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05 10:03

이호영칼럼/ 국물문화

이호영 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

이호영 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

우리가 외국에서 장기체류를 할 때 가장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내 경우엔 아침에 무언가 따뜻한 국물을 마시고 싶은 갈증이었다. 그 전날 술이라도 한 날은 이것이 더했다. 내가 일본에 연수 차 나가 있을 때는 아침마다 일본 사람들이 미소된장국을 마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와 비슷한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한편 미국에서 장기체류를 할 때에는 호텔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는 일본 라면가게로 가 국물 있는 라면을 종종 먹곤 했다.

젊은 시절 어떤 때는 일 년에 반은 외국을 돌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이 때 세계 각국의 음식을 고루 먹어볼 기회가 있었지만 우리나라처럼 국물문화가 발달된 곳은 본 적이 없다. 물론 서양 사람들도 ‘스프’가 있어서 이것도 국물이라면 국물이고, 일본사람들도 ‘다시’라고 하는 국물을 즐겨든다. 하지만 우리나라 같이 국이라 해서 밥을 말아먹을 정도로 많은 양의 국물을 먹고, 찌개라고 해서 커다란 냄비 째 상 한 가운데에 올려놓고 온 식구가 수저로 함께 떠먹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유일한 풍경이다.

자연히 나는 ‘왜 이런 특별한 국물문화가 우리에게 성행하게 됐는가’를 생각해봤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우가 귀했던 농경사회였고 우리에게 소고기는 매우 귀한 가치였다. 열 식구 가정에 소고기 한 근을 사와도 이것을 구어 먹으면 한 사람에게 한 조각 정도 밖에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으로 국을 끓여 한 그릇씩 돌린다면 온 가족이 한 끼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혹여 작은 조기라도 몇 마리 있으면 이것으로 짭짤하게 찌개로 만들어 여럿이 나눠먹으면 한 끼 식사를 풍족하게 나눌 수 있는 지혜, 이런 나눔의 정신에서 우리의 식문화는 발달돼 왔다고 결론지었다. 이렇게 우리의 국물문화가 발달돼 오면서 식구끼리 스스럼없이 국물음식을 나누며 정도 나누고, 때론 가까운 사람들끼리 경쟁심까지 느껴가며 한정된 음식을 더욱 맛있고 풍부하게 즐겨왔던 것이다.

반면 일본사람들은 국물을 마실 때 각자의 그릇에 제 몫을 조금씩 떠서 따로 마신다. 이 점은 서양의 스프도 마찬가지. 그래서 우리가 한 그릇에 각자의 수저를 넣어서 함께 먹는 것을 보면 비위생적이라는 말들을 한다. 물론 위생적인 면에서는 불합리한 점은 있지만 우리의 의식 구조상으로는 동질성과 신뢰성을 확인시켜주는 의미가 있고, 이 의미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한편 우리에게 이렇게 소중한 국물은 때론 다른 의미로도 쓰인다. 가령 “나한테는 국물도 좀 없냐?” 하는 말은 나한테 적은 몫이라도 좀 나눠줄게 없느냐는 말인데 이때의 ‘국물’은 주로 정당한 대가를 의미하기 보단 좋지 않게 얻는 수입을 말하는 것이다. 금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함께 있으니 도처에 이러한 ‘국물’이 넘쳐날 것이고 이를 쫓는 사람들도 열을 올릴 것이다. 이러한 ‘국물’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한식이 진정으로 세계화되려면 우리나라 고유의 나눔의 상징인 국물과 찌개를 어떻게 세계인에게 먹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비빔밥이 서로 다른 나물을 한 곳에 넣고 비벼먹는다는 점을 단지 영양적인 면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함이 한 데 섞여 시너지를 만든다는 점까지 함께 부각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모두의 지혜를 모은다면 우리의 한식문화, 그 중에서도 국물을 즐기는 유일한 식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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