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11 13:48

"3천억 때문에 빚어진 한진해운사태 사흘 후 4천억 풀어"

인천항만공사, 제4회 항만·물류법세미나 개최

 

한진해운 사태 이후 한국 해운업계의 지난 2년을 되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인천항만공사는 지난 7일 한진해운 사태를 다시 짚어보고, 향후 해운업의 발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2018 항만·물류법 세미나’를 개최했다. 행사에 참석한 해운물류기업 관계자 및 학계 전문가들은 기업과 정부의 사태 인식 부족이 결국 한국 대표 국적선사를 사라지게 했던 만큼 기업들의 자체적인 노력과 정부의 충분한 지원이 더욱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금융 논리 중심의 구조조정 제도 개선돼야

발표를 맡은 성결대학교 동아시아물류학부 한종길 교수는 “해운·물류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한진해운이 주식회사라는 이유로 대주주의 무한책임만 강조하다 결국 적기 대응에 실패했다”며 정부의 판단 오류를 지적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해사연구본부 황진회 본부장은 한 교수와 뜻을 같이 하면서 “한진해운 사태의 배경에는 정부부처의 구조적인 문제와 구조조정 제도의 문제도 상당했다”고 덧붙였다.

황 본부장에 따르면, 정부는 약 3000억원 규모의 부족 자금을 대주주가 공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진해운을 법정관리(회생절차)로 보내고 3일 후 중소기업청에서 포워더(국제물류주선업체)들을 상대로 4천억원의 지원금을 풀었다. 황 본부장은 “당시 그 정도 자금을 한진해운 회복에 투입했으면 2년 전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 구조조정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또 기업 구조조정 제도 자체가 도산 이후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고 금융기관의 채권 회수에만 급급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황 본부장은 “해외에는 기업의 도산 이전부터 구조조정 절차를 통해 지원해주는 여건이 마련돼 있다”며 “현재 한국 금융 당국의 구조조정 논리를 사업구조 개선 등 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이 담긴 쪽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교수


BBCHP·하역비 공익채권화 등 입법과제 해결 시급

해운업계 발전에 필요한 입법과제들도 발표됐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교수는 우리나라 선사들의 신뢰성 제고를 위해 나용선 선박에 대해서도 화주 등 채무자들이 가압류를 진행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선주들에게는 가압류 채권을 해사채권으로 한정하고, 선사 측에서 미리 공탁 절차를 밟으면 가압류를 유예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해 선화주 간 권리의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현재 해운업계에서 중요한 물적 수단 중 하나인 컨테이너 박스를 법률용어로 격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교수는 “선사들에게 선박의 가치가 100이라면 컨테이너는 60정도”라며 “상법에 법률용어로 추가하면 정부 지원 요청이 용이해지는 등 이점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채무자회생법 상 국적취득조건부나용선(BBCHP)을 채무자 재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BBCHP 특성상 선사들이 소유 목적으로 금융기관에 비용을 지불한 만큼 소유권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이는 지난 2016년 창원지방법원이 한진해운의 BBCHP 선박인 <한진샤먼>호를 가압류 결정을 내리면서 한차례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정부는 물류대란을 막기 위해 ‘스테이오더(압류금지명령)’를 신청해놓고 막상 국내에서는 가압류를 진행하는 모순을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 더불어 한진해운 사태로 불거진 마지막 항차시 일정기간동안 미지급 하역비를 공익채권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 회생절차 신청 20일 전에 채무자가 체결한 공급계약은 공익채권으로 보호받는다는 규정이 있다. 다만, 하역 작업은 서비스로 분류돼 대금 청구에 대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하역업체들도 회생절차 개시일의 일정기간 전에 발생한 서비스 공급에 대해 해당 하역비를 공익채권으로 돌려 국가 산업 전체의 물류 흐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토론에 참석한 패널들은 해운 재건을 위한 다양한 의견들을 내놨다. 한국선주협회 조봉기 상무는 “해운업이 성숙된 산업인 만큼 거시적 관점에서 4차산업혁명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결대학교 한 교수는 지난 4월 발표된 해운재건 5개년계획에서 해운과 조선의 발전전략을 비교했다. 그는 “조선업에는 포함됐지만 해운에는 빠진 중견기업 경쟁력 제고, 지역과의 상생, 일자리 창출 전략 등에도 대응방안이 필요하다”며 “현재 글로벌 선사들의 합병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정부는 몸집을 불리는 외국 대형 선사들과 공동운항이 가능할 수 있도록 국적 선사의 신뢰성 확보에 힘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진해운이 실패했던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기업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사들의 자구적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KMI 황 본부장은 “기업 수익성을 해상운임에 의존하지 않고 유통과 물류 등 사업분야의 다각화가 필요하며, 화주와의 상생을 위해 화주 측이 요구하는 문제들을 해결해주려는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박수현 기자 sh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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