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05 15:00

기획/ 공급과잉에 숨막히는 내년 해운시장

연말 운임하락에 연간 계약까지 빨간불
벙커유가 400弗대 하락 ‘한줄기 빛’

●●●내년 경기 전망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선진국 부채 증가와 중국의 저성장 기조, 개도국으로의 대규모 자본 이동으로 고성장 요인이 사라지면서 2015년 세계 경제는 3%의 저조한 성장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기 둔화로 덩달아 해운 시장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연말을 앞두고 시황이 침체되면서 유럽과 북미항로의 운임은 하락일로를 걷고 있다. 여기다 내년에도 어김없이 선복량 증가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돼 선사들의 운임 올리기는 한층 어렵게 됐다.

시황 하락으로 연말부터 골머리 앓아

비수기를 맞이한 유럽과 북미항로는 침체된 운임으로 신음하고 있다. 상하이항운거래소가 집계한 11월21일자 상하이-북유럽 운임은 20피트 컨테이너(TEU)당 809달러로 1000달러대가 무너졌다. 11월28일은 TEU당 739달러로 70달러 하락해 침체의 폭이 더 깊어졌다. 지중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1월21일 상하이-지중해 운임은 TEU당 1013달러였으나 일주일 후인 11월28일에는 TEU당 952달러로 세 자릿수로 떨어졌다. 선사들은 12월15일 TEU당 800달러의 기본운임인상(GRI)을 시도한다. 선사 관계자들은 근래에는 대기업의 연말 밀어내기 물량 또한 시황을 좌우할 만큼 큰 폭으로 늘어나지는 않아 GRI 적용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럽항로를 취항하는 선사 관계자는 “12월15일 예정된 GRI를 통해 운임을 올리기보단 현재 수준으로 운임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북미항로는 여전히 서안 항만 적체로 혼란을 겪고 있다. 상하이-북미서안 운임은 11월21일 40피트 컨테이너(FEU)당 2158달러에서 11월28일 FEU당 1905달러로 내리막길을 탔다. 북미 서안의 경우 LA, 시애틀, 터코마, 오클랜드, 롱비치, 포틀랜드 항만 노조가 태업을 지속하면서 서안에 입항한 선박이 선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덕분에 북미 동안은 서안으로 가야 할 화물들이 몰려 때 아닌 물량 호조를 맞았다. 상하이-북미 동안의 운임은 11월21일 FEU당 4229달러에서 11월28일 FEU당 4078달러로 다소 하락했으나 서안의 비해선 하락폭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11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연간 운송 계약(SC)을 맺고 있는 선사들에게 시황 침체는 불리한 패다. 대부분 계약 시점의 시장 운임을 기준으로 계약 운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예년보다 한 달 정도 빠르게 연간 운송 계약이 시작됐다. 작년만 해도 12월 초에 계약을 시작해 해를 넘겨 마무리했으나 올해의 경우 연말이면 모두 운송 계약을 마칠 것으로 보인다.

대형 화주들이 운송 계약을 서두른 표면적 이유는 해가 바뀌면 변경되는 전산 체계로 생길 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형 화주 입장에서는 시황이 침체된 시점에 계약을 맺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예년보다 일찍 연간 계약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대형화주와 맺는 연간 계약으로 한 해 실적을 끌어 올려야 할 선사들에겐 이래저래 악조건이 겹친 셈이다.

걷는 ‘물동량’ 위에 나는 ‘선복량’

연간 계약도 한 발짝 물러서 시작했건만 설상가상으로 내년 시장 전망 또한 밝지는 않다. 유럽 경제 회복이 더디고 중국 경제가 6%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시황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올해와 마찬가지로 물동량의 제자리 걸음에 비해 저 멀리 앞서가는 선복량 때문에 선사들의 한숨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드류리는 내년 말까지 1만TEU급 이상 초대형선박 50척이 아시아-유럽 항로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 해운전문저널 컨테이너라이제이션 인터내셔널(CI)은 내년도 아시아-북유럽 항로의 선복량이 6%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 현재 시점부터 2015년 말까지 1만TEU급 선박 69척이 투입될 것이라 보도했다. 이 중 가장 큰 선대는 차이나쉬핑이 운영하는 1만9000TEU급 선박이다. 주당 선복량 역시 현재 26만6000TEU에서 9.5% 증가한 27만TEU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선사들의 선복량 감축은 더욱 절실해졌다. CI는 내년 4분기 물동량이 전년 동기 대비 7.2%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수요와 공급을 맞추려면 내년 4분기 선사들은 물동량 증가치의 두 배가 넘는 15.4%의 선복량을 줄여야 한다. 적극적인 선복 감축만이 운임을 떨어뜨리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2M과 O3는 내년 서비스 시작을 목표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O3 참여 선사인 UASC의 최고 경영자 존 힌지는 CMA CGM, UASC, 차이나쉬핑 세 선사가 내년 1월 중순 O3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초 O3는 북미 항로에선 12월 중순부터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서안 항만 적체로 1월 중순에 개시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선복량 기준 세계 1, 2위 선사가 뭉친 2M 역시 내년 1월 출범을 위해 화주들에게 서비스 노선을 안내하고 영업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특히 선복량 기준 세계 1, 2위 선사의 결합인 2M의 영향력은 나머지 선사들에겐 위협적이다. 이에 따라 나머지 선사들은 전략적 제휴를 통해 2M에 대응하고 있다. 가장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건 중국 선사들이다. 중국 차이나쉬핑은 중국 초상은행과 터미널 개발, 금융, 해운 부문에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또 코스코, 시노트란스와 중국-일본 간 정기 노선을 공동운항하는 C3 얼라이언스를 구축했다. 코스코와 차이나쉬핑은 해운, 터미널 운영, 육상 물류, 조선, 선박 수리에서 협력을 모색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중국 선사들은 전략적 제휴와 공동 운항, 협력을 통해 비용 절감 효과를 꾀한다. 해운시장 침체와 함께 곧 등장할 2M이라는 강자에 맞서 미리 비용 절감으로 재정을 확보해 두기 위함이다. 정기선사들 역시 독자적 비용 절감 보다는 모든 사업 부문 측면에서 협력을 강화해 함께 생존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유가 하락, 마냥 좋지만은 않아

선복량 증가와 시황 침체로 가시밭길이 예고됐지만 예상 밖의 호재도 있다. 선박 연료유(벙커C유) 가격 하락으로 선사들은 실적 개선에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 선박용 벙커C유는 톤당 약 420달러까지 하락했다. 지난 6월 톤당 625달러에서 6개월 사이 200달러 떨어진 셈이다.

올해 4분기 배럴당 두바이유 가격은 84.95달러로 연간 평균인 97.31달러보다 낮게 측정됐다. 내년에도 저유가 현상은 계속돼 연간 평균 예상치 또한 배럴당 90.5달러로 100달러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OPEC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향후 5년간 국제 원유 시장에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것이라 밝혔다. 미국 셰일가스 산업에 대한 압박으로 산유국이 원유를 충분히 공급하고 있는 데다 달러 하락까지 겹쳐 저유가 현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유가 하락은 선사들에겐 오랜만에 듣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선사 마다 차이는 있지만 매출액 대비 유류비 비중은 대략 20%로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저유가 현상은 선사들의 채산성 상승까지 이끌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집계한 해운업 채산성 BSI는 전월에 비해 25포인트 오른 99를 기록했다. 특히 컨테이너선 부문은 29포인트 오른 107로 나타났다. 컨테이너선 부문은 12월 채산성 전망도 107로 예상돼 높은 기대감을 이어갔다.

그러나 저유가가 선사들의 실적 향상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환경 오염 방지를 위해 고가의 저유황유를 사용해야 하는 지역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맺어진 해양오염방지 조약 개정에 따라 미국과 캐나다에선 외항 선박이 입출항할 때 고가의 저유황유를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업계는 황산화물 규제 지역을 지나는 선박의 비율을 전체의 60%로 추산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턴 유항 함유량이 1% 미만에서 0.1% 미만으로 규제가 강화돼 선사들의 비용 증가는 더 늘게된다.

선사들은 비용 증가를 만회하기 위해 과징금을 징수하고 있다. 태평양항로안정화협정(TSA)은 북미 지역을 취항하는 선사들에게 북미서안에서 FEU당 47달러, 북미동안과 걸프해에서 FEU당 95달러의 과징금 인상을 권장했다. 그러나 과징금만으로는 고가의 저유황유 비용을 보존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외국적 선사 관계자는 “저유가 현상이 선사들의 매출 향상에 도움이 되겠지만 향후 정기선 시장에도 친환경 운항이 강화되면 저유황유 사용으로 인한 비용이 늘어 선사들에겐 부담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고유가가 이어지면서 선사들은 저속 운항을 통해 연료비를 절감해왔다. 최근 유가 하락에 따라 화주들이 다시 정시 운항을 요구하고 있다. 선사들이 본격적으로 정시 운항에 나서면 또 다른 추가 비용이 생기므로 결국 유가 하락이 실적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해운분석전망기관들은 정기선 시장의 본격적 시황 회복이 2017년은 되어야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 경기 침체와 더불어 정기선 시장도 어두운 터널을 지날 것이 예고되면서 정기 선사들은 내년에도 시황 향상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 이명지 기자 mj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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