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6 16:19

중소물류업계, 더 이상 갈 곳 없다

2자물류·대형물류·글로벌 포워더에 시장 잠식
지난 2월부터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위한 개정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본격 시행됐다.  개정 공정거래법으로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 총수일가가 지분 30%(비상장사 20%)를 넘게 보유한 기업과 거래총액이 200억원이 넘거나, 또는 매출의 12% 이상의 내부거래를 할 경우 처벌을 받게 됐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2014년부터 시행됐지만 실제 처벌에 대해서는 1년간의 유예를 받아왔다. 그 기간 동안 대기업들은 각자 일감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2자 물류기업의 대표격인 현대글로비스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이 시행되기 직전 현대차그룹 총수 일가의 지분 매각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다. 현대글로비스는 일감몰아주기 시행 바로 며칠 전 정몽구 현대차그룹회장 부자가 지분을 매각하면서 총수일가 지분이 29.99%로 낮아져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유유히 일감몰아주기 규제 법망을 피해간 기업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공정위 감시 대상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공정위는 대기업의 계열사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조사에 착수하며 공정거래개정 이후 첫 조사에 들어갔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40개 대기업 집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내부거래 실태조사를 조속히 마무리해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가 확인되면 의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한진그룹 계열사인 싸이버스카이를 통해 총수일가가 부당이득을 취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내부거래 조사에 들어간데 이어 현대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면서 모기업이 바뀐 현대로지스틱스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지난해 9월 최대주주가 현대상선에서 이지스일호로 변경되고 올해 초 현대그룹과 현정은 회장이 보유하던 지분 88.8%를 매각하면서 롯데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공정위는 현대로지스틱스가 올해 롯데그룹 계열이 되기 전까지 현대그룹으로부터 물류 관련 일감을 받았는지 내부거래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로지스틱스는 올 1분기 특수관계자와의 거래를 통해 168억원의 매출(별도 기준)을 올렸다. 전체 2357억원의 7.12%에 해당하는 규모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중소물류 일감 편취 조성

공정위가 대기업 계열사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규제를 가하고 있지만 2자 물류기업들의 총수일가 지분에만 혈안일 뿐 정작 2자물류기업으로 인한 3자물류시장 잠식은 관심 밖이다. 2자물류기업들이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기 위해 3자물류에 뛰어들면서 물류시장은 빈익빈 부익부로 양극화된 지 오래다.

물류업계는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은 해결책은 커녕 3자물류기업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소 국제물류업체(포워더)들은 모기업의 물량을 업고 3자물류시장까지 공략하는 공룡기업들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소물류업체들은 2자물류기업이 생겨나면서 기존의 대기업 거래물량이 줄거나 뺏긴 것은 어쩔 수 없다 손 쳤지만 영세 화주한테까지 치고 들어오는 2자물류기업의 영업행위에 더 이상 버틸 곳이 사라졌다고 단정했다. 한 포워더 관계자는 “정부에서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나서면서 정작 중소 포워더가 넘어가게 생겼다”며 “2자물류업체들이 3자물류 비중을 높이기 위해 2자물류를 줄이지 않는 현실을 보기 좋게 포장만 하는 꼴”이라며 오히려 정부의 허술한 규제책을 꼬집었다. 한 물류업체 관계자는 “2자물류의 시장잠식으로 인한 문제가 불거진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며 “그동안 중소물류업계는 끊임없이 불공정거래에 대해 끊임없이 성토의 목소리를 냈지만 변한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2자물류기업들과 3자물류를 자청하는 대형물류업체들도 중소물류기업들에겐 질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중소화주 물량을 운임으로 뺏어가기는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물량은 한정돼 있고 물류기업은 늘어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대형물류업체들도 중소물류기업 물량 뺏어가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한 물류업체 관계자는 “2자물류업체 뿐만 아니라 대형물류기업들의 횡포도 만만찮다”며 “자생물류기업의 물류기업 이미지도 변한지 오래”라고 말했다.

2자물류·대형3자물류 ‘캡장사’ 활황

2자물류업체는 모기업 물량으로 기세등등했고, 대형물류업체들도 여기저기서 모아 놓은 물량을 기반으로 선사와의 운임계약에서 낮은 운임으로 운송계약을 체결한 뒤 그 운임으로 중소포워더들의 화물을 집화해 싣기 시작했다.

일명 ‘캡장사’(화물 몰아주기)식의 영업형태는 포워더업계에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역마다 선사와의 운임조건이 좋은 포워더에게 중소물류업체들이 실화주의 화물을 맡겨 중간 마진을 남겨왔다. 중소포워더 입장에서는 선사와의 운임협상에서 받을 수 없는 운임을 다른 포워더를 통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화주 물량을 다른 포워더에게만 의지하다가는 선사와 운임협상 능력이 사라져버려 도태될 수 있는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특히 2자 물류업체들은 계열사 물량으로 경쟁력 있는 운임을 받은 캡장사로 국제물류시장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몇 년 전 2자물류업체들이 포워더의 물량을 싣기 시작할 때만 해도 업계에서는 전통 포워더의 설자리가 좁아진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점차 낮은 운임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캡장사’는 의미가 변질돼버렸다. 경쟁력 있는 운임을 내세워 화주뿐 아니라 경쟁관계에 있는 포워더의 물량까지도 끌어 모으던 방식은 더 교묘해졌다. 2자물류기업과 대형물류업체들이 중소포워더의 물량을 실어주다가 아예 그 포워더의 화주에게 접근해 중간 포워더의 일감을 채가는 것이다.

처음엔 2자물류기업으로부터 대기업 일감도 뺏기고, 이젠 3자물량까지 뺏기게 되자 경쟁은 둘째 치고 ‘상도’까지 저버린 영업행태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국내 대형물류업체들도 여기에 가세하면서 이제 물류시장은 ‘내편 니편’ 없는 전쟁터가 돼버렸다. 한 중소포워더 관계자는 “2자 물류기업을 욕하면서도 결국은 그 밑으로 들어간 곳이 많다”며 “선사와 아무리 협상을 잘 해도 2자 물류기업의 운임을 따라 갈 수가 없으니 불평하면서도 편의에 의해 손을 잡은 업체들도 있다”고 말했다.

2자물류기업 대형물류업체 위에는 글로벌포워더가 있다. 거래를 유지하던 화주들이 갑자기 바이어의 물류기업 지정(Nomination) 건이라는 이유를 들어 글로벌 포워더로 돌아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선사와 운임계약을 통해 글로벌 포워더는 전세계 물량을 기반으로 국내 대형물류기업보다 더한 운임으로 운송계약(SC)을 맺고 결국 이 운임을 여기저기 뿌리고 있는 것이다.

선사들이 2자물류기업과 대형물류기업에게 적정운임 수준을 제시해야 하지만 시황이 받쳐주지 않는 지금은 실현 가능성도 낮다. 한 국적선사 관계자는 “2자물류기업이 모기업화물을 기반으로 3자물류 화물을 모집하고 실어달라고 하는데, 국적사에서 싣지 않아도 외국적선사한테 실어버리면 그만”이라며 “시황이 받쳐주지 않으면 선사도 약자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미 양극화돼버린 시장에서 2자물류의 일감몰아주기와 대형물류업체의 불공정개래, 포워더간의 화물몰아주기 등은 여기저기서 터지며 전체 물류시장은 곪아가고 있다. 일각에 불과한 공정위의 조사가 아닌 대대적인 물류체제에 대해 정부가 개입해 숨통을 틔워야 한다.

<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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