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10 14:03

KSG에세이/ 바다의 날에 즈음, 해양문학 산책 - (2)

서대남 편집위원

“바다는 언제 잠드는가?”
외항선장 고 김성식(金盛式) 시인 - (중)

김성식 외항선장 시인은 그의 대표작 ‘청진항’이란 시로 신춘문예를 통해 등극을 한 바와 같이 생전에 고향땅 청진을 무척 그리워했다고 한다. “배를 타다 싫증나면 까짓것 청진항 도선사가 되겠다”고 읊조리던 남편은 끝내 청진항에 닻도 내려보지 못한채 세상을 떴다고 김시인의 미망인 주정숙씨는 “화장한 뼛가루라도 그곳에 갔을까?”라며 평생 바다에 나가 떨어져 있다가 그마저 겨우 회갑의 나이에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갈을 훌쩍 떠나버린 김시인 최후를 애통해하며 못내 아쉬워했다고 가까운 해운계 지인들은 전한다.

평생을 한결같이 시작(詩作)과 항해만을 일삼으며 살다가 타계한 김시인은 그의 시 쓰기를 일러 “바다보다 큰 허무속에잠겨있는 절망을 길어 올리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영원한 뱃사람 김성식 외항상선 선장 시인. 그는 휴가로 배를 내려 뭍에 있을때 오히려 배 멀미를 할 정도로 바다에 대한 애정과 신념이 대단했다는게 한 배를 탔던 동료들 얘기다.


33년간 船上생활후 죽어서 바다에 묻히는 순간까지 海洋詩

해양시인 김성식선장 추모사업회 사무국장으로 추모 시화전과 시비건립 등을 도와 온 한국해기사협회 기관지 월간 해기(海技 - 海바라기)의 편집국장 김동규(金東奎) 수필가는 항상 마도로스 모자를 눌러쓰고 너털웃음을 달고 다니던 김선장도, 김시인도 가고 없지만 세계의 바다에 복원할 수 없는 숱한 행적을 남긴채 바다의 사나이, 그는 근현대 한국선원사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고 김시인을 회고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 현대문학사에 해양시를 정착시켰고 우리 문학사에서 해양문학사의 성립이 가능케 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고 김성식 시인의 문학세계를 조명하고 연구한 책자가 몇 해 전 한국해대 국제해양문제연구소에서 ‘해양시인 김성식 선장’이란 제하의 문고로 출간된 바 있다. 이 책은 김시인과 해양시를 사랑하고 기리는 문학평론가 한국해대 구모룡교수가 쓴 ‘김성식의 삶과 문학’, 김경복 경남대교수의 ‘김성식 해양시의 양상과 그 의미, 옥태권 소설가의 ‘김성식의 해양문학사적 위상과 의의’ 등 3개장으로 이뤄져 있다.


해양문학 장르 개척·정착시킨 불후의 기념비적 작품 즐비

이들 몇몇 작가들이 부산 시단의 일원으로서 한국 문단에 해양시 문학을 씨뿌려 심고 가꾼 김시인의 문학적 업적과 삶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최초의 간행물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고 화제도 모았었다. 또 세편의 글은 모두 김성식 선장시인의 삶과 문학과 함께 해양시인 김성식의 문학이 어떤 측면에서 기념비적이고 세계적인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점을 소상히 밝히는데 레이저처럼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구 교수는 “그는 한국해양문학사를 가능하게 한 시인이면서도 해양문학과 해양문화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며 “김성식은 해양 문학사적으로 높이 평가받기에 충분한 시인”이라고 호평에 인색하지 않았다.

김교수는 또 김성식의 시가 단순히 바다를 무대로 할 뿐 아니라 해양의 리얼리티를 확보함으로써 해양시의 구체성과 현실성을 담보하고 질적으로도 한층 위상을 높혔다고 강조했다. 참고로 ‘해양시인 김성식 선장’ 문고의 내용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고 우선 그 목차만이라도 일별해 보며 김시인의 문학세계를 집약적으로 압축해서 김시인의 속삭임을 엿듣는다.


< 목 차 >
해양문화문고 간행사/책머리에

1장 김성식의 삶과 문학
1. 어린시절 그리고 아버지 김철수
2. 동경과 그리움, 문학의 길
3. 바다로 열리는 청년의 희망
4. 해양문학- 해양시의 새로운 지평

2장 김성식 해양시의 양상과 그 의미
1. 김성식 시의 문학사적 위치
2. 해양체험의 구체화와 강렬한 남성적 어조
3. 물의 상상력과 힘의 바다, 그리고 혼의 비상
4. 세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민중의 애환과 서사 지향성
5. 분단의 한과 고향의 의미
6. 마무리- 본격적 해양시의 도약대

3장 김성식의 해양문학사적 위상과 의의
1. 들어가며
2. 본론
3. 결론을 대신하여
[자료 :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그리고 독한 술은 사내들 가슴, 심장 속에다 길들이지 못하는 바닷물이 되어 식도를 때린다고 읊은 그의 또 하나의 대표작 '바다는 언제 잠드는가' 에서 "잠들기 원해 돌아가지만 폐유에 잠겨 흔들리는 질척한 갯벌을 밟으면서 어느틈엔가 호주머니 깊숙이 잡아둔 말들이 슬금슬금 기어나와 파도를 만들고 바람만들어 또다시 수평선 너머로 달려가기 위해 새벽바다를 일으켜 세운다. 잠들지 못해 밤새 뒤척이던 바다를 일으켜 세운다" 는 표현에 이르서는 잠이 없는 바다를 원망하는 산문체의 서정을 느끼게도 한다. 또한 그는 생시 자기를 낳은 부친이 납북작가 김철수씨라는 아픔을 늘 가슴에 안고 살았으리라.


< 바다는 언제 잠드는가 >

여수만 바닷물이 시커멓게 죽어가던 날
모래밭은 더욱더 썩은 내를 풍기면서
사내들을 불러들였다.
외항선 마스트를 가로지른
암울한 바윗덩이 아래로
박토에 깔려버린 바닷사내들이
저마다
폐경기의 저녁바다를
한 웅큼씩 퍼올려
포장마차, 색 바랜 커튼 사이로
밀어 넣곤
한 잔 소주를
말로써 서로 채우고 있을 때
독한 술은
사내들 가슴, 심장 속에다
길들이지 못하는
바닷물이 되어
식도를 때리고 있었다.

한번 수평선 너머 떠나보낸 말들은
푸른 살 속의 해초로 자라던가
물고기의 비늘로 떨어져
아라프라 해변의
섞은 침목의 이끼로 떠돌던가
중남미 정글을 누비던
게릴라 발바닥에 눈물로 젖었던가
남지나해 떠다니는 유령선
난민이 되었다가 돌아온다

혓바닥 되어
여수만의 기슭을 핥아 말 못하는
파도가 되어 돌아와
포장마차 속을 넘쳐 흐르면
사내들은
취한 팔다리를 흔들며
돌아온 말들을
조심스레 포켓에 찔러
제 그림자를 걷어 돌아간다

잠들기 원해 돌아가지만
폐유에 잠겨 흔들리는
질척한 갯벌을 밟으면서
돌아가지만
어느 틈엔가
호주머니 깊숙이 잡아둔 말들이
슬금슬금 기어나와
파도를 만들고
바람 만들어
또다시 수평선 너머로 달려가기 위해
새벽 바다를 일으켜 세운다

잠들지 못해
밤새 뒤척이던 바다를
일으켜 세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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