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3 09:07

푸드톡앤톡/세상이 내 맘 같지 않을 땐 화끈한 매운 요리를

비스트로 도마 우정호 셰프




‘그런 날이 있다!!!’ 
아침부터 일이 하나같이 꼬이고 점심시간 내 일터인 레스토랑에서 나와 궁합이 맞지 않는 손님들의 빈도가 늘어나고 저녁 쯤에 가서 ‘설마 이것까지…’ 하는 것마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재수 없는 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소주 한 잔(기분 나쁜 날에는 보통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과 매운 음식을 찾는다.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스트레스를 받은 날 캡사이신이 잔뜩 들어간 매운 음식을 먹으며 괴로워하면서도 동시에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좋아하는 아이러니한 장면들을 간혹 보게 된다.

매운 음식이 과연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줄까? 매운맛은 단맛, 신맛, 쓴맛, 짠맛과 달리 ‘통각’으로 인지되어 매운맛이 혀 표면에 달라붙어 통증을 일으키면 우리 몸은 진통 역할을 하는 엔도르핀을 방출한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뭐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 하루 종일 짜증으로 가득한 날, 눈물 나게 매운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것도 하나의 스트레스 해소 전략이 될 수도 있지만 그건 개인 취향일 뿐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술을 좋아해서인지 개인적으로 매운 음식을 사랑한다. 보통 여성분들이 남성분들보다 매운 음식을 훨씬 잘 먹는데 같이 먹어도 지지 않을 만큼… 나도 매운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것 같다. 누군가 매운 음식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질세라 더 매운 식당을 추천하곤 한다. 어느 인도 음식점에 가서 카레 매운맛이 10단계까지 있는데 가장 매운맛을 달라고 하면 주방장이 나와서 정말 괜찮으시겠냐고 물어보고 방독면을 쓰고 요리를 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매운맛에는 와사비 같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금방 사라지는 휘발성 매운맛과 고추와 같이 혀에 남아 계속 지속되는 비휘발성 매운맛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 보다 매운맛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고추’, 한국에서는 특히 청양고추가 가장 매운맛의 대명사다. 전세계의 고추의 종류는 매우 많고 다양한데, 그 중 가장 매운 고추는 무엇일까? 매운 맛의 강도 측정은 각각의 고추기름을 짜내고 거기에 설탕물을 조금씩 넣어 얼마나 희석을 해야 매운맛을 느끼지 못하는가를 재고 이것을 ‘Scoville heat unit’ (SHU)라고 한다. 간단하게 SHU 수치가 높을수록 맵다고 보면 되는데 참고로 한국의 청양고추는 1만2000SHU정도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추 1위는? 원래 일반인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알려진 건 인도가 원산지인 ‘Bhut Jolokia’로 청양고추의 70배 정도 매워 ‘고스트 페퍼’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품종개량종들에 밀려 현재는 5위 밖으로 밀려났고, 2016년까지 1위를 고수했던 ‘Carolina Reaper Pepper’ (청양고추의 약 130배)도 왕좌의 자리를 ‘Pepper X’ (청양고추의 300배)에 내놓았다.

그렇다면 대표적인 매운 요리, 우선 한국음식에서 제일 생각나는 건 ‘닭발’ 매운 음식이 먹고 싶을 때면 가장 먼저 나온다. 국물 닭발, 숯불 닭발, 무뼈 닭발 등 종류도 다양한데 매운맛을 중화시키도록 달걀찜이나 치즈라는 방패, 감칠맛 나는 김가루와 고소한 참기름을 뿌린 주먹밥과도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거기에 살얼음이 낀 소주까지. 침 고이도록 맛있는 매운 음식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낙지볶음’이나 ‘쭈꾸미볶음’이 떠오른다. 첨에는 물이 나와서 매운 줄 모르지만 어느샌가 국물이 졸아들고 맛있는 매운맛의 정점을 찍는다. 살짝 데친 콩나물과 시원한 콩나물국 그리고 향긋한 깻잎 그리고 참깨드레싱과 밸런스가 좋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남은 양념에 공기밥 하나는 당연히 볶아먹어야 완벽해진다. 비빔냉면은 식당마다 매운맛의 정도는 다르지만 매운맛이 뜨거울 때 훨씬 더 맵기 때문에 차가운 음식이 맵다는 건 정말 매운 거다.(입을 떼는 순간 더 맵기 때문에 쉴새 없이 넘겨야 한다)

필자가 학생 때 어학연수에서 만난 멕시코친구가 본인 나라 음식이 세계에서 가장 맵다고 자부심을 가지길래 비빔냉면으로 살짝 밟아준 적이 있다. 이 밖에 아시아 쪽에선 매운 음식을 찾아보기 쉬운데 인도식 매운 커리인 ‘빈달루’, 중국의 혀가 마비되는 듯한 ‘마라탕’, 인도네시아의 매운 어묵인 ‘오탁오탁’, 싱가포르의 ‘칠리크랩’ 등이 있다. 아프리카 역시 매운 맛을 즐겨 먹는 지역이다. 에티오피아의 ‘도로 왓’이라는 닭 스튜요리는 명절 음식으로 버터에 양파를 오랫동안 볶다가 닭, 베르베레(향신료), 삶은 달걀이 들어간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매운 향만 살짝 빼는 정도의 음식만 있고 생각보다 매운 걸 잘 못 먹는다.  

매운 고추의 다이어트 효과는 잘 알려져 있다. 고추의 매운맛이 몸의 교감신경을 활성화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여 지방을 분해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 매운맛은 혈액순환 촉진효과가 있으며, 연구결과 세균과 곰팡이뿐만 아니라 암세포의 사멸까지 유도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매운 음식을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각종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매운 음식 과다 섭취가 가져올 수 있는 대표적 폐해는 소화기관 자극이다. 이는 속쓰림이나 설사 등의 증상으로 나타나며, 소화기관 점막을 손상시켜 위염이나 위궤양을 일으킬 수 있다. 게다가 과도한 캡사이신 섭취는 암 발생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어 경각심을 일으킨다. 자체는 발암물질이 아니지만 과다 섭취 시 암을 막아주는 면역세포의 기능을 떨어뜨리니 도가 지나치게 매운 음식은 삼가도록 하자! 


< 물류와 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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