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8 13:33

해운업 불황에 중소형선사 선박금융 부실화 커져

캐피탈사 선박금융 부실자산 1300억 발생
중소선사 정부지원책 시급


●●● 지난해 이맘 때 찾아온 금융위기의 여파는 최근 몇 년간 초호황의 단맛에 취해 있던 해운업계를 강타했다. 세계적인 선사들이 파산에 이르거나 채무지급연장을 검토하는 등 불과 1년만에 ‘승승장구’하던 해운업계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사상 유례없는 해운업의 불황은 선박의 수익성 급락과 함께 용선료와 중고선가, 신조선가의 동반 하락을 불러 왔고, 이는 곧 선박금융의 부실로 이어질 우려를 낳고 있다. 세계 3위 컨테이너선사인 프랑스 CMA CGM이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국내에도 중견 선사들이 잇따라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금융권을 긴장케 하고 있다.

특히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본 규모가 적은 캐피탈 회사를 중심으로 한 여신전문금융회사(여전사)들의 선박금융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권의 선박금융 기피는 중고선 매매 부진으로 이어져 80~100여척에 이르던 클락슨의 중고선 매매건수는 최근 들어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캐피탈 5곳 선박금융 규모 자기자본 넘어서

선박금융은 금융의 대상이 되는 선박 자체의 교환가치와 선박에서 거두는 수익을 담보로 이뤄지는 자산담보부금융의 일종이다. 선박금융은 여신을 제공하는 주체에 따라 은행의 보증과 직접대출, 캐피탈사의 선박리스,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하는 대신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모집하는 선박펀드 형태로 구분된다.

국내 선박펀드는 지난 2002년 8월 선박투자회사법이 시행된 뒤에야 비로소 활성화된 터라 우리나라의 선박금융은 대부분 은행과 캐피탈사를 통한 재원조달 형태를 가리켜왔다.

선박금융은 대상에 따라 신조선금융, 중고선금융, 선박개조금융 등으로 구분된다. 신조선금융의 경우 수출입은행과 수출보험공사 등을 통한 정책자금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고, 시중은행의 RG(선수금환급보증) 제공 등 주로 신용도가 우량한 은행이 참여하고 있으며, 선박금융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반면 중고선금융의 경우 신조선금융에 비해 일반적으로 여신규모가 작아 은행 이외에 여전사들의 개입비중이 높은 편이다. 선박개조금융의 경우 해당선박의 규모에 따라 금융규모가 결정되는데, 최근엔 단일선체 초대형유조선(VLCC)의 초대형벌크선(VLOC) 개조에 대규모 선박금융이 이뤄지기도 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며 해운업계에 대한 전체 금융권 여신은 약 20조4천억원 규모로 파악된다. 이중 은행권 여신은 17조원인 반면 캐피탈사의 선박금융 규모는 2조5천억원으로, 은행권의 여신 규모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자기자본 비율로 보면 상황이 다르다. 은행권의 선박금융 비중은 전체 자기자본의 15.7%에 불과하지만 선박금융을 취급하는 캐피탈회사 5곳, 산은·신한·두산·한국·외환캐피탈의 해운업에 대한 여신규모는 자기자본의 134.7%에 달하고 있다. 결국 향후 해운업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은행에 비해 자본완충력이 떨어지는 캐피탈사가 선박금융 부실화에 따른 영향을 크게 받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은행권 선박금융은 주로 대형선박을 대상으로 이뤄지지만 리스사의 선박금융은 주로 중소형선박이 대상이 된다. 은행의 선박금융은 나용선(BBC)이나 소유권이전조건부나용선(BBCHP) 형태를 취하는 반면 리스사의 선박금융은 대부분 영업목적에 맞춰 리스계약 형태로 계약이 체결된다. 리스사의 선박금융에 비해 은행은 상대적으로 저리의 대규모 자금조달이 쉽다는 장점이 있으면서도 금융구조와 담보요건을 정할 때 융통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결국 중소형 선사들은 선박금융을 위해 리스사의 문을 두드릴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여전사의 선박금융은 크게 선박리스와 선박담보대출로 구분된다. 선박리스의 경우 선박담보대출에 비해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계약이 이뤄지고 있으며 선사의 재무제표상에 선박가격이 다소 낮게 표시돼 재무비율 관리에 유리하다. 선박의 등록비, 변호사 비용 등 각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 중소형선사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

중소선사, 은행권 문턱 높아

여전사 선박금융 시장은 은행권 계열사가 장악하고 있다. 선박리스의 경우 선박구매나 외화조달 과정에서 해외 네트워크가 필요한데다 다른 리스취급품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규모 자금이 실행돼 소규모 회사들이 쉽게 진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스회사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중고선박과 조선소에 신조선을 발주하고 대금을 지불한 뒤 선박을 인도받게 되며, 선사는 리스회사에 임대료를 부담하고 선박을 빌려 사용하는 금융구조다. 임대구조가 외화차입에 의한 자금조달과 용선기간 만료 후 선사가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점에서 BBCHP와 유사한 구조를 띤다. 하지만 BBCHP의 경우 용선기간동안의 선박소유권이 금융회사가 제3국에 설립한 SPC에 있다면, 일반 용선의 경우 리스회사에 돌아간다.

선박금융을 취급하는 5대 캐피탈 기업들의 경우 전체 채권 중 해운업에 대한 여신집중도가 높은 편이다.
지난 2007년 이후 해운업의 호황으로 선박임대 수요가 크게 늘면서 리스회사들이 선박리스시장에 대거 뛰어들면서 선박리스 규모는 1조원을 넘나드는 규모로 성장했다. 이중 5개 리스사의 선박리스 규모는 이들 회사 전체 리스자산의 49.7%를 차지할 만큼 선박리스의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해운불황이 본격화된 올해 상반기에도 이들 5개사 전체 리스 실행액의 64.5%를 선박금융이 차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산은캐피탈은 최근 들어 선박리스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이후 이 회사의 선박리스 규모는 5개사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지난해엔 포스코와 연속항해용선(CVC) 계약을 맺은 폴라리스쉬핑에 거액 여신이 실행되면서 이 회사의 선박 금융 규모는 5개사 전체의 60%를 넘어서기도 했다. 2007년 이후부터 두산캐피탈과 외환캐피탈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나 그 비중은 10%대에 머물고 있다.

반면 2003년까지 5개사 선박리스규모의 80%를 차지했던 신한캐피탈은 2004년 이후부터 그 비중이 크게 축소됐다. 신한캐피탈의 올해 상반기 선박리스 실행액 규모는 5개 회사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신한캐피탈은 선박리스 대신 선박담보대출 규모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캐피탈회사들의 선박금융은 신조선보다는 여신규모가 더 작은 중고선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신조선 금융이 개입되는 조선업보다 중고선가와 밀접한 해운업 경기에 큰 영향을 받는 구조다. 그 결과 최근의 해운업 불황으로 캐피탈회사들의 선박금융은 은행권보다 더 큰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중고선가가 지난해 10월 이후 60% 가량 하락한 상황이어서 많은 선사들이 선박 매각으로도 자금확보가 어려워 유동성 위험에 직면해 있다.
특히 여전사들의 선박금융이 벌크선에 72.7%나 가량 몰려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 해운불황 이후 용선사슬에 얽힌 중견 벌크선사들의 법정관리나 파산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박리스 70% 이상이 벌크선에 몰려


해운경기불황의 여파로 선사들의 채무불이행이 이어지면서 선박금융의 부실도 확대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현재 5개 여전사들의 선박금융 부실자산규모는 132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순전히 해운불황에 의해 발생한 것들이다.

여신금융회사들의 경영 건전성 지표인 고정이하여신비율도 급상승했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연체기간 3개월 이상 부실여신을 총여신으로 나눈 것으로, 그 비율이 높을수록 금융기관의 경영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캐피탈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지난 2007년 말 5.4%에서 올해 상반기 15.6%로 3배 가까이 확대됐으며, 외환캐피탈과 산은캐피탈도 같은 기간 0.4%, 1.5%에서 4.5%, 4%로 껑충 뛰었다. 두산캐피탈과 신한캐피탈은 2.3%, 1.2%에서 3.1%, 2%로 상승했다.

선박금융 부실화로 졸지에 선사가 된 금융회사도 생겨났다. 신한캐피탈은 올해 3월 자본금 5억원을 들여 해운회사인 오에스쉽핑을 설립했다. 장금상선 전무이사인 정병주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신현갑 신한캐피탈 부사장과 김지회 전 창명해운 기획실장도 참여하고 있다. 이 회사는 신한캐피탈이 선사로부터 넘겨받은 6척의 선박을 관리하고 있다. 신한캐피탈은 선사 70곳에 100여척, 1조원 규모의 선박금융을 제공했는데, 지난해 말 시황이 곤두박질친 뒤 선사들이 대출받은 돈을 갚지 못하자 한 척씩 한 척씩 선박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이 같이 해운시황 침체로 선박금융에 대한 위기감도 커지고 있는 가운데 선박금융 전문가들은 은행권보다 자본완충력이 열악한 여전사들은 선사의 신용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계약기간을 단기로 운영하거나 선사에 대해 엄격한 재무요건을 요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한다. 선사도 추가적인 금융지원을 제공받기 위해 양호한 재무비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금융리스로 운영되고 있는 선박임대 형태도 향후 세일즈앤리스백을 포함한 운용리스로 전환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운용리스의 경우 선박 등록비 등의 제비용이 금융에 포함되지만 일반 금융리스보다 높은 수준의 임대료를 지급받는다는 점에서 여전사가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고 선박자산에 대한 영향력도 확대할 수 있다. 다만 선가변동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

한국기업평가 김영섭 책임연구원은 “최근 정부가 캠코와 산업은행을 통해 4800억원과 2조원 규모의 선박펀드를 조성해 해운업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으나 금융권 부채가 큰 대형선사에 집중되고 있다”면서 “자산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용대선 체인에 얽힌 중소형선사에 대한 정부지원책이 제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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