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27 15:21

기획/ 중소조선시장 日 엔저 정책에 속수무책

조선불황으로 中, 日 이어 국내 대형조선소와도 일감 경쟁
효자 품목 벌크선·탱커 수주량 곤두박질

지난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시작된 국내 중소조선소 불황의 불씨가 좀처럼 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중소조선소는 최근 몇 년간 수주실적 악화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전체 수주실적은 전년에 비해 반토막에 가까운 감소세를 보인 가운데, 강력한 정부지원과 엔저효과를 등에 업은 중국·일본의 조선업이 활개를 칠 것으로 보여 앞으로의 전망은 막막하기만 하다.

지난해 수주량 전년比 두 자릿수 급감

지난해 세계 중소조선소의 시황은 연말로 접어들수록 크게 악화됐다. 특히 4분기 중소조선소의 효자품목인 벌크선과 탱커의 수주량은 전분기 대비 각각 80% 46% 급감하며 전체 실적감소를 이끌었다. 컨테이너선 역시 초라한 실적을 내놓으며 전년 대비 큰 폭으로 하회했다. 영국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2천TEU급 컨테이너선의 지난해 수주척수는 지난해 35척에서 5척 증가한 40척으로 늘었지만, 2천~4천TEU급은 48척에서 크게 하락한 27척 수주에 그치며 부진했다. 벌크선과 아프라막스급(11만5천t급 이하) 탱커의 수주량도 전년 대비 각각 42% 50% 급감한 1005만CGT(수정환산톤수) 384만CGT를 기록하며 싸늘한 시황을 연출했다.

궤를 같이해 국내 중소조선소에도 찬바람이 몰아쳤다. 지난해 중소조선소의 1~12월 누계 수주량은 전년 대비 43% 감소한 162만CGT를 기록하며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1분기를 제외한 2~4분기의 수주가 저조한 수준을 나타냈으며 전체 수주액 역시 25%나 감소한 32억달러의 초라한 성적표를 내놓으며 한 해를 씁쓸히 마무리했다. 그동안 국내 중소조선소들이 강점을 보였던 벌크선과 중소형 탱커시장이 위축되고 엔저 영향으로 일본 조선소들의 약진이 계속되면서 일감이 부족해진 탓이다.

최근 국내 중소조선소 시황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고 있다. 국내 중소조선소는 2007년 262억달러의 일감을 확보하며 전체 조선시장 점유율의 30%에 달할 만큼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대형조선소와의 실적 차이는 여전히 컸지만 벌크선과 중소형 탱커를 중심으로 수주량을 늘리며 특유의 경쟁력으로 활로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2008년 리먼사태 이후 2009년 국내 중소조선소의 전체 수주액은 14억달러로 크게 고꾸라졌다. 2011년 36억달러를 기록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는 듯 했으나 2012년 13억달러로 다시 하락했다. 2013년엔 42억달러를 기록하며 상승세로 돌아섰으나 2014년에 또다시 감소세를 보이며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모양새다.

벌크선 시황 붕괴도 중소조선소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동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인 벌크선운임지수(BDI)의 추락은 엎친데 덮친격으로 중소조선소들을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최근 BDI는 30년 만에 최저인 530을 기록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벌크선과 제품운반선 시장에서는 투기적인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나 이들 수요 역시도 고효율 선박 위주로 발주가 진행되는 양상이다. 고효율에 대한 절대적 필요성은 대형선에 비해 다소 떨어지나 중소형 조선시장에서도 영업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유가하락과 건화물선 시황붕괴로 인해 벌크선과 탱커의 수주량이 예년만 못하다”고 토로하며 “사업다각화를 통해 컨테이너선과 참치선망선 등의 수주에도 집중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고 밝혔다.

중소조선 가입 회원수, 반토막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의 후폭풍은 중소조선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중소조선소들이 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한국조선공업협동조합의 신규 가입업체도 10년 사이에 대폭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2007년까지 호황을 누리며 가입자수가 늘었지만 불황을 맞으며 대부분 시장에서 퇴출된 것이다. 1990년대 한국조선공업협동조합에 가입한 중소조선업체는 120여개였으나 2000년대 후반부터 경기둔화로 인한 조선침체로 중소조선업체가 부도나거나 도산을 당하며 가입 업체수는 고꾸라들었다.

특히 정부의 금융지원이 아예 끊긴 2013년의 가입업체는 71개로 급감했다. 2003년 122개 업체에 비하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1990년대 매년 가입 조선소는 평균 10개 이상을 웃돌았으나 2008년 이후 하향곡선을 그리다 2013년에는 역대 최저치인 1개 조선소만이 가입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새로 가입하는 업체는 줄고 있는 반면, 탈퇴 업체의 수가 늘고만 있기에 중소조선업계는 현 상황을 매우 한탄하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과거 중소조선업이 호황일 때는 총회에 참석 업체도 많고 붐볐으나 불황으로 인해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밝혔다.

대형조선업의 상황이 좋지 않다보니 중소조선소의 체감경기 역시 말이 아니다. 특히 국내 대형조선업체들이 중소형 주력업종인 벌크선과 탱커 등의 수주전에 뛰어드는 것과 더불어 외주로 주는 일감도 예전보다 줄며 중소조선소의 상황은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2천~5천t급 이상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중소조선소는 2~3곳으로, 나머지 적자를 보고 있는 조선소는 블록사업을 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선수금환급보증금(RG) 발급을 통한 금융권의 지원 등 중소조선이 살기 위해선 여러 방법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G는 중견조선소에게 수월한 반면, 5천t급 이하의 소형화물선을 건조하는 업체들 입장에서는 녹록치 않은 과제 중 하나다. 특히 중소조선소들의 경우 선박 수주에 성공하고도 선주에게 제공해야 하는 RG를 마련하지 못해 수주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금융업계는 중소형 조선사가 곧 구조조정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점에서 건설사와 조선업종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시각이 강해졌다. 또 선박 구입 계약시 선박 인도시점에 전체 대금의 60~70%를 지급하는 헤비테일방식으로 인해 중소조선업체들의 자금난은 한층 심각해지고 있다.

연안선박 현대화 보전사업 등 정부지원만이 살 길

연안선박 현대화 이차보전사업의 대출 규모가 커진 것은 중소조선업계에 고무적인 일이다. 해당 사업은 노후된 연안선박의 현대화를 통해 해상안전 확보와 여객서비스 질 향상 도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선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끄는 것은 물론 침체된 국내 중소조선업계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여 업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근 해양수산부는 노후화가 심각한 연안선박의 현대화를 통해 여객선 등 선박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올해 1250억원 규모의 연안선박 건조자금 대출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는 선박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기대수준을 감안해 대출규모를 지난해 500억원에서 1250억원으로 대폭 확대했고, 대출상환기간도 8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등 지원조건도 개선했다.

해수부는 연안선박 현대화 이차보전사업 대상자 선정을 위해 지난달 9일 공고를 시작했다. 신청자는 기업 건실도, 연안해운 기여도 등 8개 항목에 대해 심사위원회의 평가를 거쳐 최종적으로 지원대상에 선정된다. 선정된 사업자는 수협은행에서 선박건조자금을 대출 받게 되며, 정부는 대출이자 중 3%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전해준다. 해수부 관계자는 “지난해 시행했을 당시 40여개의 업체가 신청을 했으며, 올해 그 수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연안선박 이차보전사업의 대출규모는 올해 확대됐지만, 이에 대해 중소조선업계는 우려하는 목소리를 제기했다. 사업의 취지는 좋지만 우선순위로 선정된 사업자가 연안선박 건조자금을 독식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신용도와 내항화물사업에 미치는 공헌도 등을 고려해 우선순위가 정해지겠지만 올해부터 확대된 건조자금 대출액이 각 업체별로 균등히 배분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해수부 관계자는 “중대형 카페리선이 아닌 소형 선박을 위주로 배가 건조되다보니 1개 업체당 100억원을 넘는 경우는 없었다”면서도 “만약 선박 건조자금이 불어나게 된다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앞으로 상환기간을 15년로 연장하고 신규건조시 건조자금 대출분에 대한 금리를 4%로 끌어올리는 등 더 많은 업체들의 참여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중소조선소에 대한 정부의 대책도 더욱 활성화돼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중국의 국수국조 정책과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조선소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대형조선업계 뿐만 아니라 중소조선에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국내 대형조선소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과의 경쟁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며 중소조선업계는 어려움에 맞딱뜨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경영실적이 좋지 않은 일부 조선소의 퇴출과 합병을 통해 산업의 집중화를 이뤄 국내 조선소와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또한 에코십 기술의 우위에 엔저에 따른 가격경쟁력까지 더해지면서 수주점유율이 상승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조선업은 올해 1월 전체 수주량 부문에서 6년 10개월만에 세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는 선박이 한단계 도약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중소조선소들의 발빠른 대응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 조선소들의 지속적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에코십 기술 등 시장의 규제와 흐름에 대비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선 정부의 지원도 절실하다”며 “연안선박 보전사업의 규제 완화도 중요하지만, 기술개발(R&D) 사업에 대한 지원강화와 RG발급이 순탄히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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