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4 09:29

특별기고/ 기업의 '위기관리 체계 도입'이 필요한 이유

하트브릿지 박형순 대표 (parkhsa@naver.com)

롯데 ‘브랜드’의 날개 없는 추락이 이어지고 있다. 온 국민의 양미간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부터 며칠 전 불거져 나온 제2롯데월드 건축허가 승인 과정에서의 군 장성 뇌물 제공 의혹까지 도대체 스캔들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롯데그룹은 호텔롯데 및 관계사의 상장 무기한 연기와 계속되는 스캔들로 이미 주식시장에서 수조원이 증발되어 버렸다고 한다. 이 여파로 미국 석유화학회사 엑시올, 1조7000억원의 외국면세점 인수도 물 건너 가는 등 막대한 경영 차질을 빚고 있다.

현대 경영에 있어서 기업의 브랜드는 곧 생명과도 같다. 80년대까지 잘 나가던 일본의 미쓰비시 자동차가 한 번의 부실한 기업 이미지 관리로 지금은 자동차 업계에서 존재감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현대자동차가 벤치마크 대상으로 모시며 기술 이전을 받을 때 현대자동차를 미래의 경쟁자로 거들떠 보지도 않을 정도로 막강했던 브랜드 파워는 이제 없다. 기업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의미다. 

세계적인 경제 전문지들은 기업의 브랜드 파워 순위를 발표한다. 또 그 가치를 금액으로 산정하기도 한다. 선두에 있는 기업들은 애플이나 코카콜라 등 미국의 IT기업들 또는 소비재 기업들이다. 지난 5월 11일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브랜드 파워 베스트 10안에 무려 아홉 개의 미국 브랜드가 포함됐고, 일본의 도요타가 유일하게 6위에 올랐다. 애플이 1위였고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코카콜라, 페이스북, 도요타, IBM, 디즈니, 맥도널드, 제너럴 일렉트릭 순이었다. 
왜 미국의 기업들이 기업의 브랜드 가치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이것이 바로 세계 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미국의 파워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2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섰지만 부와 가치에 있어서 미국과의 격차는 엄청나며, 중국의 정치와 경제가 완전히 자유화되기 전에는 상당 기간 이 격차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한국기업들이 은행이자를 훨씬 밑도는 기업이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재계 순위에 목을 매고 있던 시절인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 대기업들은 수익이나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아니라 재계의 순위를 끌어 올리기 위해 탈법을 통한 문어발식 확장에 올인하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당시에 이미 기업의 브랜드 가치에 투자하고 있었다. 그런 노력이 수십 년 동안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미국 기업들의 브랜드 가치가 지금처럼 높아진 것이다. 브랜드 또는 기업 이미지에 대한 가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경영 상의 실수로 인한 재정적 손해는 이해할 수 있지만 기업의 이미지를 훼손시킨 경영진에 대해서는 관용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워렌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워렌 버핏 회장이 이 말을 한 지도 벌써 수십년이 더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의 현실은 어떤가 살펴보자. 앞서 언급한 롯데뿐만 아니라 두산그룹도 후진적인 사내 기업문화로 인하여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또한 가습기 첨가제로 위기를 맞고 있는 옥시도 지금 엄청난 위기다. 한화 회장의 각목 보복 폭행사건도 아직 국민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으며, 소위 ‘땅콩회항’ 사건을 일으켰던 대한항공의 위기도 쉽사리 가라앉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이 기업들이 이 상황을 위기로 보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마치 양파처럼 새로운 스캔들이 연속으로 터지고 있고 국민들은 이들이 계속 잘못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기업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뢰는 기업의 가치와 직결된다. 바로 주식시장에 영향을 주어 한 나절에 수조원의 가치가 증발한다. 기업이 운영자금을 조달하는 주식시장에서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기업의 존폐와 연결된다. 그런데도 일부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나 경영지원실에서는 국민들의 휘발성 메모리에 의지하여 버티려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오너들이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기업문화 속에서 자신을 낮출 줄 모르거나 정직하지 못한 것도 이유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기업의 브랜드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그것을 지키고 키워 나가기 위해 필수적인 위기관리 체제의 도입 필요성을 인정하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미국 기업들은 이미 기업의 브랜드 또는 이미지에 관한 전략적 개념이 방어에서 벗어나 공세로 바뀌었다.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는 것은 한 수 아래라는 의미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한국 대기업들이 이마저도 못하고 있다.


반면 좋은 사례가 며칠 전 발표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링크트인’ 인수 소식이다. 링크트인은 2002년 리드 호프먼 회장이 자신의 집에서 창업한 회사로 구직자가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에 자신의 이력을 올려 구직뿐 아니라 전문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비즈니스 전문 SNS다. 전세계에 걸쳐 4억3000만명이 가입돼 있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무려 31조원에 인수하기로 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링크트인을 인수하기로 한 것은 기업의 가치와 브랜드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카카오가 지난해 차량 내비게이션 ‘김기사’를 운영 중이던 ‘록앤올’을 626억원에 인수했고 올해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의 운영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를 1조8000억원에 사들였다. 

지난 1998년 한국이 금융위기에 빠졌을 때 세계적인 화학기업인 바스프는 대상그룹의 라이신 사업부문을 인수하면서 당시 한국 경영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 많은 금액을 지불했다. 그 이유는 오로지 기업의 브랜드 가치와 마케팅 파워 때문이다. 만일 이들 기업의 브랜드 가치나 기업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면 이처럼 거액을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제 기업의 브랜드와 이미지는 이미 방어에서 공세적으로 바뀌었다.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들이 위기를 맞이했을 때도 이제는 공세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좋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최고경영자로서 자격이 있다. 위기에 무너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관리의 기본은 정직이다. 감추면 감출수록 위기는 더 심화된다. 당장의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미래를 내다보고 소비자들 또는 이해 당사자들에게 엎드려야 한다. 솔직하고 열려 있으며 최선을 다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용서를 받을 수 있고 기회를 얻게 된다. 법률용어로 기업을 법인(法人)이라고 부른다.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즉, 기업의 운영도 기본적인 사람관계처럼 도덕적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이해 당사자들이 인정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며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당장은 막대한 경영손실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경제적인 해결책인 셈이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이나 이해 당사자들의 신뢰가 회복되면 오히려 더 큰 기회가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미지 및 위기관리는 평소에 하는 것이다. 위기가 찾아왔을 때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면 이미 타격을 피할 수 없다. 군인들이 나라의 위기를 대비해 평소에 피땀 흘려 훈련하듯 기업도 평소에 다양한 위기 시나리오를 찾아내 그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PROFILE

하트브릿지의 박형순 대표는 1989년 3월 창립멤버로 버슨-마스텔라 서울에 입사하면서 홍보 전문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박 대표는 기업 브랜드 및 위기 관리 전문가로서 지금까지 27년 동안 보잉 코리아, 바스프 동아시아지역본부, 마크로, 버슨-마스텔라 등에서 기업의 이미지 및 위기 관리 뿐만 아니라 대언론 홍보, 스포츠 및 문화 마케팅을 포함한 마케팅 및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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