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3 14:04

강화되는 美 보호무역에 골병드는 물류업계

세탁기 이어 철강까지 세이프가드로 지목
美 관세폭탄 예고에 밀어내기 물량 급증


미국 트럼프행정부가 한국산 주요 수출품목에 통상압박을 가하면서 미주지역 화물을 취급하는 국제물류주선(포워딩)업계가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우리나라 주요 수출품인 세탁기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본격화한 데 이어 철강제품까지 세이프가드를 취할 것임을 시사하면서 향후 물동량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여기에 중국 설(춘절) 명절 연휴가 본격화되면서 미주항로를 기항하는 선사들은 기존에 편성된 배편 일부를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임시결항(블랭크세일링)에 나서면서 선적예약에 비상이 걸렸다. 포워딩업계는 대미 통상환경 악화에 따른 우려와 함께 춘절 연휴로 일시적인 선복 난까지 겹치면서 화물수송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영업환경이 악화되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1월에 몰린 세탁기 수출 ‘앞날 불투명’

미국 트럼프정부는 최근 자국 철강·알루미늄 산업 보호를 위해 ‘안보’를 명분으로 ‘관세폭탄(수입량 할당)’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6일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철강수입이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과도한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이 미국 관련 산업의 쇠퇴와 경제 약화로 이어져 국가안보를 위협할 우려가 있다며 철강산업 보호론을 주장했다.

상무부는 모든 철강제품에 24%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철강제조국의 대미 철강 수출량을 전년 대비 63%로 제한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특히 한국 브라질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러시아 베트남 등 12개 국가는 53%에 달하는 관세폭탄을 맞게 됐다. 주요 10대 철강제품 수출국이자 미국의 우방국인 캐나다 일본 독일 대만 등은 이번 관세부과 지정국가에서 제외됐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장관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몇 년간 생산능력 증가율과 수입품 종류, 환적여부 등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으며 가장 중요한건 대미 수출증가율”이라고 말했다. 철강 수입 규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무부의 안건을 결정한 15일 뒤 즉각 시행된다. 철강업계는 관세보복을 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수출물량을 대거 늘릴 거로 전망된다.

국내 물류업계는 미국의 철강제품 수입 규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우려하는 모습이었지만 향후 전망은 제각각이었다. 최근 미국 상무부가 53%의 수입관세를 매기는 게 수출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키는 건 맞지만 급작스런 물동량 감소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의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부터 철강제품은 미국이 보호무역 자세를 취한 탓에 국내 주요 철강기업들이 관세를 8~16%대를 부담했다. 타국 경쟁업체는 23%대다보니 한국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수출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라며 “이번에 추가로 강력한 보복관세가 더해지면서 국내 기업의 철강 수출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게 됐다”고 전해 철강제품의 통상마찰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시사했다.

덧붙여 “관세부담이 현실화되기 전에 화물을 대거 수출하려는 일각의 얘기도 나오지만 지금도 국내 생산량이 최대치인데다, 미국에서 물량을 보관할 창고도 부족해 물량을 밀어내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반대로 보복관세 부담이 현실화되기 전까지 화물을 대거 수송하려는 화주들의 움직임이 포착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관세 적용유무가 도착지 항구에 선박이 입항하는 날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최근 보복관세를 적용하기 전에 철강제품을 대거 수출하려는 실화주들의 문의가 많아졌다. 4월 전후로 보복관세 적용이 예측돼 선복을 지금부터 3월 초까지 사전에 확보해야 하는데 선사들은 춘절 연휴로 일부 선박을 결항할 예정이라 애로사항이 많다”고 전했다.

 


세이프가드 적용을 예고했던 세탁기는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무역빅데이터 제공회사인 임포트지니어스에 따르면 지난달 총량기준 미국이 수입한 세탁기 물동량은 3만2200t(대당 100kg 기준 약 32만2000대)으로 전년 동월 2만4000t(약 24만대) 대비 약 33.3% 급증했다.

특히 국내 가전업계가 수출한 대미 세탁기 물동량은 2만8000t(약 28만대)을 기록 지난해 1월 1만3000t(약 13만대) 대비 약 107.3% 폭증했다. 미국 세탁기 수입물량의 86%에 육박한다. 반대로 외국계 기업이 수출한 대미 세탁기 물동량은 4588t(약 4만6000대)에 그쳐 전년 1월 1만1000t(약 11만대) 대비 57.6% 크게 뒷걸음쳤다.

한국산 세탁기의 일시적인 시장점유율 독식은 지난해 12월부터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이 수입한 12월 세탁기 물동량은 5만6000t(약 56만대)으로 국내 가전업계가 수출한 물동량은 4만7000t(약 47만대)을 기록 84.2%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전월 68.5%의 점유율과 비교하면 15.7%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세이프가드의 하나인 저율관세할당(TRQ)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내 가전업계의 고육지책으로 해석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USTR에 따르면 세탁기는 완제품과 부품이 각각 쿼터량 120만대 5만개를 초과하면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저율관세할당(TRQ)이 적용된다. TRQ는 정부가 허용한 일정 물량에만 저율 관세를 부과하고 기준을 초과한 물량은 높은 관세를 매기는 제도로 지난 7일 공식 발효됐다.

임포트지니어스 조지원 아시아 사업총괄 이사는 “지난달 한국산 세탁기 물량이 약 28만대 수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미국 측이 연간 쿼터물동량을 120만대로 정한 만큼 향후 세탁기 수출물동량이 쿼터에 다다를 때 물량이 어떻게 변할지도 관전포인트다”라고 분석했다.

대규모 임시결항에 때 아닌 ‘선복난’

대미 통상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해운시장은 중국 춘절로 인한 물량 공백으로 유휴선복이 발생하면서 결항이 잦아지고 있다. 해운물류업계에 따르면 월말부터 다음달 7일까지 미주항로를 기항하는 주요 선사들의 선박이 휴항에 나선다. 운임인하를 피하기 위한 선사들의 방책이지만 물류업계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불가피하게 선복난이 발생하면서 통상압력을 우려하는 국내 실화주들의 물량을 적기 수송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춘절 이후 2~3월은 전통적인 비수기다. 5월 운임계약(SC)을 앞두고 4월부터 수출물량이 회복세를 보일 거로 전망되지만 통상환경이 크게 악화되고 있어 시황전망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물류업계는 우리 정부가 수출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합리적인 외교통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도 함께 내비쳤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최근 우리 정부가 미국에 강력하게 맞대응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는데 발표안이 현실화된다면 대미 수출물동량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 최대 소비국가인 미국에서 한국산 화물의 수입을 규제하면 미주지역을 주력하는 물류업계는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며 우려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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