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30 17:40

추억의 명화/ 다운 바이 러브(Down by Love)

서대남 칼럼니스트

“해선 안 될 사랑 이런 거, 그런 건 누가 정하는 거죠?”

“원수가 되어 헤어지진 말아요. 그럴 거까진 없잖아요”

그리고 “영혼을 완전히 채워주는 유일한 하나는 오직 사랑뿐(Only one thing can make a soul complete, and that thing is love)”이란 버전으로 해서 더욱 가슴에 오래 남는 영화 ‘다운 바이 러브’는 사랑의 우리에 갇혀버린 40대 교도소장과 첫사랑에 눈뜬 10대 여죄수가 격렬하게 벌이는 위험한 사랑의 과정을 여과없이 현장감 있게 펼쳐보여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보기 드문 화제작이다.

주로 극심한 폭력이나 살인장면 또는 정사장면 때문에 19금이란 표지판이 붙게 마련이듯 이 영화 역시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필자가 이 작품의 소개를 한동안 망설이다가  한두 장면 남녀 주역들의 나신과 성행위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원작이 갖는 작품성이 포르노성 에로티시즘에 크게 잠식당하지 않고 캐릭터의 다채로운 애정표현이 리얼리티를 더해 실감나게 영상화 됐단 게 필자의 판단으로 201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프랑스의 실제 파격적  러브스토리를 실화로 그린 이 영화를 독자와 함께 다시 보기로 한다. 

우선 ‘다운 바이 러브(Down by Love)’가 ‘사랑에 무너지다’란 뜻이고 프랑스어 원제목 ‘에페르 뒤망(eperdument)’이 “제 정신을 잃고 미친듯이”라면 우리식으로는 남인수의 옛 가요 “무너진 사랑탑” 정도가 아닐까가 필자의 생각이다. 죄수 ‘안나’역을 연기한 ‘아델 엑사르코풀로스(Adele Exarchopoulos)’는 앞서 제66회 칸 영화제에서 배우로서는 최초로, ‘압둘라티프 케시시(Abdellatif Kechiche)’ 감독이 만들어 두 여인의 강렬한 끌림과 사랑, 그리고 이별의 과정을 섬세하게 다룬 수작으로 크게 호평을 받은 ‘가장 따뜻한 색, 블루(Blue Is The Warmest Colour, 2013)’에서 이미 당시 세계적 스타였던 ‘레아 세이두(Lea Seydoux)’와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며 지구촌 영화계의 주목을 끈 바 있다.

따라서 작품과 함께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여 이목을 집중, 미불을 오가며 혜성과 같은 존재로 주목 받으며 은막계에 우뚝 선 화제 집중의 섹스어필 스타로 평가받고 있다. 또 제66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 주간 최고 영화상과 제39회 세자르 영화제 최고 작품상, 남우 주연상, 신인 감독상 등을 수상하며 천부적인 재능을 인정받은 프랑스의 국민 감독 겸 배우 ‘기욤 갈리엔(Guillaume Gallienne)’이 교도소장 ‘쟝’역을 맡아 팜므파탈 안나와의 위험한 로맨스와 진한 사랑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고 절제있게 연기하여 파격적인 실화를 험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찬사를 얻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엄마와 둘이 살던 사고뭉치 10대 여죄수 안나가 베르사유 교도소로 이감되어 4년차 복역하는 과정부터 시작된다. 음악이 흐르며 시적인 나레이션으로 “어느날 갈대숲에서 나의 생명수가 잠을 잤지. 마을에서 온 사내들이 그녀를 잡아데려갔네. 너의 우리를 잠궈, 오, 이중으로 잠가. 네 손가락 사이로 생명의 샘물이 달아나니 급류에 휩쓸려가는 돛단배처럼.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청년들은 떠내려가지 떠내려가. 내일에야 정박하리. 나의 생명의 샘물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기에”를 잔잔하게 읊어대는 가운데 그녀는 수갑을 찬 채 옮겨온 교도소에서 새로운 감방을 배정 받는다.

담배를 꼬나 물고 주방에서 여죄수끼리 왁자지껄 나누는 대화의 내용은 누구는 누구하고 잤고 누구 누구도 어떻고 저떻고 오로지 저질스런 음담 투성이다. 

이감되어 온지 얼마 안 된 어느날 늘 뭐엔가 불만이 가득한 듯 우수에 젖어 보이던 안나는 급기야 터무니 없이 시비를 거는 동료 수감자와 머리채를 휘어 잡고 땅바닥을 나뒹굴며 치고 받는 난투극을 벌이는 폭행 사건을 일으켜 요 주의 인물로 찍힌다. 자기 하나만을 믿고 사는 어머니가 있는 집 근처로 이감되어 오자 마자 대형 사고를 친 안나는 4개월 후면 재판을 받게 돼 구형량을 줄이려면 수감 생활을 모범적으로 해야 한다는 경고까지 겹친다.

그러던 중 주무 부처 여장관의 교도소 방문 계획에 맞춰 귀빈 맞이 행사준비가 시작된다. 수감자들은 패션쇼를 벌이게 된다.  재소자들이 출연하는 쇼에서 흰색깔의 타이트 의상을 입고 볼륨있는 육감적 몸매를 과시하며 런웨이를 걷는 안나가 단연 돋보여 눈길을 끌고 쟝 소장 역시 섹시한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안나의 매력에 현혹, 첫눈에 강한 끌림을 거역할 수 없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녀를 곁에 두기로 작정하고 컴퓨터 재고 관리 업무를 맡겨 혼자 사무실을 쓰도록 배려한다.

한편 다정하게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쟝을 안나도 여러 면에서 싫어할 까닭이 없어 특별한 감정을 느끼며 좋아하게 된다. 이어 약속이나 한듯 둘은 서로를 탐하며 걷잡을수 없이 은밀한 관계로 발전한다.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게 사랑이듯 언젠가 닥쳐올 비극적 종말을 예견 했음직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들은 노골적인 육체적 탐닉에 몰두하며 거친 숨소리로 사랑의 활화산에 뛰어들게 된다. 꽃다운 시기를 수년째 교도소에 갇혀 보내고 있는 안나는 감형처분을 기다리면서 희망을 좇듯 쟝에게 빠져들고 쟝도 그녀의 육체를 파고들며 강력한 반응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1960년대 필자에게도 매우 인상 깊었던 영화, 줄스 다신(Jules Dassin) 감독이 ‘멜리나 메르쿠리(Melina Mercouri)’와 ‘안소니 파킨스(Anthony Perkins)’를 주연으로 캐스팅하여 ‘죽어도 좋아(Phedra/Fedra)’란 이름으로 영화화 되기도 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금기시 된 불륜의 사랑 ‘페드라’에 대해 재소자 대상 비평수업시간에 이를 배워 알게된 안나는 자신도 그길을 답습하고 있다는 걸 예견이라도 하는 듯 하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안나를 비롯한 여성 재소자들은 문학 비평 교사와의 학습시 대사를 빌어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걸 스스로 결정하는가?”, “해서는 안 되는 사랑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지만 계속 할지 여부는 결정할 수 있으며 해서는 안되는 사랑을 누가 결정하는지는 몰라도 결국은 하게 되기 때문에 상관없다”며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될 금기된 불륜의 사랑도 결국은 하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해선 안될 사랑에 깊이 빠져 들고 사랑이 깊어 갈수록 이들을 의심하는 눈들이 늘어간다. 결국 안나가 또 다른 교도소로 이감될 상황에 이르지만 이들의 사랑은 더욱 불붙고 사태는 더욱 위태로워 진다. 급기야 다른 교도소에 근무중인 쟝의 아내 ‘엘리제(스테파니 크레오/Stephanie Cleau)’도 눈치를 채고 자기가 맡은 수업시간에 나체 모델로 나선 안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강한 질투를 느낀 나머지 완전 나체로 남편의 환심을 사려는 장면은 여자가 갖는 질투나 경쟁심의 극치를 보여 처연하기까지 하다.

쟝과 안나는 서로를 포기하려 맘 먹지만 생각뿐이다. 파멸이 손짓하는 나락으로 치닫고 있음을 알지만 둘은 결코 멈추지 못한다. 사무실 벽면에 쟝과 다정히 살고 싶은 심경을 벽화로 그리기도 하며 남의 가정을 훔치고 싶진 않고 “그냥 가정을 갖고 싶다”고 죄책감을 고백한다. 쟝 아내와의 통화에서도 대담하게 쟝과의 사랑을 숨기지 않고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천명한다. 비록 누구도 축복해 주지 않는 사랑이지만 천국에서 각자 행복하기 보다 지옥에서 함께 불행하기를 바라는 사랑도 있다는 것을 호소하고픈 심정이라고나 할까?

자자한 소문 끝에 급기야 쟝은 역내 고발을 통한 자체 감사에서 기소되고 안나는 다른 교도소로 또 이감된다. 법정에 서기 전 쟝과 안나는 그간 남의 눈을 피해 교도소 안에서 몰래 불편하게 나누던 사랑을 모처럼 고급 호텔에서 재회, 후회없는 마지막 열정을 유감없이 불태운다. 하지만 안나는 둘의 사랑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안다. 출소하면 내가 기다리고 있을텐데 행복하지 않는냐고 묻는 쟝에게 “난 지금 교도소에서 죄값을 치르고 있어요. 새로운 삶을 위해서 안에서 보다 나가서 더 죄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담담히 말한다.

다음날 다시 찾아온 쟝에게 매몰차게 거절하며 모든 걸 포기했다는 쟝에겐 임신 사실을 알리지도 않은채 안나는 전부터 안다는 젊은 남자와 산부인과를 찾고 쟝은 집으로 돌아간다. 일년 후, 그간 안나와의 불륜을 단순히 그녀가 획책한 농락에 속은 탓이라고 거짓 진술을 하게 되면 구속은 면하고 풀려날 수 있을 것이란 변호사의 수차례 조언에 괴로워 하며 안나와 대질신문을 하는 법정에 나란히 함께 서는 운명에 직면한다. 안나가 입장하자 시선을 떼지 못하는 쟝. 안나 역시 웃어준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의 후처, 페드라가 된 안나는 전처 아들 히폴리토스, 쟝을 사랑한 금기, 두 사람은 영혼의 흔들림을 제어하지 못한 죄값을 치르기 위해 합법적 단죄의 법정에서 어떤 심판이 나올지 초조히 기다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서로를 힐끔 미소로 쳐다보며 교환하는 시선은 비록 유죄를 전제로 한 심판대이긴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아직도 사랑하고 있고, 계속 사랑하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한 것으로 느껴졌다면 이들의 불륜을 옹호하는 입장이라고 힐난받을 일일지는 모르지만 거역하고 싶진 않았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싶다. ‘피에르 고도(Pierre Godeau)’감독 메가폰에 두 주연, 쟝 교도소장 역과 위험한 사랑을 나누는 죄수 안나역은 실존 인물을 수위 높은 베드신 등으로 파격적인 연기를 해야 했기에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워크샵을 거치는 등 부단한 노력 끝에 성공작을 만들었단 평가다. 비록 사랑이 수명을 다해 굿바이 할 때도 “원수가 되어 헤어지진 말아요. 그럴 거까진 없잖아요”란 말은 필자에겐 오래 기억하고픈 여운으로 남는다. 

< 물류와 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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