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선하증권상 히말라야 약관의 효력과 적용범위
(1) 히말라야 약관의 의의와 유효성
히말라야 약관은 통상 해상운송인의 이행보조자나 사용인 또는 대리인이 해상운송인이 갖는 면책권이나 책임제한권 등의 이익을 주장하거나 원용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로 규정된 선하증권상의 약관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히말라야 약관이란 용어는 영국의 히말라야호 사건에서 유래됐다. 즉, 위 사건에서 여객선 히말라야호에 승선했다가 상해를 입은 Mrs. Adler가 위 여객선의 선장과 갑판장의 과실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피고인 선장과 갑판장은 승선권에 기재된 운송인의 면책약관을 원용할 수 있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영국법원은 면책약관에 그 면책약관이 운송인의 사용인 또는 대리인에게도 적용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위 항변을 배척했는데 이후 운송인은 선하증권에 이러한 내용의 약관을 규정하게 됐고 이러한 약관을 선박명을 따서 히말라야 약관이라 부르게 됐다.
이러한 히말라야 약관은 세계 주요 해운국에서 그 유효성이 인정되고 있으며 헤이그 비스비규칙도 동 규칙 제3조에 이를 규정했다.
(2) 히말라야 약관과 상법 규정과의 관계
상법 제798조 제2항은 헤이그 비스비규칙의 규정을 수용해 운송물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가 운송인의 사용인 또는 대리인에 대해 제기된 경우에 그 손해가 그 사용인 또는 대리인의 직무집행에 관해 생긴 것인 때에는 그 사용인 또는 대리인은 운송인이 주장할 수 있는 항변과 책임제한을 원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인 또는 대리인’이란 고용계약 또는 위임계약 등에 따라 운송인의 지휘·감독을 받아 그 업무를 수행하는 자를 말하므로 일반적으로 운송인의 지휘·감독과 관계없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사업을 영위하는 독립적 계약자는 이에 포함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독립적 계약자는 위 상법 규정에 근거해 운송인의 항변과 책임제한을 원용할 수는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우리 상법상 운송인의 사용인 또는 대리인은 히말라야 약관이 없더라도 위 법조항에 기해 운송인의 항변이나 책임제한을 원용할 수 있으나 독립적 계약자는 히말라야 약관에 그 수혜자로 규정되지 아니하는 한 운송인의 항변이나 책임제한을 원용할 수 없게 된다.
한편 운송물의 손해가 운송인의 사용인 또는 대리인의 고의 또는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작위나 부작위로 인해 생겼을 때에는 이들은 운송인의 항변이나 책임제한을 원용하지 못한다(상법 제798조 제2항 단서). 또한, 위 규정은 운송물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가 운송인 외의 실제 운송인 또는 그 사용인이나 대리인에 대해 제기된 경우에도 적용된다(상법 제798조 제4항).
(3) 독립적 계약자와 히말라야 약관
독립적 계약자란 운송인의 사용인 또는 대리인이 아닌 자로서 운송인의 계약의 이행을 보조하는 자를 말한다. 이러한 독립적 계약자에는 실제 운송인과 그 밖에 하역업자, 부두경영자 또는 창고업자 등이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상법은 독립적 계약자가 운송인의 항변이나 책임제한을 원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관해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통설 및 판례는 히말라야 약관에서 명시적으로 독립적 계약자에게 운송인의 항변과 책임제한을 원용할 권리를 부여한 경우에는 이러한 히말라야 약관은 유효하고 따라서 독립적 계약자도 이에 기해 운송인의 항변과 책임제한을 원용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4) 대법원 2007년 4월27일 선고 2007다4943 판결
위 대법원 판결은 히말라야 약관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한편 독립적 계약자인 터미널운영업자에게도 히말라야 약관이 적용될 수 있음을 판시했다. 그러나 히말라야 약관의 구체적인 적용범위와 요건에 대해는 밝히지 않고 있다.
(5) 서울고등법원 2009년 2월5일 선고 2008나7774 판결
위 사건은 운송물을 수입한 리스회사와 리스이용자가 운송물의 손상에 대해 해상운송인 및 하역업자(또는 육상운송인)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건으로 1심에서는 하역업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전액 인정했으나 항소심에서는 하역업자에 대해도 해상운송인과 마찬가지로 포장당 책임제한을 적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 책임을 제한했다.
위 판결은 하역업자에 대해도 히말라야 약관의 적용을 인정한 것인데, 원고의 상고에 대해 대법원이 심리불속행각하결정을 함에 따라 판결이 확정됐다.
히말라야 약관은 해상운송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이를 육상운송이나 복합운송의 경우까지 확대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위 사건은 해상운송구간이라기보다는 육상운송구간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한 것으로 보이고 피고들도 하역업자라기보다는 육상운송인의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판시와 같이 해상운송인으로부터 화물인도지시서까지 발급된 이후에 육상에서의 화물운반과정에서 발생된 손상이라면 화물은 이미 해상운송인의 점유관리를 벗어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판결은 화물손상이 해상운송도중 발생한 것임을 전제로 피고들이 단순히 하역업자로서 해상운송인의 이행보조자역할을 한 것으로 판결했던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화물의 인도시점 및 해상운송인의 책임범위, 히말라야 약관의 적용범위, 이에 관련한 피고들의 법적지위를 오인·혼동함으로써 그릇된 결론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6) 결어
히말라야 약관의 유효성은 우리나라 학설 및 판례에 의해 인정되고 있으나 그 적용범위에 관해는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해상운송과정에서 발생하지 아니한 손해에까지 히말라야 약관을 확대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며 독립계약자에 대해 히말라야 약관을 적용하기 위해는 약관에 그 개개의 독립계약자가 적용대상으로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아니한 경우에는 운송인이 이러한 약관에 대한 설명의무를 다했는지 여부가 검토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2010년의 위 대법원 판결은 히말라야 약관을 들어 선하증권 당사자 아닌 자에게까지 중재조항의 존재를 의제함으로써 히말라야 약관의 인적 적용범위에 대해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IV. 결어
위 대법원 판결이 히말라야 약관을 근거로 선하증권 계약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 대해 중재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의제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전통적인 중재법리에 의하면 중재합의는 당사자간의 서면에 의한 중재계약의 존재를 전제로 그 효력이 인정될 수 있다. 또한 중재조항을 히말라야 약관에 따라 원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도 운송인의 면책권이나 책임제한권을 원용할 수 있도록 한 히말라야 약관의 본래의 취지에도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히말라야 약관은 이를 원용하는 자의 고의, 무모한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한 경우는 운송인의 항변권을 원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법리이므로 고의, 무모한 작위 여하에 따라 중재합의의 존재 여부가 달라지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나아가 위 대법원 판결은 만일 원고가 선하증권 당사자 아닌 나카하라 쉬핑만을 상대로 중재조항에 따라 중재신청을 하고 나카하라 쉬핑이 중재절차에서 중재조항을 원용하지 않고 중재합의의 부존재를 주장하는 경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합리적 결론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부분 향후 연구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끝>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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