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벌크선을 중심으로 한 해운시장은 사상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올해 평균 건화물선운임지수(BDI)가 1000포인트도 안 된다는 점에서 벌크선 시장의 극심한 침체를 체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특화된 시장으로 분류되는 자동차선 시장은 어떨까? 자동차선 시장은 벌크선이나 컨테이너선에 비해 부진의 늪이 깊지 않았다는 평가다.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수송선사인 유코카캐리어스는 국내 선사 절반이 적자를 기록한 지난해에도 1천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두며 안정적인 경영을 이어갔다.
유코카캐리어스는 최근 10주년을 맞았다. 이 선사는 세계적인 자동차 전문수송선사인 스웨덴 왈레니우스와 노르웨이 윌윌헬름센 등 외국계 자본이 80%를 투자해 지난 2002년 설립된 외국인투자기업이다.
유코카캐리어스는 매출액 규모 2조원을 돌파하며 국내 4위 해운사로 성장했다. 자동차 수송 하나만으로 이 같은 실적 성장을 거둔 것에서 자동차선 시장의 저력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국내 자동차선 시장도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로 자동차 물량 성장이 둔화된 데다 선사들의 경쟁은 치열해져 실적 악화가 전망되고 있다.
美발 금융위기 시황 휘청…회복 중
자동차운송시장은 컨테이너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자동차가 다른 화물과 마찬가지로 생산지역과 판매·소비지역이 다른 까닭에 이들 지역을 연결하는 항로가 주요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아시아-북미, 아시아-유럽, 유럽-북미가 자동차선 시장의 핵심항로로 이들 항로는 현재 정기선 개념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무역 특성상 일본발 북미·유럽행 노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기업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높은 까닭이다. 이는 곧 일본 선사인 NYK나 MOL 케이라인 등이 자동차선 시장에서 빅3로 군림하게 하는 이유가 됐다.
컨테이너선 시장과 다르다면 경쟁이 제한적이란 점이다. 벌크선이나 컨테이너선 시장이 수많은 선사들이 경쟁하는 이전투구의 장이라면 자동차선 시장은 세계적으로 선사수가 열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다. 일종의 전용선 시장인 셈이다.
선복량으로 따져 일본 기업들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NYK가 자동차선 100척 수송능력 57만2천대(CEU)로 1위를 지키고 있으며 MOL은 78척 45만대로 2위, 케이라인은 71척 36만2천대로 4위에 각각 올라 있다.
우리나라 유코카캐리어스는 척수는 케이라인보다 적은 65척이지만 수송능력은 40만9천대로 3위선사에 랭크돼 있다. 이밖에 노르웨이계 왈레니우스윌헬름센로지스틱스(WWL)가 49척 32만3천대, 호그오토라이너스가 47척 28만5천대로 뒤를 잇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 해상물동량은 미국발 금융위기 급감했다가 다시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클락슨에 따르면 자동차 해상물동량은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9.9%의 성장률을 보였다. 2004년 1630만대였던 자동차 물동량은 2008년 2230만대로 확대됐다.
물동량 성장으로 선사들의 신조발주도 크게 늘어났다. 특히 시황 고점이었던 2007년엔 106척의 신조선이 발주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전체 선대 대비 신조발주량 비율은 2004년 23.3%에서 2008년 47.9%로 크게 확대됐다.
이런 가운데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물동량은 급전직하로 감소했으며 선복과잉은 심해졌다. 2009년 자동차 물동량은 1490만대를 기록, 1년 사이 67%나 감소하며 200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물동량 감소로 해운시장도 요동을 쳤다. 2009년 자동차전용선 계선량은 전체의 15%까지 확대됐으며 111척이 폐선의 수순을 밟았다. 이전 10년 동안 자동차선 폐선량이 41척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 선사들의 어려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폐선 평균 선령은 2007년 34년에서 2008~2009년 29년으로 대폭 낮아졌다. 2009년에 신조선이 63척이나 인도됐지만 대규모 계선과 폐선으로 328만대 규모였던 자동차선대 선복량은 2010년 초 310만대로 5.6% 감소했다.
2010년엔 미국의 자동차 수입이 다시 확대되면서 자동차선 시장도 회복의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선복도 같이 늘어나면서 운임상승엔 한계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2010년 자동차 물동량은 1825만대로 22.5% 늘어났다.
공급에선 폐선량은 줄어든 반면 금융위기 이전 발주됐던 59척의 신조선이 시장으로 들어왔다. 2011 초 전 세계 자동차선대는 322만대로 4.1%가량 늘어났다. 2009년 초 수준을 회복한 셈이다.
지난해에도 자동차 물동량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선복 공급은 소폭에 그쳐 선사들이 선복과잉에 고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지난해 전 세계 자동차 물동량은 1971만대를 기록, 1년 전에 비해 8% 성장했다.
물동량 성장에도 불구하고 신조선 발주는 5척에 그쳐 200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글로벌 자동차 해상 물동량은 성장세를 지속하며 2000만대를 다시 넘기겠지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자동차선대 규모는 5.8% 늘어난 것으로 추정돼 녹록치 않은 시황 전개를 예감케 한다.
다만 긍정적 신호는 엿보인다. 미국이 최근 자급자족 형태에서 수입량 확대로 정책전환을 하고 있는 데다 러시아나 중국 브라질 등 브릭스 국가들이 자동차 수입을 늘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 브라질의 자동차 수입량은 지난해 36% 28% 40% 확대됐다.
게다가 신조선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현재 자동차선 신조발주량은 45척에 불과하다. 최근 글로벌카캐리어 레이쉬핑 시엠카캐리어스 등이 자동차선 발주를 가동했다.
2000년대 이후 컨테이너화 추세가 확대되면서 선사들이 화물 다변화를 모색했으며 선박도 대황화됐다는 점도 자동차선 시장의 특징이다. 자동차선사들은 승용차전용선(PCC)에서 승용차트럭전용선(PCTC)으로 선대 개편을 도모했다.
주력 화물이었던 일반 승용차가 시나브로 컨테이너선으로 빠져나가면서 트럭이나 대형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PCTC로 갈아탄 까닭이다. 그 결과 화물품목도 일반 승용차 뿐 아니라 버스 트럭외에 트레일러를 이용한 기계, 건설중장비까지 확대됐다. 승용차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브레이크벌크나 대형중량물도 중요한 수송화물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자동차수송시장 유럽계가 장악
국내 자동차 수송시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금융위기 동안 자동차 수출량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가 최근 2년 사이 다시 회복하는 추세다.
다만 우리나라 자동차 기업들은 지난해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에다 도요타의 급발진 문제로 일본 자동차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은 데 따른 반사이익을 누렸다. 국내 자동차 수출을 수송하는 자동차수송선사들도 혜택을 봤음은 물론이다.
국내 자동차수송시장은 유럽계 선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왈레니우스웰헬름센로지스틱스, 호그오토라이너스, 시엠카케리어스 등 국내에 진출한 자동차선사들이 모두 노르웨이계다. 국적선사인 유코카캐리어스도 노르웨이계 왈레니우스윌헬름센이 투자했다.
일본계인 NYK나 MOL 케이라인 등은 노르웨이계 선사들에 비해 국내 점유율이 낮은 편이다. 이스턴카라이너도 한국에 지사를 두고 한 달에 2~3회 주기로 울산과 평택에 자동차선을 띄우고 있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물류자회사인 글로비스도 지난 2009년 이후 자동차선을 직접 수송하며 해운시장에 뛰어들었다.
국내 자동차기업들의 수출량은 미국발 금융위기 시절 크게 감소했다가 다시 상승하는 추세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수출량은 지난 2007년 284만대에서 2008년 268만대 2009년 214만대로 크게 줄어든 뒤 2010년에 29% 급성장하며 277만대로 회복했으며 지난해엔 13.7%의 증가율로 315만대를 기록, 처음으로 300만대 고지를 넘어섰다.
올해에도 성장은 계속 이어졌지만 성장률은 크게 둔화됐다. 지식경제부는 올해 자동차 수출량을 320만대로 추정했다. 1.5% 증가에 그치는 것이다. 지경부는 내년 물량은 올해보다 3.1% 늘어난 330만대로 전망했지만 현장에선 올해보다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해 하반기 이후 부진을 보였던 일본계 자동차 메이커들이 이전 명성을 되찾고 있는 데다 원화 강세로 시황 불투명성이 커진 까닭이다. 게다가 르노삼성은 지난해 이후 실적 부진이 두드러지면서 선사들의 영업실적 동반 악화를 야기했다.
노조 파업으로 자동차기업들이 생산에 차질을 빚은 것도 실적 악화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현지생산을 늘리고 있는 것도 부정적이다. 선사들은 공급과잉이 몇 년 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자동차선사 한 관계자는 “유럽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최근 원화강세까지 더해지면서 물동량 감소세가 뚜렷해지고 있다”며 “시황 악화로 극동과 유럽을 오가던 서비스를 한 항차 줄였다”고 말했다.
자동차 물량의 부진으로 선사들은 공작기계나 플랜트 등 중량화물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자동차선사들의 화물 중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50~70%가량이다. 나머지는 특수 중량물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국내 EPC(설계·구매·시공) 기업들이 해외 플랜트 시장에 대거 진출하면서 관련 화물 수송에 참여를 노리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중량물 선사와의 경쟁으로 이 또한 녹록치 않다.
외국계선사 관계자는 “내년 한국발 자동차선 시장은 도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전통적으로 대형차 수요가 높은 미국이 경차 수입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비위축을 점쳤다.
“미국이 자동차 수입수요를 다시 늘리고 있는 건 긍정적이지만 경차 비중이 많이 늘고 있다”며 “경차 수요가 많다는 건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줄이겠다는 걸로 볼 수 있는데, 미국에서 경차가 늘어난 건 올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유코카캐리어스의 현대기아차 물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한다는 점도 경쟁 악화를 부추길 것으로 전망된다. 유코카캐리어스는 2009년까지 현대기아차 수출자동차 전량을 수송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2010년 75% 2011년 70% 등으로 유코카캐리어스에 싣는 물량 비중을 줄여가고 있다. 유코카캐리어스는 올해부터는 현대차 물량의 60%만을 싣고 있다. 줄어든 물량은 고스란히 글로비스로 넘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유코카캐리어스는 줄어든 물량을 만회하기 위해, 글로비스는 3자물류 시장 비중을 늘리기 위해 각각 제3의 자동차메이커 물량 확대에 나서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국지엠이나 르노삼성 쌍용자동차의 물량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호그오토라이너스나 WWL 이스턴카라이너스 시엠카캐리어스 등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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