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파산 이후 위기에 빠진 한국해운의 위상 제고에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컨테이너 전문가가 있다.
한진해운에서 장비관리 업무를 맡았던 박스조인 전병진 대표이사는 40년간의 컨테이너 운영과 기술관리 노하우를 바탕으로 컨테이너 유지·보수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알리며 비용 절감과 운영 효율성 제고에 일조해 왔다.
한진해운에 몸담고 있던 2004년부터 열린 COA(Container Owners Association·컨테이너 소유자 협회) 창립 운영위원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한국 대표로 총회에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올해 10월엔 글로벌 컨테이너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COA 총회를 한진해운 파산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고 실추된 한국해운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각오다.
세계 7위 선사 파산으로 한국해운 신뢰도 추락
2017년 2월 한진해운 좌초 이후 글로벌기업들이 한국해운을 바라본 시선은 싸늘했다. 같은 해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COA 총회의 화두는 해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세계 7위 선사의 몰락이었다.
중국 코스코, 덴마크 머스크, 독일 하파크로이트, 프랑스 CMA CGM, 이스라엘 짐라인 등 자국선사의 위기극복을 위해 자금 지원에 나섰던 외국과는 달리 한국을 대표하는 선사는 정부의 홀대 속에 발자취를 감췄다. 한 때 세계 3위까지 도약하며 원양뱃길을 호령했던 한진해운의 파산 선고는 행사에 참석한 외국기업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당시 총회에 참석했던 전 대표는 한국해운에 대한 외국기업들의 평가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회고했다. “한진해운 파산은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언급될 정도로 큰 이슈였다. 손실이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등 협력사와 파트너기업들의 피해가 컸다.”
전 대표가 밝힌 더 큰 문제는 한진해운이 파산한 지 2년이 흘렀지만 선사, 컨테이너 리스·제조기업들 사이에 한국해운에 대한 불신 의혹 등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재작년 5월 상하이에 이어 가을 독일에서 열린 회의에서도 우리나라 해운시장을 바라보는 외국기업들의 시선은 여전했다. 컨테이너임대사들이 피해를 입은 적이 있어 임대도 안 해주는 것은 물론, 임차료도 높이고 보험과 금융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들이 발생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병진 대표, 한국해운 위상 제고 드라이브
이 행사에 참석한 이후 전 대표는 한국해운의 위상 제고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올해 5월 상하이에서 열린 COA 총회에서는 박스조인 전순용 대리가 한국 대표로 나서 우리나라 컨테이너 해운업의 현황을 소개했다.
▲박스조인 전순용 대리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
글로벌 해운물류기업들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전 대리는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핵심동력인 해양진흥공사 출범과 현대상선의 초대형선 발주, SM상선의 경영정상화 노력,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의 정기선 부문 통합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해운이 재도약하고 있다는 점을 기업들에게 알렸다.
전 대표는 한국해운 재도약을 위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COA 소속 회원사들을 초청해 올해 10월 우리나라에서 5년 만에 총회를 연다. 서울에서 개최되는 이번 행사는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행사다.
2008년 첫 개최 이후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열리는 행사에서는 COA 현황과 글로벌해운시장 동향, 국내외 기업들의 제품 및 서비스 소개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특히 해양수산부 해양진흥공사 선주협회 한국선급 등의 관계자를 초대해 해외기업들에게 한국해운의 경쟁력 제고 방안 등을 어필할 계획이다.
더불어 전 대표는 이번 총회에서 ‘한국컨테이너발전협의회(가칭)’라는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COA 회원들과 우리나라 기업들이 노하우를 공유하는 컨테이너 기술정보 교류의 장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어렵게 한자리에 모인 만큼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초석을 만들겠다는 게 전 대표의 설명이다.
“한국에서 COA를 개최해 우리나라 해운업이 후퇴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사명감이 생겼다.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은 해운인과 정보교류를 하고 한국해운의 경쟁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싶다.”
“컨테이너장비 전문가 확보 절실”
전 대표는 우리나라의 컨테이너 박스 전문가 양성에 대해서도 깊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짧은 근무기간에 따른 잦은 인사이동과 해외와 달리 운영과 유지·보수에 대한 구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아 국내 컨테이너 전문가가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진해운에서 일할 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선사들의 장비담당자들은 힘이 없어 우수인력이 많이 없다고 느껴진다. 우수인력이 와도 3년을 채 못 넘기고 영업팀으로 자리를 옮기더라. 모든 물류의 중심엔 컨테이너가 있다. 해운사 총 비용의 약 60%를 점유하는 운송비용, 보관비용, 유지·보수비용 등 컨테이너에서 발생되는 비용은 수없이 많다. 따라서 화물 유치를 위한 선사들의 영업도 중요하지만 컨테이너장비 인력관리를 등한시하는 환경이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장비전문가를 통한 가장 적절한 컨테이너 운용이 이뤄져야 한국해운 재도약 기틀을 확고히 다져나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아울러 전 대표는 컨테이너 가동률, 노후 장비 관리·매각, 공컨테이너 이송 방법 및 비용, 임차보유율 산정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가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상선이 초대형선을 인도받는 내년부터는 컨테이너박스 운용이 더욱 중요해질 거라 본다. 이에 대한 장비전문가 확보가 시급해 보인다.”
*COA는 선사와 임대사 등 컨테이너를 소유하고 운영 혹은 임대하는 회사(정회원)와 컨테이너 제작공장, 터미널, 운송사, 플랙시탱크 제작사 등 컨테이너산업과 관련된 회사나 개인(준회원) 그리고 BIC(Bureau Interational des Containers·컨테이너국제표준화단체) 등 컨테이너산업과 연관된 단체나 조직(그룹회원) 등으로 구성된 비영리단체다.
전 세계에 운영 중인 컨테이너 3800만TEU 중 90%인 3400여만대를 COA 회원사가 보유하고 있다. 69개국 170개 기업이 회원사로 있는 COA는 컨테이너 관련 산업의 표준화, 안전화, 보안, 기술혁신, 환경문제 등 전 세계 회원사간 전문지식 공유, 국제로비 활동, 회원사의 공동이익과 협력을 강화 목적으로 매년 전반기에 아시아, 하반기에 유럽에서 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전 대표는 BIC 한국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BIC는 컨테이너박스의 안전과 보안, 표준화, 효율성 향상을 위해 1933년에 설립된 비영리단체로 모든 컨테이너에 BIC 코드를 부여해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 120개국, 2500개 이상의 BIC 코드가 등록돼 있다.
우리나라 해운물류회사들도 총 56개의 BIC 코드를 등록해 사용하고 있다. BIC는 세계 주요 국가에서도 BIC 코드 운영을 위해 22명의 컨테이너 전문가들을 NRO(National Registration Organizations)로 선임해 55개국을 관리하고 있다. 전 대표는 2008년 1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BIC Korea NRO로 선임돼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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