 철수한 바 있다.
이 밖에 대우(동양해운) 동양시멘트(동양상선) 미원(미원해상) 현대양행(한라해운) 호남정유(호남탱커) 등 대량화주의 해운업 진출은 번번이 실패로 끝을 맺었다.
세계 3대 광산회사인 브라질 발레도 2000년대 후반 40만t(재화중량톤)급 초대형 벌크선 30여척을 중국조선소에 발주하며 화려하게 해운업 진출을 시도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자가물류가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판단하고 관련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당시 지은 배는 중국선사에 매각됐다.
이와 비교해 일본의 신일본제철과 중국의 바오철강 등은 자국 해운기업에 일감을 100% 몰아주는 등 선화주 상생의 귀감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 부회장은 “포스코의 매출액 대비 물류비 비중이 다른 대기업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할 만큼 전문 해운물류기업들은 상생협력을 위해 포스코에게 우수한 품질의 수송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해 왔다”며 “포스코가 물류자회사 설립을 강행할 경우 대한민국 물류는 재벌기업과 공기업 물류자회사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전문물류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말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컨테이너선분야에서 재벌 물류자회사와 해운업계의 상생을 추진한 결과 지난해 해운법과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국적선을 많이 이용하는 화주에게 법인세를 공제하는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다”며 “부정기선 분야에서도 대량화주와 상생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 물류자회사설립은 해운업 진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교수는 포스코의 물류자회사 설립은 해운업 진출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해운법 적용대상이 아닌 종합물류회사를 만들겠다는 게 포스코의 주장이지만 1991년 상법 개정으로 선박소유자만 운송인이 될 수 있던 것에서 누구나 운송인이 될 수 있게 바뀌었다”며 “국제물류주선업자가 다수의 운송 계약을 체결할 경우 운송 과정엔 반드시 해상운송이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 구간 운송을 책임지는 물류자회사는 계약운송인, 화물을 실제 실어 나르는 해운사는 실제운송인이 된다”고 규정했다.
김 교수는 “포스코 자회사가 설립돼 10%의 통행세를 받는 영업을 벌일 경우 국내 해운매출 30조원 중 10%인 3조원이 빠져 나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며 “자회사를 만들 게 아니라 기존 해운사를 종합물류회사로 만들어서 자신들의 물류를 맡기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화주와 해운사의 상생을 위해 도입이 필요한 제도 3가지를 제시했다. ▲해운법에 무선박운송인(NVOCC) 규정 신설 ▲화주기업 물량 30% 이상 몰아주기 금지 및 나머지 물량 공개입찰 의무화 ▲화주의 선가 10% 투자를 통한 선박 공동소유 등이다.
김 교수는 해운법에서 NVOCC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한편 대기업 물류자회사의 불공정거래를 차단해 종합물류란 틀 안에서 해운사와 2자물류회사가 동반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단체, ‘상위노조와 연대’ 경고
이날 참석한 한해총 소속 해운항만 단체장과 노조 위원장들은 한 목소리로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 백지화를 요구했다.
강무현 한해총 회장(해양재단 이사장)은 포스코 최정우 회장에게 “지난해 수립한 기업시민 경영이념을 모든 경영활동의 준거로 삼아 공정가치 창출이란 포스코의 기본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물류자회사 설립을 철회해 줄 것”을 당부했다.
최두영 항운노조 의장은 “포스코에서 물류 자회사 설립의 명분과 이유를 포장해서 주장하고 있지만 결국은 협력관계인 해운사나 운송 관계사의 고혈을 짜겠다는 것”이라며 “2000년 의약분업사태 당시 유행했던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란 말처럼 ‘철강 제조는 포스코에게 물류운송은 물류사에게’란 지극히 상식적인 물류 질서를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최 의장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한국노총와 연대해 이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 경고했다.
임현철 항만물류협회 부회장은 포스코의 물류업 진출을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비전문가의 전문가의 영역을 침해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의 횡포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물류업계가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병규 해운조합 이사장은 “연안해운의 철강제품 운송량은 전체 물동량의 40%를 차지하고 있고 회원사 6곳에서 전용선 21척을 투입해 포스코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포스코가 물류자회사를 통한 자기 계열화를 시도하는 경우 경기침체와 코로나19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연안해운사에게 설상가상의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6개 연안해운사가 포스코와 체결한 장기운송계약도 불투명한 상태가 되고 신조선이나 선박현대화 같은 투자도 어려워져 해운산업의 건전한 발전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포스코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염정호 해운중개업협회 회장은 “포스코의 화물은 우리나라 산업을 육성시키기 위한 국가적 자산이다. 포스코 화물을 이용해서 위기의 해운이 강해지고 외화획득이 가능해질 수 있다”며 “서로 소통하고 상의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자산을 통해 해운이 잘 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뭔지 고민해 나가자”고 말했다.
이태하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국장은 “포스코는 물류자회사 진출의 명분으로 운송과 물류비 절감, 기업 업무의 효율화를 말하고 있지만 비용 절감은 곧 차별과 착취, 노동환경 악화를 반드시 수반하기에 열악한 2만여 선원노동자들의 고용환경과 일터는 더욱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라며 “포스코는 국민의 염원으로 탄생하고 성장한 국민기업임을 절대 잊지 말고 기업 효율보다는 국민과 국가 경제 발전을 먼저 생각하길 바란다”고 충고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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