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동남아항로의 선복과잉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새해부터 선사들은 서비스 확대를 감행했다. 동남아항로의 올해 수출입 물동량은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지만 선사들의 떨어진 해상운임은 좀처럼 오르지 못하며 답보상태에 머물러있다. 선복감축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지만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기만 해 선사들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고려·흥아·TS라인 등 서비스 확대
연초부터 동남아항로는 선사들의 서비스 강화가 줄을 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들어 떨어진 운임이 연말까지 이어진 가운데 연초부터 선사들이 서비스 개설과 기존 노선을 확대하면서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늘어난 선복량과 불안정한 시황은 선사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대만선사 TS라인은 한국과 대만, 홍콩을 잇는 주 1항차 서비스를 18일부터 개시했으며 고려해운과 흥아해운 역시 공동운항 체제로 한국과 베트남 하이퐁, 홍콩을 잇는 신규 서비스를 17일부터 선보였다. 중국 최대 민영선사인 하이펑국제해운(SITC)도 신조선을 투입하며 선복을 늘렸다. SITC는 최근 인도받은 1800TEU급 컨테이너선을 일본과 태국, 베트남, 중국을 기항하는 노선에 투입했다. 대만 선사 완하이라인 역시 다음달 중순 인천과 하이퐁을 잇는 직항로 서비스를 개설하며 항차수를 늘린다.
선사들의 잇따른 취항으로 동남아항로의 선복은 상당히 과잉상태다. 특히 베트남항로는 흥아해운이 부산발 주5항차, 인천발 주 4항차의 서비스를 구축하고 있으며 고려해운은 부산발 주 4항차, 인천 2항차 서비스를 제공하며 선복을 늘렸다. 남성해운도 주 3항차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하이퐁 노선을 구랍 12일 기점으로 4항차로 확대했다. 선사들이 이처럼 서비스를 확대하고 이유는 증가하는 물동량에 대응하는 부분도 있지만 시장에서의 우위를 더욱 점하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유가하락도 선사들의 서비스 강화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12일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지난 거래일보다 배럴당 1.7달러 내려간 45.7달러에 거래됐으며, 브렌트유와 서부 텍사스산 원유 또한 2달러 넘게 지난해 11월 75달러선에서 폭락하기 시작해 올해 1월6일 48달러에 거래되면서 50달러선이 붕괴됐고, 다시 엿새 만에 45달러선까지 내려왔다. 국제유가 하락은 자연스레 수익개선으로 이어졌고 선사들은 동남아항로의 장기적인 포석을 마련하고자 서비스를 늘렸다. 선사 관계자는 “최근 선사들이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유가하락으로 인해 발생한 수익을 신규 서비스에 투자하며 앞다퉈 선대투입을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꽉꽉 들어찬 선복량과 서비스 강화로 인해 선사들의 동남아항로 진입장벽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베트남과 홍콩 등을 중심으로 서비스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시장상황은 더욱 어두운 그늘이 드리울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 강화에 골몰하고 있는 선사들은 현재 동남아항로 상황을 바라보며 난색을 표했다. 선사 관계자는 “선복용선이나 공동운항을 통해 후발주자 선사들이 동남아서비스 강화를 향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텐데, 현재 기득권 있는 선사들이 권한을 놓지 않고 오히려 선대투입을 늘리고 있어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고 토로했다.
바닥친 운임 언제 제값 받나
국제유가 하락은 선사들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져 호재지만 저운임 기조가 아직 팽배해 체감경기는 크게 나아진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동남아항로의 기본운임인상(GRI)은 선사들의 뜻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다. 언젠가부터 GRI는 유명무실해진지 꽤 됐다는 것이 선사관계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GRI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한 셈이다. 올해 3월에 계획돼있는 GRI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선사들의 중론이다. 동남아정기선사협회에 따르면 올해는 3월과 6월, 9월과 11월에 GRI를 계획 중이다. 협회관계자는 “3월에 50~100달러의 운임인상 계획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인상에 동참하는 선사는 극소수일 것”이라고 밝혔다.
화물집하 경쟁이 가장 뜨거운 지역의 GRI는 더욱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발 베트남행과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행의 운임은 각 선사들마다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피트 컨테이너(TEU) 기준으로 홍콩행 평균 운임은 100~150달러, 태국은 200~250달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행은 350~400달러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사 관계자는 “유가가 내려간다고 해도 운임이 워낙 낮게 형성돼 있고 선사들간 경쟁이 뜨거워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제값 받고 항로를 운영해야 하는데 원양선사들이 우위를 점하고자 낮은 운임을 형성하고 있고 선사들은 따라가는 입장이다 보니 운임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고 덧붙였다.
유가하락에 운임도 하락
국제유가 하락도 운임상승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국제유가 하락이 해운사들의 비용절감으로 이어지면서 화주들이 운임인상 요구에 난색을 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가 하락은 선사들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지만 하락세가 장기화하면 대형화주들이 운임인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업계 관계자는 “유가하락으로 해상에 운용되고 있는 선박량이 늘면서 운임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며 “유가하락에 따른 원가절감효과보다 높은 수준의 운임인하를 화주들이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동남아항로는 유류할증료(BAF)가 기본운임에 포함되는 총액 운임방식으로 바뀌었다. 유가가 하락하면 운임도 낮게 책정돼야하나 현재의 운임수준이 워낙 낮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선사측의 설명이다. 선사 관계자는 “동남아항로의 경쟁심화로 인해 유가하락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떨어진 운임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선사들은 공조체제를 강화해야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국적선사, 외국적선사 가릴 것 없이 동남아항로에는 투입선대가 워낙 많고, 시장에 별다른 제재가 없기 때문이다. 선사들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는 지역은 베트남, 태국, 필리핀이다. 특히 방콕항, 마닐라항 등은 항만적체가 극심해 스케줄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석혼잡에 의한 접안대기 등으로 항만혼잡할증료를 부과하고 있는 선사들은 스케줄 지연에 크게 애를 먹고 있다. 지난해 연초부터 시작된 마닐라항 적체는 아직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마닐라시는 한시적으로 완화했던 주간 트럭운송제한조치를 최근 강화해 적체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수입 물동량 올해도 폭증하나
폭발적인 물동량 증가는 선사들의 서비스 강화로 직결된다. 지난해 동남아항로의 수출 물동량은 전년에 비해 증가세가 다소 둔화된 반면, 수입 물동량은 전년 대비 두자릿수의 성장을 일구며 고공행진했다. 전년 대비 무려 19%의 성장을 보인 것. 동남아에서 한국으로 실어 나르는 화물이 증가한 이유는 동남아로 중국 공장 이전이 많아진것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이미 저임금의 매력이 크게 줄었다. 따라서 중국에 위치한 기업들은 값싼 인건비와 비용을 이유로 남중국이나 베트남을 중심으로 공장을 옮기고 있는 추세다.
자연스레 동남아시아발 한국향 컨테이너 물동량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특히 지난해 11월까지 집계된 수입 물동량은 100만TEU를 넘어섰다. 전년 같은 기간 85만TEU와 비교해 괄목한 성장을 보인 것이다. 수출 물동량 역시 3.8% 성장했지만 수입물량에 비해 성장이 더딘 모양새다. 수입 물동량 증가를 견인한 국가는 태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이었다. 지난해 11월까지 베트남·태국항로에서 우리나라로 실어 나른 컨테이너 화물은 전년 대비 각각 32% 35% 폭증한 21만6225EU 13만8895TEU를 기록했다. 인도네시아항로 역시 전년 대비 20% 증가한 10만5371TEU를 실어 날랐다. 지난해와 같은 추세라면 올해 수입 물량은 수출 실적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올해도 수입 물동량이 지난해처럼 큰 성장을 이어나갈까. 대부분 선사들은 예년처럼 성장은 이어가겠지만 일부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다. 성장은 지속되겠지만 여러 변수로 인해올해 물동량은 예년에 비해 크게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한 선사 관계자는 “베트남에 건설되고 있는 삼성전자 공장이 2~3월에 완공되면 건설자재 수요가 줄어들 것이며, 지난해 베트남과 태국, 말레이시아에서 수입된 우드펠릿의 재고량이 아직 꽤 되는 것으로 파악돼 올해 동남아항로 전체 수입은 전년보다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선사 관계자는 “지난해 수입 물동량이 워낙 폭증해 올해는 전년보다 낮은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도 동남아항로의 전망은 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선복과잉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동남아정기선사 협회 관계자는 “동남아항로는 선복과잉이 지속된 상태로 2월까지 비수기를 보낼 것이며, 물동량 증가율이 눈에 띄는 3~5월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간은 전망이 밝지 않아 선사들의 경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와중에 올 연말에 필리핀과 태국 등 10개 회원국을 중심으로 한 ‘아세안 경제공동체’가 출범한다. 코트라에 따르면 아세안 경제공동체의 가입 국가에는 6억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고 국내총생산(GDP)은 21조달러 이상에 달해 앞으로 동남아지역은 중국을 대체할 거대 생산기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생산기지로 떠오르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신생 개발도상국들이 대거 포진한 데다 앞으로 잠재 성장 가능성도 다른 지역보다 높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의 일부 기업과 마이크로소프트(MS) 휴대전화 사업부문 등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 내 기존 생산설비를 베트남 등 아세안 지역으로 대거 재배치하고 있다. 아세안 지역의 낮은 임금은 다수의 기업에게 큰 매력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생산경쟁력 또한 증가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등의 시장과 가까운 곳에 생산공장을 이전하고자 하는 기업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아세안 경제공동체 출범 등으로 인해 향후 동남아국가의 발전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여겨져 선대투입은 향후 지속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다만 그는 “성장이 예견되는 만큼 선사들의 치열한 경쟁 역시 계속돼 불투명한 시황전망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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