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6 09:42

“선사통합 성공조건은 합당한 인센티브 제공”

한국기업평가, 초대형선 투자엔 신중해야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의 통합 발표로 촉발된 국적선사 통합이 성공하기 위해선 적극적인 인센티브 전략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기업평가는 해운산업 조사보고서에서 “소유의식(오너십)이 강한 국내선사 특성상 기업 통합이란 큰 환경변화를 수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한국해운연합(KSP) 결성과 장금상선·흥아해운의 컨테이너선 부문 통합 발표 이후 정부는 다른 선사들의 통합법인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로 헤쳐 모인 뒤 경쟁력을 끌어올린 일본 3대선사의 사례가 국적선사 통합법인 설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보고서는 일본과 달리 국적선사 통합의 길은 평탄치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선사들의 사업구조가 컨테이너 중심으로 단순하면서도 선사별로 집중하는 노선이 다르고 사업규모와 실적이 달라 이해타산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근해 중견선사 중 특정 노선의 강자로 자리매김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실적을 보이고 있는 고려해운(한일노선)이나 장금상선(한중노선) 등의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통합이 성과를 내기 위해선 참여하는 선사와 통합법인에 자금지원과 금리인하 등의 인센티브가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통합법인의 경우 단기자금 지원보다 지분 참여나 전환사채 인수 등 자본성을 띄는 장기자금의 투입이 신인도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해운의 관점에서 볼 때 통합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개별선사의 입장에선 통합에 따른 희생을 만회할 인센티브가 크지 않다는 게 신용평가기관의 냉정한 평가다.

현대상선, 초대형선 20척 건조할 조선소 물색 중

초대형선 신조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제시됐다. 정부와 현대상선은 2만TEU급 컨테이너선 12척과 1만4000TEU급 선박 8척을 발주하기 위해 국내 조선소를 물색하고 있다. 총 35만TEU에 달하는 신조 규모는 현대상선이 갖고 있는 사선대보다 3배 이상 많다.

현대상선은 한국해양진흥공사 출범과 동시에 신조선을 발주해 2M과 체결한 전략적 협력이 마치는 2020년 신조선을 인도받는다는 계획이다.

보고서는 원가경쟁력 제고 측면에서 초대형선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대규모 신조발주는 화물 확보를 위한 운임 경쟁을 야기해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외국선사들이 인수합병(M&A)으로 선대와 집화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전략을 펴는 이유다.

치킨게임 재연 가능성은 대규모 초대형선 투자의 가장 큰 리스크다. 공격적인 신조선 투자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전략은 현재의 운임수준이 유지될 때 최적의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상선을 포함한 경쟁사의 대형 투자에 대응해 글로벌선사들이 전략 변경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문제다. 세계 1위 선사인 머스크는 언제든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는 현금을 쌓아 놓고 있다.

발주장부에 올라 있는 초대형선이 2018~2020년 사이에 대량 인도돼 유럽 미주 등의 기간항로에 배치될 경우 운임과 수익성을 동시에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황산화물 환경규제가 2020년 이후 초대형 컨테이너선 시장 수급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거란 시각에 대해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령 분포 상 폐선은 노후된 중소형선을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 초대형선단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란 진단이다.

다만 해양진흥공사를 통한 선박 확충 전략은 긍정적으로 봤다. 후순위 금융지원과 금리 인하, 선순위 보증 등을 통한 선박 신조 지원은 친환경 선박 대체 효과가 뚜렷하다는 평가다. 정부에서 선사의 중고선을 사들여 유동성을 공급하는 세일앤드리스백(S&LB) 프로그램은 국적선대의 해외 유출을 방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아울러 ‘코리아디스카운트’ 때문에 고용선료로 배를 빌리고 있는 국내 선사들의 비용부담을 경감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사가 용선료 지급보증(계약이행보증)을 제공하거나 선사들이 용선(Charter in)한 선박을 재용선(Charter out)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공사에 흡수통합되는 한국선박해양의 선박은행(Tonnage Bank)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이 같은 지원책이 실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해외화주 개발도 지원 필요

화물확보 정책과 관련해선 국내 화주뿐 아니라 해외 화주 개발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신남방정책과 해운 재건 계획을 연계해 동남아 시장의 새로운 화주를 개발하고 네트워크를 확대해야 한다는 견해다.

지난달 말 발표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은 선사·화주·조선 상생펀드 등 유관산업 간 상생 체계 구축을 목표로 제시했다. 컨테이너 장기운송계약 모델 개발, 전략화물의 자국선 이용률 제고 등 정부의 화주 유치 지원방안은 선사들의 집화력 강화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보고서는 과거 정부의 해운산업 구조조정은 ‘실패’로 규정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통한 해운업 지원이 결과적으로 두 원양선사의 부활로 이어지지 못한 까닭이다.

2013년부터 3년간 진행된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으로 두 선사는 당장의 유동성 위기를 모면하는 덴 성공했지만 전용선사업과 항만운영권 등 핵심 영업자산을 매각하는 자구계획을 강요당하면서 심각한 사업경쟁력 훼손을 감수해야 했다.

한기평 김종훈 선임연구원은 “정부와 선사는 시장상황을 더욱 냉정히 평가하고 보수적으로 전망하는 한편 시장리더들의 전략을 면밀히 예측해 정책과 대응방안을 구상해야 한다”며 “자욱한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는 지름길보다 조금 더 멀고 험해 보이더라도 실각의 위험이 적은 길을 가야만 한다”고 조언했다.
 

<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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