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15 14:55

기획/ 수출물량 ‘곤두박질’ 포워딩업계 ‘빨간불’

해상운임 하락, 콘솔사 호재로 작용
2자물류 일감몰아주기 규제 벗어나 더욱 ‘활개’

2015년 상반기를 한 달 여 남겨둔 가운데 원양 컨테이너선 시장은 시황 부진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특히 유럽항로는 물동량 부진과 운임 약세로 가시밭길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해와 비슷한 운임수준을 유지한 북미항로와 달리 유럽항로는 전통적인 비수기인 1~2월을 지나 시황이 상승세를 탈 것으로 기대됐던 3~4월에도 시황 하락세를 멈추지 않았다. 연초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이 항로 운임은 매달 역대 최저기록을 경신하며 선사들의 애를 태웠다. 특히 4월은 바닥 운임의 정점을 찍었다.

상하이항운거래소가 4월17일 발표한 상하이발 북유럽항로 운임(스팟)은 20피트 컨테이너(TEU)당 399달러를 기록했다. 유럽항로 운임은 2011년 이후 최저치였던 TEU당 500달러를 찍은 지 일주일만에 300달러대로 곤두박질쳤다.

중남미항로도 상황은 비슷했다. 평소 TEU당 1000달러대를 유지해오던 남미동안 운임은 4월 TEU당 500달러 선이 깨졌다.선사들의 운임인상 카드는 번번이 무산되면서 고비를 맞았다. 5월 들어 선사들이 기본운임인상(GRI)에 성공하면서 다시 바닥을 찍고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회복으로 갈 길은 멀다.

선사들은 해상운임이 바닥을 치면서 몸부림을 친 반면, 국제물류주선업체(포워더)들은 슬쩍 미소 지었다. 물동량은 제자리걸음이지만 포워더들의 수익성이 해상운임에 크게 영향을 받는 만큼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모습이다. 최근 몇 달 해상운임이 바닥을 치면서 화주와 운임인상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수고스러움은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레이트포워더를 상대하는 화물혼재(콘솔리데이션)기업들은 해상운임이 바닥권에 머물면서 상대적으로 더 호조를 맛봤다. 콘솔사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점 중에 하나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해상운임이다.

소량혼재화물(LCL)을 모아 컨테이너 한 대를 채워 마진을 남기는 콘솔사들의 특성상 해상운임이 오르면 포워더에게 인상분을 적용하기가 어려워 떠안아야 할 부담이 크지만 올해와 같이 선사들이 운임을 올리지 못할 경우 수익 내기가 수월해진다. 최근 선사들의 GRI 공지가 시장에서 ‘유명무실’해지자 콘솔사들은 화주(프레이트포워더)에게 운임을 올려달라는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돼 안도하는 분위기다.

유로·엔화 약세 수출 ‘타격’

하지만 저조한 해상운임이 대외적인 악조건을 모두 상쇄하진 못했다. 한동안 미주지역 포워더의 발목을 잡던 서부항만적체가 해결된 걸 제외하고는 러시아 루블화 가치하락으로 인한 북방물류 침체는 지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전 세계적인 통화약세로 국내 수출업체들이 휘청거리자 국제물류업계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원화 대비 유로화는 1100원대, 엔화는 800원대까지 하락했다. 최근에는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상반기 내리 약세가 지속됐다. 그 결과 유럽과 일본행 수출물량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국제물류업계도 고스란히 직격탄을 맞고 말았다. 한국근해수송협의회에 따르면 1분기 한-일 해상수출화물은 9만5185TEU로 전년동기대비 9.1% 감소한 반면 수입화물은 8만3541TEU로 13.3% 증가했다. 한 포워더 관계자는 “유럽도 유로약세가 지속되면서 예상만큼 물량이 늘질 않고 있다”며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주요 고객사 수출물량이 대폭 줄어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여전히 LCL콘솔 시장의 과열된 경쟁은 식을 기미가 안보인다. 해외 파트너콘솔사와 계약을 맺고 물량을 주고받는 국내 콘솔사들은 수출물량 유치 전쟁을 벌이면서 마이너스 운임 폭을 키워왔다. LCL의 마이너스 운임은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까지 내려간 상태다. 마지막 보루로 평가되던 유럽시장마저 온전한 마이너스 운임이 출현하면서 그야말로 ‘이전투구’ 양상이 돼버렸다. 업계 관계자는 “원양항로에서 0달러도 아닌 마이너스 운임 출현은 말도 안 된다”며 “일부 화주에게 제시했던 운임이 거론되고 있을 뿐 실제 그렇게 주는 경우는 없다”고 못 박았다.

수입물량을 많이 확보해야 수익이 남는 콘솔업계 특성상 현재의 마이너스 운임 시장구조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보고 있지만 점차 가속도가 붙고 있는 운임 하락세에 콘솔사들의 시름은 더욱 늘어가고 있다.

제도 허점 파고드는 2자물류의 떳떳한 ‘횡포’

국제물류주선업체들은 2자 물류기업의 시장잠식에 여전히 한숨을 내뱉는다. 개정 공정거래법이 적용되면서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됐지만 달라진 점은 찾아볼 수 없다. 중소물류기업들은 모기업 물량을 기반으로 한 2자 물류기업들의 저운임 영업에 밀려 물량 이탈을 마냥 지켜보고 있는 처지다.

지난 2월부터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상 총수 일가 지분이 30%를 넘는 상장계열사(비상장사는 20%)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돼 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 200억원 또는 연 매출 12%가 넘는 거래를 할 수 없게 됐다. 위반 금액의 최대 25% 과징금은 물론이고 이익을 제공한 기업과 수혜기업, 특수 관계인이 모두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현대글로비스의 예에서 보듯 2자물류기업들은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기 위해 만든 법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3자물류시장 잠식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글로비스는 총수 일가의 지분 매각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다. 지난 2월 법 시행에 즈음해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에 성공하면서 지분율을 29.99%로 극적으로 낮췄다. 공정위 규제를 받는 지분 30%에서 10주가 모자라는 수준에서 현대차 그룹 물류자회사는 정부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사정권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됐다. 한 포워더 관계자는 “글로비스가 일감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떳떳하게 중소 포워더 물량 뺏기에 나서고 있다”며 “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2자물류기업이 물류시장을 교란하는 현실이 암담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물류업계는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2자물류기업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고 말하는 곳이 많다. 중소 포워더들은 모기업의 물량을 업고 3자물류시장까지 공략하는 공룡기업들을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전문물류기업 관계자는 “2자물류기업의 국제물류시장 잠식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지속된 문제지만,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화되는 수순”이라며 “3자물류 비중을 높여 2자물류 비중을 줄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공정거래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국제물류업계의 쇠락을 부추길 뿐”이라고 꼬집었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국제물류시장환경은 개선이 더디고, 그 안에서 운임을 놓고 벌이는 경쟁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돼 업계의 성토와 정부의 실직적인 중소물류업체를 지키는 방안이 모두 필요한 시점이다. 

<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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