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10 10:13

KSG에세이/ 무늬만 海技士 평생을 짝퉁으로 살며 얻은 벼슬 “해운계 甘草”(14)

서대남 편집위원
G-5 海運韓國을 돌이켜 보는 추억과 回想의 旅路 - (14)


인물난에다 구관이 명관이어선지 87년 1월 총회에서는 합리화로 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대한해운의 이맹기사장을 삼고초려 끝에 또 다시 한국선주협회 회장으로 모셔왔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 해 4월9일에 전임 박건석회장의 타계 등으로 뒤숭숭했던 해운업계는 산업정책 심의위의 제2차 합리화 보완대책과 추가금융지원, 자구노력에 힘입어 몇몇 선사는 흑자경영을 시현하는등 합리화의 성과를 가시적으로 나타냈던 것이다. 공채로 어렵게 시작한 언론계의 정절(?)을 지켜내지 못하고 해운계로 첫발을 딛게한 주요한 회장에 이어 필자가 비록 아랫직이긴 했지만 20년간을 회장으로 모신, 해운공사 사장과 해군 참모총장을 거쳐 재향군인회 회장까지를 역임한 이맹기제독은 안경 너머로 눈매가 매섭다는 생각이 첫 인상이었다.

전역후 국방 체신등 두 차례의 입각권유를 받고도 이를 사양하고 해공출신 몇 사람과 지금 대한해운의 전신인 코리아라인(KLC)을 창업하여 당시 군사정권 시절인 탓도 있지만 임기가 끝나면 각군 총장들이 모두 한자리씩을 달라고 아우성이던 때라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 “이맹기제독 본 좀 받아라!”고 했다는 일화는 강직하고 청렴한 군인으로, 한국해운 성장기의 도덕경영과 모범적인 지도자로서 오래 기억될 역사적 인물이란 평가를 받게된 주요한 대목이다.


’87년 李盟基 회장 다시 추대, 合理化 조치도 점차 결실

박건석회장은 명망높은 장안의 전통적 부잣집 귀공자 출신으로 전형적인 상류사회 타입에 미식가였던게 인상깊고 미국에서도 호사롭기로 유명하다는 시라큐스 대학을 거쳤으며 아우인 코리안게이트의 장본인 미륭상선 박동선회장과 함께 활동한후 지금도 텍사스 휴스톤에 눌러 살고 있는 필자의 대학동기중 드물게 영문을 아는 영문과 출신 K군과의 인연으로 해서 더욱 관심도 많고 모두 다 오래 기억되는 인물들이다.

한편 합리화로 정비된 35개사의 87년 보유선복량도 434척 751만 2천G/T, 1천2백 27만D/W을 기록했고 경영수지도 비록 결손을 보이긴 했으나 적자폭은 전년도 2,434억원에 비해 1,320억원이 줄어든 1,114억원에 머물렀다. 당년도 불어난 선대규모도 35만G/T으로 전년비 4.7%가 늘었고 해운수입은 12%가 증가한 2조724억원에 달했으며 해운원가는 1조8,272억원으로 오랫만에 불황의 최저점 심연에서는 겨우 빠져나와 회복국면에 접어들고 있슴을 여실히 보여줬다.

특히 국내 철강제품의 대일경쟁력이 향상됨에 따라 철강재와 시멘트 수출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수출입 해상물동량은 전년대비 13.6%가 증가한 1억7천5백만톤에 달했고 이중 국적선 수송량이 7천만톤을 웃돌아 40.5%라는 국적전 적취율을 보여 총운임수입은 86년에 비해 18.5%가 늘어 23억 7천5백30만톤달러를 기록, 안정기조의 발판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이종순전무는 관운 못지않게 협회에서도 합리화의 매듭으로 안정된 시기에 부임하여 비교적 럭키하게 출발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의 해운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협회의 정부위임 민원업무인 ‘웨이버’도 필자에게 지시하는 운용방침이 항상 ‘얼랑 녹을랑’을 기조로 너무 엄격하게도 너무 허술하게도 처리하지 말고 요령껏 재량껏 그리고 있는듯 없는듯 일관된 기준으로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 인기절정의 아이돌 그룹 2AM의 브랜드 “죽어도 못보내!”가 있다면 40년이 훌쩍 넘게 해운쪽에 머무는 동안 수행한 업무와 짝지어 외부에 상징적으로 어필된 브랜드는 비록 악명 높긴 했어도 필자 역시 “죽어도 못잊어!”가 바로 그 웨이버 업무였다. 일생중 단 한번 쥐어본 칼자루와 서슬이 퍼렇던 웨이버 집행관이자 포도청장(?), 바로 그 시절이 메뚜기 한철이었던 것으로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당시 아니 지금도 어느 나라건 어떤 형태로건 각국은 자국산업 육성을 위해 제도적 보호막을 치게 마련인바 우리나라 역시 예외일순 없었고 오히려 한술 더 떠 자국선대의 보호육성을 위해 유례없는 악법(?)으로 불렸던 이른바 ‘Waiver (국적선 불취항증명서)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이를 취급하고 관리하는 별도의 민원업무가 조사업무부장의 주요 과업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우선 국적선이 취항을 하지 않거나 비록 취항을 하는 항로일지라도 선적 싯점에서 국적선이 이를 커버할수 없을 경우에 한해서 당해 화물 수송을 국적선사가 포기한다는 증명서 즉 ‘웨이버’를 한국선주협회로 부터 발급받아야 외국적 선박이 수송 가능토록 허용하는 제도였다.


李鍾洵전무 웨이바 지침은 “얼랑 녹을랑”을 원칙 삼아

되도록 빨리 또 맘에 드는 배를 골라서 화물을 싣고 싶은 무역업자에겐 얼마나 번거로운 제도이며 또 짐을 잡고도 웨이버를 발급받은 후에야 출항을 할수 있으니 한국에 취항하는 유수한 외국적 선사들은 물론 집화와 입출항 등 이들에게 업무대행 용역을 제공하는 선박대리점 업계엔 또한 그 얼마나 귀찮고 달갑잖은 제도였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득한 얘기지만 그래도 악법도 법이라면 해운 영아기에 그 제도가 밑거름이 되어 오늘날 한국이 부동의 세계1위 조선공업국과 세계 G-5 해운선진국을 일궈낸 쌍끌이 해운의 효자제도(?) 였다. 당시 불편해 했던, 그러나 지금은 모두 성공한 기업의 CEO들이 필자를 빗대 독립운동가들에게 악질 체포노릇을 일삼았던 ‘조선인 순사’에 비유하면 필자는 즉시 단연코 그들에게 올챙이시절을 모르는 참으로 딱한 비유라며 준비된 장황한 논리 전개로 반박하고 설득한다.

웨이버는 최초로 1952년에 상공부통첩(제68호)으로 입안되어 ’61년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간후 교통부고시(’65.9.1) ‘웨이버발급사무 취급요령’에 의거 시행되다가 72년에 일부가 개정고시 됐다. ’67년에 새로이 제정된 해운진흥법이 ’78년에 개정될때 이 법 12조1항으로 법적근거를 확보했고 ’79년 이 법 개정시에 국적선 이용 강제화물을 지정하기에 이른다.

이어 “우리 화물은 우리가 만든 우리 배로!”란 슬로건과 기치아래 웨이버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국적선사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1984년 들어 해운진흥법은 해운산업육성법으로 명찰을 바꿔달게 된다. 이 때 국적선 이용화물 지정을 구체화 하고 수입화물로는 원유, 제철원료, 양곡류 등 9개품목을, 수출 지정화물로는 양회 철강제품을 지정하기에 이른다.

관련 법령이 정한 위임규정에 따라 발급가부를 결정하는 웨이버제도 이지만 무역협회와 KOTRA 그리고 부산과 대구에 까지, 마지막엔 본부에다 발급창구를 개설하고 실무적으로 발급업무 최종 책임을 맡은 필자가 그 많은 신청건수를 다 체크하기에도 힘들뿐 아니라 창구담당자나 과장급이 심사한 서류를 부서장으로서는 눈감고 프리패스 도장만 찍는 ‘웨이버 자동발급기’노릇을 하기에도 숱한 어려움이 뒤따랐다.

따라서 필자가 부서장으로 오기 전부터 있어온 관행대로 자주 지정용지에 미리 발급에 필요한 스탬프가 찍힌 백지웨이버가 유통됐고 동사무소에서 민원서류 발급시에 담배값을 끼우듯 ‘웨이버차지’가 있었다는 말도 나돌았었다.

갖은 방법으로 웨이버를 위조하여 화물을 선적후 지방해항청을 속이고 출항하는 외국선사의 대리점에 수사기관의 손길이 뻗치기도 했다. 또 국적선사들 끼리도 사선부서는 좀 더 엄격한 시행을, 용선부서들은 발급완화를 요청해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나날이 난감천만이었던 기억도 새롭다. 어느날 창구직원 몇명이 노골적인 비행을 저질러 퇴사하는 촌극도 빚었고 필자가 검찰입에 오르내리고 청와대 민정실에 불려다니는 피의자신분(?)이 되기도 했었다.


“우리 貨物은 우리가 만든 우리배로!” 파수꾼 노릇 흐뭇

당시 웨이바와 관련된 특이 사항은 선복량이나 자본금이란 이중장벽으로 진입규제가 되고 있어 운항 사업 면허 취득이 어렵자 BBC/TC(단순 기간나용선)나 FOC(편의치석선) 형태의 소형선박등이 포철화물 등을 싣다 보니 국적선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이른바 해적선(pirate ship)으로 불리며 웨이바 규제의 집중 단속대상이 됐던 사례였다.

그 설움 딛고 이제는 중견선사로 성장하여 내로라 하는 경영층이 필자를 만나서 되레 고마웠다거나 감사했다는 인사를 건넬 때는 참으로 대견스럽고 왠지 눈물겹기까지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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