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설립될 예정인 해운보증기금이 도탄에 빠진 해운시장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국회와 협조해 해운법 개정을 통해 해운보증기금법 제정을 진행 중이다. 법안발의는 장윤석 의원(새누리당 경북 영주)이 맡았다.
장윤석 의원은 법제실 심의를 거쳐 5월 중으로 법안을 국회에 상정한다는 방침이다. 장 의원은 국회 농림축산해양위원회 소속이면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해운보증기금이 설립될 경우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에서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선박금융공사와 함께 해운업계 유동성 해갈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일반 은행 위주로 이뤄지던 선박금융시장에 일대 전환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선박금융 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은행은 엄격한 심사기준과 획일적인 대손충당 기준을 갖고 있는 데다 금융감독원의 제재 등으로 경기 역행적 대출이나 장기 대출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까닭이다.
특히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바젤3은 은행들의 경기역행적 투자에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바젤3은 국제결제은행(BIS)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가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내놓은 은행권 규제 방안이다. 경기역행적 자본금 투자에 대한 완충자본을 두도록 하고 장단기 유동성 비율 유지를 의무화했다.
금융위기 시절 혁혁한 공을 세웠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금융지원도 최근 부진하긴 마찬가지다. 캠코가 구조조정기금이 아닌 자체계정으로 선사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사업계획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시장침범이라는 민간기업들의 반발을 산다는 점도 캠코의 행보를 위축시키고 있다.
선박금융공사 ‘조선소 편애 가능성’ 커
선박금용공사는 지난해 7월 이진복 의원(새누리당 부산 동래)이 대표 발의한 한국선박금융공사법에 근거해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에 계류돼 있다.
선박금융공사 신설은 일종의 금융기관 도입으로 경제불황기나 위기시가 아닌 평시에도 해운업을 지원토록 한다는 게 골자다. 선박금융공사는 해운업과 조선산업에 안정적인 선박금융을 제공하는 것을 주된 업무로 한다.
특히 선박의 건조나 구매 또는 거래를 위해 금융기관이 조선사나 해운기업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게된다. 조선소에 필요한 선수금 환급보증과 선박의 제작자금도 포함된다.
법안에 따르면 선박금융공사는 선박관련 대출, 보증, 선박관련 채권의 매입과 중개, 선박관련 투자 등에 대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자본금은 2조원이며 정부가 전액 출자할 예정이다. 법안은 최초 자본금을 한국정책금융공사에서 출자토록 해 정부가 별도의 재정을 지출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뒀다.
선박금융공사의 업무계획과 예산은 매해 운영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확정될 예정이어서 사실 해양수산부와는 무관하게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공사형태의 선박금융 전문기관 설립에 다소 미온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점에서 설립에 회의적인 시각도 보인다. 18대 국회에서 이 법안이 상정됐을 당시 정부는 해운시황이 회복되고 해운업계의 구조조정 등 자구노력이 병행돼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정부는 대안으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정책금융공사 무역보험공사 등에서 확보한 일종의 선박금융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라는 것을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8월 조선사 제작자금 확보 지원을 위해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 우리은행 외환은행 국민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 등 6개 은행이 4조원 내외의 조선사 제작금융을 지원하는 방안을 밝혔다.
수출입은행도 선박제작금융한도를 1조9천억원에서 3조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책금융기관이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자산관리공사 정책금융공사 무역보험공사 등으로 기능이 분산돼 있는 데다 중소선사가 접근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선박금융공사 설립에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선박금융공사 도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지적된다. 우선 업무 중복 문제다. 선박금융공사의 업무로 법안에 규정된 해운사 선박조달에 대한 대출, 조선소 제작금융 대출, 선수금 환급보증 등의 선박 관련 보증 등은 기존 선박금융기관의 업무와 겹친다.
선박금융 환경이 축소된다는 점도 문제다. 해운보증기금 도입 연구용역을 맡은 법무법인 광장 정우영 변호사가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정 변호사는 “기존 선박금융기관을 통합해 선박금융공사 조직을 재구성할 경우 해운사가 금융을 조달할 수 있는 선박금융기관이 줄어들게 돼 해운사가 조달가능한 대출금액이 축소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금 고갈과 조선소 지원 편중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선박금융공사가 해운사 지원, 조선소 지원, 선박 관련 보증업무 등을 직접 수행할 경우 오래지 않아 2조원의 자본금이 바닥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직접 대출업무를 수행하게 될 때 선박금융공사가 7~10년의 장기대출인 해운사의 선박금융보다 1~3년 정도의 단기인 조선소 제작금융 지원에만 치중해 운영될 가능성이 커 조선소 지원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해운업계는 걱정스러워 하고 있다.
기관 명칭을 당초 ‘선박금융공사’에서 ‘선박·해양금융공사’로 변경한 것도 조선소 지원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재원규모를 증가시키고 이를 채권발행의 형태로 조달할 때 현재 포화상태인 채권시장의 교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통상마찰 가능성도 설립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16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조선과 해운업은 대표적인 경기순응적 산업이어서 장기적인 금융지원이 필요하다”면서도 “통상마찰의 소지가 있다는 건 걱정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금융기관 특성상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의 관리·감독을 받도록 예정돼 있어 일반 은행들과 마찬가지로 경기 불황일 때 자금난에 시달리는 해운사에 자금지원을 해줄 지도 의문이다.
해운보증기금 ‘보증+선박은행’ 기능 맡겨져
이 같은 문제점을 들어 해양수산부와 해운업계는 해운보증기금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선주협회가 진행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해운보증기금은 선박금융공사와 같이 초기자본금 2조원으로 설립될 전망이다. 자본금은 정부와 선사 금융회사 대량화주의 출연금과 장기차입금 등을 통한 조달 방법이 모색되고 있다. 정부에서 1조8천억원을 출연하고 나머지 2천억원을 선사 등 민간에서 조달하는 안이 유력하다.
조직은 해운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기획전략부, 기금관리와 신용제공을 담당하는 영업부, 보상과 자산운용 부서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맡는 역할은 크게 해운사 대출 보증과 선박은행(Tonnage Bank) 역할이다. 우선 대출 보증이다. 해운보증기금은 선박금융에서 투자부분 또는 후순위 대출에 대한 보증업무나 해운사가 발행하는 회사채에 대한 보증업무 등을 수행하게 된다.
재원이 해운사에 직접 제공되지 않도록 하면서도 신용제공을 통해 자금 지원 효과를 보도록 하는 것이다. 해양부는 이 같은 보증기능은 해운시장이 위기가 아니더라도 자본시장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데다 해운사의 차입비율을 낮춰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유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록 현재에도 선박 확보와 관련된 여러 보증서비스가 존재하지만 규모는 미미하다. 특히 무역보험공사는 신조선 수출에만 적용되는 한계를 띤다. 신용보증기금 등의 보증업무는 중소기업 중심의 작은 규모에 국한돼 있어 선박금융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새로운 전문기관 도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해운보증기금은 불황일 땐 보증금액이나 보증비율을 결정할 때 은행 등 금융기관처럼 선박의 시장 가격에만 의존지 않고 장래예측을 통한 적정선가를 산정함으로써 선박금융시장을 안정화하는 기능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또 유동성난을 겪는 해운사가 운영자금 조달 목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할 때 자금상환도 보증하는 업무도 포함된다. 이럴 경우 금리부담을 낮출 수 있어 해운사들의 금융시장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중소 해운사의 자금난 해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선주협회 관계자는 “해운경기가 침체되고 선박의 시장가격이 현저히 하락하는 불황기엔 선순위금융으로 조달하는 대출비율이 감소하기 때문에 후순위 금융을 통한 자금조달이 없다면 선박금융을 통해서 선박을 도입하기 매우 어렵다”며 기금 설립에 힘을 실었다.
해운보증기금은 선박은행 역할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금이 보증을 제공했으나 대출원리금 상환이 제 때 이뤄지지 못해 부도가 날 경우 기금이 해당선박을 회수하되, 즉시 매각하지 않고 보유하면서 운용하다 가격이 오르면 파는 식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시절 가동됐던 구조조정펀드(캠코펀드)가 비슷한 방식을 취했다.
선박의 잔존가 보증(RVI)도 해운사들이 기대하는 업무다. 잔존가 보증은 일반 대출보증과 달리 선박의 잔존가격이 실제 상환금액의 일정비율 이하로 하락했을 때 향후 대출금 상환을 보장하는 기능이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 악화로 중고선 가격이 급락해 많은 선주들이 은행들로부터 추가담보나 조기상환을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어서 해운사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운사의 ‘모럴해저드’(도덕성 해이) 야기 가능성은 해운보증기금이 극복해야할 과제다. 해운사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해 선박 매각 수순을 밟게 되면 선순위 금융기관만이 대출금을 회수하게 되며 기금이 보증을 선 후순위 대출금은 모두 나랏돈으로 갚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른바 ‘보증사고’가 발생할 경우 해운산업의 국민 불신을 불러올 수 있다.
한편 하루가 급한 선사들은 기금 설립 시기가 너무 늦다고 하소연한다. 선사들의 재정상태가 한계상황에 달한 까닭에 조속한 자금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회사채 상환액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대형선사들은 하루하루가 위기 상황이다. 장윤석 의원측은 이달 중으로 법안을 국회에 상정하면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빨라도 내년에야 기금 설립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 대형선사 관계자는 “해운보증기금이 내년에 도입된다고 하는데 현재 선사들은 하루가 급한 상황”이라며 정부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경희 차장 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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