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6 15:29

KSG에세이/무늬만 海技士 평생을 짝퉁으로 살며 얻은 벼슬 “해운계 甘草” (28)

서대남 편집위원
G-5 海運韓國을 돌이켜 보는 추억과 回想의 旅路 - (28)


비록 제 낯 깎는 일이긴 하나 가족 및 집안 이야기 또는 상당한 프라이버시에 관한 내용이 될 지라도 진득하게 오래 맘 속에 담아 두지를 않고 아무에게나 무차별 까발리는 습성을 가진 필자인지라 퇴임하게 됐단 별로 영예롭지 못한 화제를 무슨 큰 벼슬이라도 한 듯 친구들과 형제간 친지는 물론 온 동네 방네에 이르기까지 알리기에 바빴다.

한결같이 57세의 나이라면 약간의 아쉬움이 없는 바는 아니로되 요즘 같은 직장 세태에 천수를 누린 자연사(?)에 해당된다는 위로와 더불어 모두가 나이든 애비가 벌고 젊은 자식이 빈둥대기 보다 절묘한 시점에서 부자지간에 순리적으로 근로 승계를 하게 된 것을 큰 행운으로 자위하라는 간곡한 당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98 퇴임과 동시 “群山港業” 부사장직 맡아 직장생활 再開

그런데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생긴 것일까? 일산을 관할하는 노동관련 관서가 의정부에 있는 터라 어느 날 실업수당을 신청하러 가는데 말로만 듣고 가 본 적이 없는 멀리 군산에서 난데없이 한통의 낯 선 전화가 걸려 왔다. 해운전문 여러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보니까 필자가 퇴임을 한다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당장 한번 찾아와 상의를 하고 싶다는 면담 요청이었다.

퇴직 예정자를 상대로 목숨 같은 퇴직금 투자 유혹이나 갈취 및 사기 또는 다단계 판매회사들이 연고판매를 위해 판매 상무 모셔가기 숫법 등등 여러가지 뻔하고 험한 일들이 빈번하던 때라 조심스럽긴 했다. 필자야 걸친 옷 한벌 외에는 맨 몸이라 크게 밑질 일이야 있으랴 싶어 말 난 김에 당장에 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들여 다음날 3호선 전철 일산 신도시 주엽역 근처에서 첫 대면을 했다.

필자보다는 한살 위로 병무청을 거쳐 해항청의 지방청 근무를 마지막으로 옷 벗고 퇴임한 관리 출신의 사장 C씨라고 소개했다. 일면식도 없었으나 필자와 잘 아는 해운관서 전 현직 관리들과도 가까웠고 그들과 함께 근무한 스토리를 듣고보니 손바닥 보듯 빤한 바닥이라 금방 알 만 했으며 첫 눈에 친밀감이 생겼고 마음씨나 인상이 신뢰와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고 마음 여린 호인이었다.

그간 익힌 해운과 항만쪽의 행정경험을 밑천으로 높잖은 벼슬이었지만 현지 후배들로부터의 전관예우에도 기대를 걸고 외항선박 입출항 현장의 각종 항만운송 부대사업인 항계내업 면허를 취득하여 경영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선박회사들의 본사가 거의 서울에 모여 있으니 지방에서 용역 오더를 따 내는 소위 영업활동의 원격 커버가 힘들어 해운계에서 퇴임하는 쓸만한 용병을 구하려 눈독을 들이고 있던 참에 필자가 선택 물망에 올랐던 모양이었다.

하긴 지방의 말단 업종에 종사하는 영업팀들이 서울의 중대형선사 중역이나 팀장급을 만나 영업하기가 쉽지 않아 뺏고 뺏기고 먹고 먹히는 공방전에서 일감을 따고 말고는 차치하고 담당부서 테이블까지의 진격(?)이나 면담만이라도 성사시키는 일마저도 힘들고 보니 우선 그 벽만이라도 넘기 수월한 전위병 조커로 필자를 찍은 것이리라.

港界內業 “지방대리점, 라싱, 줄잡이” 등 영업업무 첫 경험

현장 작업은 생소했지만 군산항에서 지방해운대리점 업무와 라싱(고박) 강취방(줄잡이/ Line handling) 등등 항계내업이라면 본부에서나 부산에서 오랫동안 관계해 오던 업무라 크게 힘들 게 없다고 생각됐다. 늦은 오찬에 반주를 곁들인 첫 만남의 술자리 즉석에서 서울 근무를 원칙으로 한달에 두번 정도만 군산항에 내려가 작업 현장을 둘러보고 업무협의를 하는 조건으로 K항업 부사장직을 수락했다. 상무에서 전무 안거치고 부사장으로 특진(?)을 한 셈이었다.

급여와 대우는 주는 대로 받고 차량 운영비와 활동비용은 지출 영수증으로 청구하며 필자가 수 틀리면 언제고 그만 둘 수 있고 회사도 싫으면 하시라도 해고할 수 있게 하자는 필자의 즉흥적이고 일방적인 근로계약조건 제시에 C사장도 쾌히 동의하고 인생 재활용 연장의 기념 축배를 들었다. 재학중 교생으로 D상고에서 교단에 섰던 짧은 경험까지를 합해 네번째 밥벌이를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서둘러 부산에 내려가 싸 뒀던 살림살이를 싣고 타이탄 조수석에 앉아 막상 “영도구 동삼동 주공 아파트여 안녕!” 을 고할 시간적 여유도 못 누리고 갑자기 당일치기로 이삿짐을 옮겼고 며칠 쉴 겨를도 없이 다시 새로운 업무를 접해야 하는 두려움과 긴장감을 맛 봐야 했다.

30년이 넘은 직장생활 중 영업이라곤 전혀 해 본 경험이 없는지라 뭣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 지 망막했으나 우선넉넉히 명함을 만들어 두둑이 지니고 다니며 서울을 떠나 3년이란 갭이 있기는 했지만 선사들을 찾아 다니며 “새로운 업무를 시작했으니 앞으로 잘 봐 달라”고 코가 땅에 닿도록 큰절을 올리고 광고 전단지 뿌리듯 K항업 명함을 건네며 열심히 신고를 하러 다녔다.

퇴임과 동시에 이 나이에도 간단없이 활동을 연장한 것이 후배들에게도 그들의 자화상을 미리 앞당겨 비춰보는 “평생 일하는 자세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며 칭찬과 함께 모두들 격려를 해 줘서 그래도 그간 이 바닥에서 인심을 잃거나 세상을 아주 헛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무엇이 그리 급해서 며칠간의 휴식도 없이 막 바로 다시 돈벌이에 나서냐며 언감생심에 측은지심으로 우정어린 핀잔을 주기도 했다.

스스로 외항해운 종신 弘報大使 자처, 작업복 입고 줄잡이도

또 몇몇 절친한 업계 후배들은 “형님! 쌀이 떨어져 이렇게 얼굴 팔며 일거리 동냥하러 다니시는 거라면 저희들이 매월몇 푼씩 갹출해서 생활비 보태 드릴테니 그간 쌓아 온 체면 구기지 마시고 당분간은 쉬시구려!”하며 동정인지 염려인지 각별히 관심을 표명하는 데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럴때 마다 필자는 “여러분이 이 바닥에서 아무리 날 축출하려 해도 난 대한민국 외항해운계의 자칭 종신 홍보대사 자격으로 죽을 때까지 영원히 머물 것이니 그리 알라”고 오기어린 농담으로 맞 받으며 한술 더 떴다. 늘 업무 추진을 위해서 관변을 찾아 다니며 애걸복걸도 많이 했지만 한편으론 앉아서 필자를 필요로 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갑의 입장에서 처리하던 관례를 깨고 이젠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곳은 많은 을이란 입장의 족쇄를 차고 무한경쟁에 뛰어들어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의 출발지점에 서게 된 것이었다.

당시 군산에는 KAL이 두 편 Asiana가 한 편 등 하루 세 편의 왕복 항공편이 있었고 고속버스도 몇 시간마다 있는데다가 승용차로도 세시간 남짓이면 갈 수가 있어 교통편은 비교적 편리하여 하시라도 오가는 데는 지장이 없어 다행이었다. 그래서 주저없이 K항업이 있는 군산 외항 부두에 위치한 사무실을 첫 방문했다. 현지 스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작업현장을 둘러 보기도 하고 본선을 방문하여 갑판이나 홀더에서 작업하는 직원이나 임시고용 인부들과 어울려 작업복을 입고 가리잖고 허드렛 일의 노무자가 되기도 했다.

C사장은 근력이 왕성치 못해 K이사가 페이퍼 워킹과 현장업무를 두루 처리했고 부사장 타이틀의 필자는 서울에서 영업을 책임지는 분담 체제로 일을 나눴다. 기타 직원들은 수임받은 선박별로 작업별로 업무를 나눠 맡아 본선작업을 추진하고 처리해 나갔다.출항이 임박했는데도 하역이 늦어지거나 더니지(Dunnage)나 라싱(Lashing) 등 후속작업이 제 때에 뒤따르지 못하면 밤샘 작업이 예사였다. 눈 한번 못 붙이고 새벽 귀가를 하거나 심지어 막바로 사무실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잦았다.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다”거나 “세상에 공 돈은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작업 현장이었다. 운송 방법 중에도 육운이나 항공과는 달리 선박 그것도 국제운송이란 그 절차나 작업 수순이 참으로 복잡다단하기 이를데 없었다. 배가 짐을 싣는 하역 후에도 이렇게 힘든 세밀한 작업을 마쳐야 출항이 가능하다는 걸 해운에 종사하면서도 수십년 동안 상세하게는 몰랐었던 터였다.

특히 선박을 소유하고 이를 직접 운항하는 업종인 오너 분야에서만 오랫동안 종사한 까닭에 또 다른 해운업의 중요하고 필요한 분야 즉 대리점 업무나 포워딩, 차터링, 브로킹업무에 대해서는 관리차원의 연관성이 있어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내용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세상만 넓고 할 일이 많은 게 아니라 역시 해운도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걸 알게 된 것이었다. 한 건의 해상운송이란 퍼포먼스가 종료되기까지에는 한 편의 예술작품이 완성되듯 최후 출항의 기적을 울리기 위해서는 초서(Chaucer/Cheif Officer : 1등 항해사)의 작업완료 OK사인이 나는 순간까지 이렇게도 복잡한 다단계 작업을 거쳐야 마무리 된다는 걸 예전엔 미처 몰랐으니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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