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6 16:09

기획/ 헤비테일계약 수두룩···해양플랜트 ‘잠재위험 여전’

삼성重·대우조선 수주잔량 중 42%가 헤비테일
해양플랜트 전망 밝지만 발주량은 ‘글쎄’

‘조선해양의 날’ 행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이달 초 결국 취소됐다. 시장 불황은 매년 열리던 조선업계 최대 잔치의 개최 의미를 상실케 했다. 동시에 조선업계 대표 단체인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의 상근 부회장직도 사라졌다. STX조선해양 법정관리와 신아SB 파산 등으로 회원사가 8개로 줄어든 상황에서 한 푼이라도 비용을 줄여보자는 차원에서 구조조정의 칼을 뽑아 들었다.

연말에 조선업계는 또다른 취소 통보를 받았다. 바로 ‘미래 먹거리’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해양플랜트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으로 대표되는 국내 대형 조선 3사는 어느 하나 가릴 것 없이 해외 바이어의 해양플랜트 인도 연기와 취소 요청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인도 안된 해양플랜트, 아직도 많다

해양플랜트는 우리나라 조선사들의 부족한 곳간을 든든히 채워줄 먹거리로 주목받았다. 몇 년 전만해도 대부분 조선 기관들은 ‘해양플랜트’라는 말만 들어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상선에 비해 고부가가치라는 점에서 향후 몇 십년간 우리나라 미래를 책임질 핵심 아이템으로 꼽혔다.

에너지조사기관 더글라스웨스트우드 역시 2010년 1452억달러(한화 약 169조원)였던 해양플랜트 시장 규모가 2015년까지 연평균 10% 이상 성장해 2303억달러(약 268조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2030년에는 5039억달러(약 588조원)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전망은 ‘유가하락’이라는 변수에 보기 좋게 꺾여버리고 말았다. 유가가 곤두박질치자 오일 메이저들은 해양플랜트 발주 중단은 물론 인도를 잇따라 연기했다. 운영해봤자 수익이 나지 않은 탓에 선주들은 인도를 꺼렸다. 조선사들은 고객의 일방적인 발주 지연과 인도 취소 등으로 조단위의 적자 성적표를 받아들어야만 했다.

새해를 앞두고도 해외 발주자들의 인도 지연은 계속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달 초 미국 선주가 발주한 드릴선 2척에 대한 납기일을 연기했다. 인도를 거부한 선주는 2018년 6월30일이었던 계약완료일을 2년 연장한 2020년 6월30일로 정했다. 현대중공업 역시 지난 14일 미국 셰브론으로부터 FPSO(부유식 생산저장설비) 1기에 대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밖에 삼성중공업도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FLNG(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 인도 시점을 2018년 1월에서 2020년 7월로 변경했다. 인도 지연 외에도 삼성중공업은 이달 들어 유럽 선주로부터 수주한 FLNG 1기 건조계약이 해지됐다.

아직도 조선사들이 인도하지 못한 해양플랜트는 상당하다. 더 큰 문제는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감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헤비테일은 선박을 선주에게 인도하는 시점에 발주대금의 대부분을 받는 방식으로 공정률에 따라 돈이 입금되는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에 비해 위험이 크다. 중간에 발주를 철회하는 선주가 많을수록 헤비테일 방식으로 거래한 조선사들의 자금 경색이 확대될 수 밖에 없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조선사들이 헤비테일 거래를 통해 진행 중인 수주잔량은 총 19기에 달한다. 현대중공업은 헤비테일 방식으로 수주한 물량을 모두 선주 측에 인도했다. 프로그레시브 방식 해양플랜트 12기에 대한 건조는 진행되고 있다. 타 조선사에 비해 잠재적 위험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선주 측에 인도하지 않은 해양플랜트는 각각 10기 9기에 달한다. 두 조선사의 물량은 모두 헤비테일 방식으로 프로그레시브보다 많은 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2020년이나 그 이후로 인도일이 미뤄진다는 건 조선사들의 잠재손실이 향후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대형조선사들의 수주잔고가 지난해에 비해 줄었다는 점이다. 해양플랜트 인도와 취소가 맞물리며 조선사들은 본인들이 떠안은 ‘시한폭탄’을 줄일 수 있었다. 지난해 7월 말 기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해양플랜트 수주잔고는 각각 26기 24기 23기였다. 1년 새 현대중공업은 절반가량, 삼성은 5기, 대우는 10여기가 수주잔고 리스트에서 빠졌다.

조선업계는 발주처의 해양플랜트 인도시기 조정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유가의 등락에 따라 인도시기는 물론 발주까지 이어질 수 있다. 유가가 당장에라도 상승하면 공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인도가 이뤄지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수주잔고로 남아 영영 쌓일 수도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해양플랜트는 아직도 독이 든 성배와 같다. 언제라도 다시 터질 위험에 조선사들이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망 밝지만 발주는 언제쯤…

잠재 위험이 큰 해양플랜트지만 발주 전망은 밝다. 2017년 FPSO 시장 활성화를 시작으로 발주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영국 클락슨은 전 세계 해양플랜트 발주가 2017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2005~2015년 평균 발주량인 664척을 밑돌지만 해양플랜트 시장이 나아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해양플랜트지원선박(OSV) 해양예인지원선(AHTS)을 포함한 2018년 발주량은 191척에서 2020년 506척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FPSO는 향후 7년간 연평균 약 12기(신조·개조 포함), 드릴선은 약 4기의 발주가 기대된다.

발주금액도 덩달아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클락슨은 2017년 108억달러에서 2022년에는 453억달러까지 발주금액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FPSO는 7년간 86억달러를, 드릴선은 18억달러의 발주를 기대했다.

유가 감산도 향후 발주전망을 더욱 밝게 하는 부분이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멕시코 등 비회원국은 산유량을 55만8천 배럴을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감산 결정에 따라 원유업계는 유가가 배럴당 약 60달러 안팎으로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회의적인 시각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미국이 셰일가스 개발을 본격화할 경우 유가 상승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셰일가스 생산이 진행되면 결국 유가는 배럴당 50달러선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유가가 하락 반전하면 선주들의 마음이 흔들릴 공산도 크다. 조선사들의 희망 역시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클락슨의 전망 오차가 크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며 “해양플랜트 전망이 꼭 밝은 것만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해양플랜트 발주가 가시화된다 하더라도 한정된 지역에서만 수요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적도기니, 이란 등의 틈새지역에서 LNG 생산에 집중한 발주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 이창희 교수는 “FLNG LNG-FSRU 등 시추보다는 생산에 초점을 맞춘 수요가 있겠지만 이 지역들은 슈퍼 틈새시장(super nich market)이라고 불릴 만큼 발주 가능성이 높지 않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먹거리 OSV 건조, 상반된 온도차

OSV(해양작업지원선) 건조에 대한 국내 조선업계의 목소리도 엇갈리고 있다. OSV는 AHTS(해양예인지원선), PSV(해양작업지원선), MPSV(다목적해양작업지원선), CSV(건설지원선) 등 선종이 다양하며 전 세계 선대 규모 역시 매년 커지고 있다. 해양, 석유, 가스개발에 투입되는 OSV는 선종에 따라 공급지원, 심해저 작업·건설, 편의시설, 탄성파 탐사 지원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클락슨은 OSV 발주 규모가 2017년 55척에서 2022년에는 342척까지 불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발주 척수만 놓고 보면 시추·생산장비보다 많다. 금액으로 따지면 2022년 75억7천만달러 가량으로 같은 기간 시추·생산장비인 330억달러와 비교하면 적은 편이다. 발주량만 놓고 본다면 전망은 밝은 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에서 OSV 건조 취소와 인도가 잇따르는 등 우리나라로 선회하는 선주들이 늘고 있다”며 “정책 지원을 통해 우리나라 중소형조선사들이 OSV 건조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입장벽이 낮은 동남아시장을 공략해 진출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OSV 건조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도 거세다. 선박건조에 쓰이는 설계나 장비 등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는 점과 시리즈별 발주가 이뤄지지 않아 가격 경쟁력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중국과 싱가포르 등이 OSV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진중공업, STX조선해양 등이 OSV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장비 패키지를 해양플랜트와 마찬가지로 해외에 의존해야 한다”며 “시리즈로 해봤자 1~2척 나오는 걸 만드느니 상선을 건조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현재 유가하락으로 중단된 해양플랜트 잠재 발주량은 상당하다.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발주가 주춤한 틈을 타 해양플랜트 기자재 표준화·국산화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양플랜트 기자재 표준화·국산화는 국내 조선업계의 선결과제 중 하나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강사준 상무는 “유가하락으로 중지됐던 프로젝트 중 일부가 최근 들어 재추진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작업범위, 기자재, 장비에 대한 스펙을 표준화 및 단순화 시켜 인도기간 축소, 설계, 제조, 설비비용 감소, 실행 리스크 감소 등의 효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기자재 국산화에 대해 그는 “여전히 해양플랜트 국산화율이 20%대에 머물고 있다”며 “대책 중 하나로 모듈단위 국산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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