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7 15:12

기획/ 불황 파고에 지친 해운업계 정부지원 목마르다

사흘 중 이틀은 BDI 1000선 밑돌아
정기선 숨통 틔었지만 향후 불투명성 여전

●●●2012년 한 해 선사들은 흑자 전환을 지상과제로 삼았다. 2011년에 대부분의 선사들이 대폭적인 적자의 쓴잔을 마신 상황에서 흑자를 내지 않으면 안되는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하는 탄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오히려 2012년 해운 시장은 유사 이래 최악의 불황기로 불릴 만큼 침체의 골은 더 깊고 넓었다. 궤를 같이 해 정부 지원에 대한 갈증의 목소리도 더욱 짙어지고 있다.

>> 2012년 세번이나 BDI 600선 추락

건화물선 시장은 평균 운임지수(BDI)가 1000포인트도 못 넘기는 처참한 결과를 맛봤다. BDI는 지난 24일 699를 찍었다. 2012년 들어 3번째로 600포인트대까지 떨어진 것이다. BDI는 1월31일~2월9일, 9월3일~9월18일 각각 600선으로 추락한 바 있다.

특히 2월3일엔 647로 사상최저치를 3년 만에 경신하며 해운업계를 충격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리먼 사태로 해운시장이 붕괴된 바 있는 2008년보다도 시황이 더 안 좋다는 게 벌크선 시장의 일반적인 평가다.

2012년에 BDI가 가장 높았던 때는 신정 연휴를 쉬고 시장이 처음으로 가동한 1월3일이었다. 이날 BDI는 전 영업일(2011년 12월23일)보다 114포인트나 하락한 1624를 기록했음에도 2012년 한 해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건화물선 시장 불황의 골이 지난해에 비해서 더 깊어졌음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다. 2012년 BDI 평균은 921을 기록했다. 연평균 BDI가 1000포인트를 넘지 못한 건 종전 BFI(Baltic Freight Index)를 대체해 발표되기 시작한 1999년 11월1일 이후 처음이다.

특히 1000포인트를 넘은 날이 전체 240영업일 중 79일에 불과할 정도로 건화물선 시장은 부진에 부진을 거듭했다. 사흘 중 이틀은 1000포인트대 아래에서 BDI가 움직인 셈이다.

그 결과 선종별 일일 운임도 평균 1만달러를 크게 밑돌고 있다. 24일 현재 케이프사이즈 일일 평균운임은 7600달러대를 나타내고 있다. 1년 전에 비해 무려 2만달러가 빠진 수준이다. 파나막스 운임은 3700달러대로, 1년 전에 비해 1만달러가량 떨어졌다.

수프라막스는 8800달러대로 1년 전에 비해 4천달러가량 하락했다. 수프라막스 운임은 그나마 하락 폭이 가장 적은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올해 건화물선대는 두 자릿수에 가까운 성장을 기록해 해운시황 침체에 기름을 부었다.

노르웨이 선박조사기관인 RS플라토에 따르면 11월 말 현재 전체 벌크화물선대는 6억7190만t(재화중량톤)으로 2011년 연말의 6억1230만t에 비해 9.7% 성장했다. 신조선 인도로 9340만t의 선박이 시장에 새롭게 들어왔으며 해체를 통해 3010만t의 선박이 사라졌다.

신조선 인도량은 2011년 연간 9990만t에 비해 6.5% 감소한 반면 해체량은 42.7% 성장했다. 시황 부진으로 신조선 인도량은 줄어들고 폐선은 크게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공급은 두 자릿수에 이르는 성장률을 나타냈다. 호황기 때 발주됐던 대규모 물량이 사상 최악의 해운 불황기에도 여전히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 정기선사, 선전했지만 적자로 마침표를 찍을 듯

정기선 시장은 벌크선 시장에 비해 다소 상황이 나았다. 2012년 상반기 선사들의 운임인상 러시가 주효했던 까닭이다. 상하이항운거래소에 따르면 상하이발 정기선운임(SCFI)은 2012년 초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2011년 12월 중순께 499달러(20피트 컨테이너)를 기록, 미국발 금융위기 시절 운임을 재연했던 상하이-북유럽항로 운임은 2012년 5월4일 1934달러까지 급상승했다. 무려 4배 가까운 폭등이다.

북미서안행 운임도 2011년 12월 1400달러대까지 하락한 뒤 선사들의 대대적인 운임인상에 따라 2012년 6월15일 2739달러까지 뛰어올랐다. 반년 만에 93%의 상승 폭을 보여줬다.

이 같은 운임회복 성공의 배경엔 선사들의 합종연횡과 선복 감축이 자리하고 있다. 2011년이 덴마크 머스크라인의 아시아-북유럽 노선 매일운항체제인 ‘데일리머스크’로 촉발된 시장 확대였다면 2012년은 수익성 확보가 선사들의 관심사였다.

세계 2위와 3위 선사인 스위스·이탈리아 MSC와 프랑스 CMA CGM가 머스크라인에 맞서 손을 잡은 것을 비롯해 현대상선이 가입해 있는 뉴월드얼라이언스(TNWA)와 그랜드얼라이언스(GA)가 G6으로 뭉쳤다.

한진해운이 속한 CKYH얼라이언스는 대만 에버그린과 공동운항체제를 가동했다. 그야말로 정기선 그룹의 ‘헤쳐모여’가 2012년 한 해 전방위적으로 벌어진 셈이다. 선사들은 서비스 제휴를 통해 서비스 범위는 확대하면서도 취항선박의 숫자는 줄여 전체적인 선복감축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운임회복으로 많은 정기선사들이 대폭적인 실적 개선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나라 현대상선과 칠레 CSAV가 각각 7분기와 8분기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으며 머스크라인 APL 한진해운 등 주요 정기선사들도 대부분 분기 흑자 성적표를 내놨다. 하지만 상반기의 심각한 적자로 인해 연간 실적에서 흑자를 거두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향후 시장 전망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선사들이 좋지 않게 보고 있는 형편이다. 운임이 계속 하락압력을 받고 있는 데다 향후 수요전망도 썩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중해항로는 이 지역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시장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지중해항로 SCFI는 이달 초 700달러대까지 하락했다. 비록 운임인상을 통해 일시적으로 1100달러선까지 회복했으나 상승탄력은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점쳐진다.

북미서안 운임도 11월 이후 크게 하락해 선사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 항로 운임은 9월까지 2700달러선을 유지하다 시나브로 하락해 11월엔 200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비수기에 접어들면서 수요약세가 표면화되고 있어 지속적인 운임하락 압력에 노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선사들은 이달 15일자로 40피트 컨테이너(FEU) 기준으로 400달러의 운임인상을 실시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됐다. 취항선사 한 관계자는 “비수기로 접어들면서 물동량 하락세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며 “선사들이 이달부로 운임인상을 실시키로 했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대부분 화주들과의 협상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비교해 북유럽항로는 중국발 물동량이 강세를 띠면서 모처럼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취항선사들은 극동-북유럽항로 소석률이 95% 이상을 시현하고 있다고 전한다. 화물이 넘쳐 다음 항차로 넘기는 선사들도 보인다.

선사들은 고무된 항로 분위기를 반영해 북유럽항로에서 1월1일부터 300~400달러 규모의 운임인상을 실시할 예정이다. 계획한 인상폭이 시장에 안착할 경우 한국발 북유럽항로 운임은 1300달러 수준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내년도 해운시장도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게 해운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내년 정기선 시장 물동량은 6.3% 증가하는 반면 공급은 7.5%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물동량 성장률은 올해의 4.6%에 비해선 다소 높은 편이나 호황기의 두 자릿수대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반면 공급증가율은 2012년의 7.4%에서 견조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여 공급과잉에 대한 불안감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 건설사엔 P-CBO 수조원 지원했는데…

극심한 불황에 빠져 있는 해운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이나 미국 일본 영국 등은 국수국조 정책이나 융자보증제도, 선박투자촉진회사, 해양산업 성장전략 등의 지원정책을 통해 해운산업을 밀착지원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 정부가 공상은행을 통해 150억달러 규모의 신용대출과 5년만기 14억달러 규모의 채권 발행을 자국 1위 선사인 코스코에 지원한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위 선사인 차이나쉬핑은 중국인민은행으로부터 7억달러의 신용대출을 받기도 했다.

세계 1위 컨테이너선사인 머스크라인은 62억달러의 금융차입을 지원받았으며 CMA CGM과 하파그로이드도 정부 지급보증을 통해 15억~17달러 규모의 은행대출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싱가포르 NOL이나 이스라엘 짐라인 등도 정부 지원을 통해 유동성난의 파고를 넘어섰다.

정부가 해운업계의 유동성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P-CBO(채권 담보부 증권) 발행을 지원하고 선박담보대출 시 LTV(자산담보인정비율) 적용을 유예토록 해야 한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정부는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건설사를 대상으로 수조원 규모의 P-CBO 발행을 지원한 바 있다. 또 현재 시행중인 패스트트랙에 제2금융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유도하고 선박 대출비중도 높여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도 들린다.

자산관리공사(캠코)의 선박매입프로그램 기한을 연장하고 매입시 가격을 장부가로 변경해 대출규모와 중소선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해운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요구들은 해운산업 주무부처와 금융당국간 의견 조율 실패로 정책입안 단계까지 진전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반가운 건 국토해양부에서 해운시장에 특화된 해운보증기금을 설립키로 했다는 것이다.

국토부 전기정 해운정책관은 최근 “해운시장에 특화된 공적보증을 제공하는 해운보증기금을 설립하고 내년에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추진해 2014년 말로 끝나는 일몰 기한을 연장하는 한편 톤세제의 기여부분이 해운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해운산업 전체로 확대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당선인이  해양수산부 부활을 공약으로 내건 가운데 일원화된 해양부처 출범으로 해운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될 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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