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폐지로 시황 악화에 직격탄 우려
●●● 미국발 금융위기로 금리와 환율이 높은 상승압력을 받고 있는 가운데 해운업계가 환율·금리상승, 고유가, 해운동맹 폐지 등의 3재(災)에 허덕이고 있다. 설상가상의 형국인 셈이다.
지난해말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불거진 미국 금융위기는 지난달 14일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 미국 투자은행들의 몰락으로 이어지면서 세계 경제계를 강타하고 있다. 미국이 서둘러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을 편성하고 각국이 금리인하 등 공조에 나섰으나 글로벌 증시 폭락 등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미국 금융위기가 발발한 이후 국제금융시장의 기본금리라 할 수 있는 리보금리는 5.7%대에서 6.3%대로 급상승했다. 국내 금리(회사채 3년만기 금리) 역시 금융위기 발생 이전 하락세를 보이다 금융위기가 발발한 이후 크게 상승하며 7.8% 전후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금융위기가 지속되고 유동성 부족이 확산되는 경우 회사채 금리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외한 시장도 금융위기가 발발한 이후 계속 상승추세에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월 평균 942원에서 지난달 1130원까지 올랐고 최근엔 13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원·위안 환율은 올해 초 130.05원에서 지난달 평균 165.35원을 기록했으며, 최근 190원대까지 치솟았다.
환율의 경우 금융위기 발발 이후 외국계 투자자들이 유동성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달러 확보에 나섰고 환율급등에 따른 투기적인 요인까지 가세하고 있어 단기과열(오버슈팅)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전문가조차 현재의 환율 예측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형편이다. 외환시장의 불안정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와 각국 정부의 대응정책 효과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는 해운시장 밖에서 해운수요와 공급, 해운회사 재무상황 등에 모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 인상은 해운업계의 부채상환부담을 가중시키고 선박금융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환율상승은 매출 대부분이 달러화인 해운업계 특성상 원화 수익성 증가란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외화표시 부채상환부담 증가라는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안고 있다.
외항해운업계 상위 9개사의 지난해 말 총 부채는 7조8246억원에 달했다. 따라서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는 경우 이자상환액은 약 782억원에 달한다. 또 이들 9개사의 외화표시 부채는 5조4647억원이며, 기준환율은 900원대 후반에서 1200원대로 다양했다. 기준환율을 모두 1300억원으로 통일할 경우 이들 9개사의 부채는 6조2199억원으로, 약 7552억원의 부채가 늘어나게 된다. 게다가 주요 39개 외항선사의 최근 신조선 및 중고선 구입비용은 3조4531억원으로 파악됐다.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이들 선사의 선박확보용 이자상환액은 345억원 늘어나게 된다.
금리 1% 오르면 이자 345억 늘어
외항해운업계는 최근의 해운호황에 힘입어 신조선박을 대량으로 발주해 놓은 상태다. 선사들은 내년 이후 2012년까지 인도받을 신조선은 213척·1749DWT에 이른다. 대대적인 선박투자는 곧 국내외 금리 상승으로 인한 이자상환부담 증가를 의미한다. 게다가 원·달러 환율마저 상승하면 이자상환부담이 가중될 뿐 아니라 재무제표 또한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같이 금리와 환율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유동성이 악화되는 선사들이 긴축경영전략을 추진코자 할 경우 지원할 수 있는 재무자문단 구성 필요성이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해양수산개발원(KMI) 임종관 박사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미국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흔들리고 있어 외환시장은 상당기간 불안정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며 “ 환율불안은 선사들의 환리스크 관리를 어렵게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재무자문단 지원활동을 통해 선사들의 환리스크 관리를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해운업계는 예년과 비교해 여전히 높은 비용항목을 차지하고 있다고 울상이다. 2000년 이후 배럴당 20달러대를 유지하던 국제유가가 2005년 50달러를 돌파하면서 고유가 시대가 시작됐다. 올해 3월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해 초고유가 시대를 열었고 7월엔 145달러까지 치솟았다.
국적선사 연료비 비중 30% 넘어
유가상승의 원인으론 세계 경기호조, 브릭스(BRICs :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석유소비 급증,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대량의 투기자금 유입 등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투기자금이 대거 이탈하고, 실물경기 위축에 따른 석유소비 둔화 우려감이 증폭됨으로써 국제유가는 하락세로 반전됐다. 21일 현재 국제유가는 두바이산 기준으로 배럴당 72달러로 하락해 7월초 이후 반토막났다.
국제유가는 최근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고유가가 유지되고 있고 벙커유가격도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해운기업의 연료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세계 주요 항만의 벙커유 가격도 국제유가와 마찬가지로 지난 7월중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7월18일 로테르담, 싱가포르, 일본, 우리나라 항만의 380CST급 벙커유 기준가격은 t당 707.0달러, 745.5달러, 785.0달러, 792.5달러를 기록했다. 7월중 사상최고점을 통과한 주요 항만의 벙커유 가격은 이후 국제유가 하락과 함께 동반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항의 벙커유 가격은 7월 평균 t당 720.3달러, 8월 687.3달러, 9월 604.4달러 등 하락폭이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의 상승이 벙커유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선사의 선박운항 연료비를 상승시키고 있다. 때문에 유가가 상승하고 환율마저 오르면 선사들의 운항수지가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외항해운업의 연료비 부담은 3조7043억원으로 연평균 원·달러 환율 929.2원을 고려하면 39억8655만달러에 달한다. 싱가포르항 벙커유 가격이 t당 372.8달러인 것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외항해운업계가 지난해 소비한 연료는 1069만t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벙커유 t당 가격이 1달러 인상되면 우리나라 외항해운업계는 1069만달러의 연료비를 추가부담해야 한다. 올해 1~9월 기간중 싱가포르 벙커유 가격 평균치는 575.8달러로 지난해에 비해 203달러 상승했다. 지난해 연료소비량에 비춰 이 같은 벙커유 상승으로 우리나라 외항해운업계가 연간 추가부담해야 하는 연료비는 2조192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외항해운업계의 운항원가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유가 시대가 시작된 지난 2004년 이미 20%를 넘어섰으며, 초고유가 시대에 진입한 올해엔 30.8%로 높아졌다.
해운업계는 고유가를 극복하기 위해 감속운항과 공동운항 등의 적극적인 비용절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8천TEU 선박의 하루 연료 소모량은 25노트로 운항할 경우 250t에 이르지만 19노트로 속도를 줄이면 125t으로 절반수준으로 떨어진다.
또 정기선 항로에서 협조 배선 및 선복공유를 통해 선박가동률을 높여 유류비를 줄일 수 있다. 친환경 또는 저에너지 소비형 선박 개발도 고유가 시대를 맞아 필수 덕목이다. 신조선 건조에서 에너지 고효율 설계를 도입하고 친환경 장비를 도입하는 것이다. 일본선사 NYK는 700억엔을 쏟아부어 선박용 태양광 발전시설, 친환경 전자제어엔진 및 배기가스 회수장치를 개발한 바 있다.
해운동맹폐지로 선복 과잉 심화 우려
선사들은 지난 18일부터 유럽항로에서 해운동맹(shipping conference) 폐지되면서 시황 악화에 기름을 붓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정기선 해운시장은 ▲파멸적인 경쟁을 초래하는 만성적인 선복과잉 ▲극단적인 운임변동에 따른 위험 ▲보조금을 지급받는 외국 선사 존재 ▲공동행위를 통한 효율적 편익 달성 등을 이유로 그간 전 세계적으로 독점금지법 적용이 면제돼 왔다. 하지만 유럽연합(EU)는 해상운송서비스 경쟁을 촉진해 해상운임을 인하하고 서비스 질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지난 18일부터 해운동맹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쟁법을 발효했다.
이에 따라 18일 이후 해운기업은 해운동맹, 컨소시엄, 전략적 제휴, 얼라이언스 등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 운임 또는 할증료에 대한 협의나 가이드라인 설정 등의 담합행위를 할 수 없게 됐다. 선복 조정 및 감축에 대한 협의도 경쟁제한 행위로 간주돼 금지된다.
만약 법을 어길 경우 EU 지역 항로에 취항하는 해운 선사들은 전체 그룹 매출액의 10%를 벌금으로 물게 된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유럽항로에서 경쟁법 위반이 적발될 경우 각각 7700억원과 5900억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선사들은 최근 세계 경제 침체로 해운시황이 악화되고 있는 때에 해운동맹 폐지로 시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돼 크나큰 위기에 처할 가능성에 우려하고 있다. 지금도 시황하락이 표면화된 상황에서 개별선사들이 시황분석을 정확히 하지못해 자칫 만성선복 과잉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럽항로는 지난해 물동량 급증으로 운임이 TEU당 4천달러대까지 올랐으나 올해 들어선 물동량 성장 둔화와 선복 증가 등으로 20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특히 부정기선 시황 악화로 건화물의 컨테이너화가 급격히 위축돼 물동량 시황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BDI 지수가 8천선 이상일 때 건화물의 컨테이너화물 전환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얘기되고 있으나 BDI 지수는 21일 현재 1200선까지 후퇴한 상황이다.
게다가 이미 발주된 전 세계 컨테이너 신조선의 운항이 본격화될 경우 심각한 선복과잉을 빚을 것으로 보여 일부 선대 운항 중지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선사들은 선박을 “정박해 논다 하더라도 꼬박꼬박 발생하는 고정비용이 압박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기선 항로의 하락세는 비단 유럽항로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미주항로의 경우 지난 2005년 이후 20피트 컨테이너(TEU)당 수출화물 운임 1600~2000달러, 수입 800~1000달러 사이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선사들은 물동량 감소로 내년 운송계약(SC)에서 운임이 크게 하락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동남아항로는 2005년 TEU당 410달러대에서 2006~2007년 사이 300달러대까지 하락했으나 올해 들어 400달러 수준으로 올라섰다. 한중항로는 2005년 100달러와 200달러 수준을 보이던 수출 및 수입 운임은 각각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한일항로만이 근해항로에서 운임안정화를 이뤘다. 이 항로는 지난해 하반기 선적물량상한제(Ceiling)제 도입에 따른 운임인상으로 10월 현재 수출운임이 350달러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수입운임은 25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선사들 바닥시황 공감…생존권 문제로 확대
이와 관련 원양선사 관계자는 “최근의 해운 시황은 매우 악화되고 있고 내년에도 하락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과거와 메커니즘이 달라진 게 있다면 과거엔 수급 악화로 따라 운임이 하락해왔지만 지금은 선사의 생존권이 걸린 상황이어서 급격한 운임하락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원양항로와 근해항로 모두 상승요인을 딱히 찾기 어렵다는 것이 큰 문제다. 원양항로의 경우 수요 감소, 공급과잉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이고, 물동량에 따른 특정항로 공급 집중이 예상된다. 결국 국적 원양선사의 경우 정기선 부문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기 확산으로 실물경제가 위축되고 상품무역량 감소 혹은 증가세 둔화로 경영수지가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근해항로의 경우 동남아항로는 아시아 역내 물동량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나 만성적 선복과잉과 원양항로 선박의 역내 투입 등으로 향후 시황 개선 여지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한일·한중항로는 내년으로 예정된 한중컨테이너시장 개방과 원양항로의 초대형 선박 출현에 따른 중대형 선박의 항로 진입 등으로 선복과잉이 우려되고 있다. C&라인의 예처럼 근해선사들의 도산이나 인수·합병(M&A)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운업계는 선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당국의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국적 근해선사의 막강한 피더네트워크 체제 유지를 위해 근해선사 전용 터미널 확보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는 한편 한중항로 시장 개방을 단계적으로 해야 할 것이란 지적이 그것이다. 이 항로 취항선사 단체인 황해정기선사협의회는 남중국을 먼저 개방하고 북중국을 추후 개방하는 안을 정부에 제출한 상태다.
이밖에 업계 스스로도 내년까지 세계 경기 흐름을 지켜보면서 신조발주를 자제하거나 지연 전략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또 긴급경영체제에 돌입해 유동성 확보와 비용관리에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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